[파워인터뷰] 염재호 태재대 총장 “혁신 교육으로 10년 뒤가 기대되는 대학 만들겠다”
설립 2주년 맞은 태재대, ‘한국형 미네르바 대학’ 비전 강조 학생 참여·자기주도 학습 중심, 글로벌 언어·현장 경험 필수 성과로 평판 쌓는 교육, 10년 내 국내 대학에 영향 미칠 것
[한국대학신문 임연서 기자] “‘교육’은 하루아침에 우물에서 숭늉 찾듯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시간이 걸린다. 교육은 시간이 흐른 뒤 학생들의 성과가 나오면서 평판이 쌓이는 것이다. 우리도 아마 오랜 기간을 거치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할 것이다. 약 10년 후에는 성과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23년 9월 설립돼 2주년을 맞은 태재대의 염재호 총장은 지난 15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교육은 성과가 모여 평판이 쌓이는 과정”이라고 했다. 대학의 혁신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태재대는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으로 불리는 국내 4년제 사이버대다. 미네르바 대학은 7개 국가에 거점을 두고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세계적 혁신 대학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해외에서 각 학기를 생활하며 국가 맞춤형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게 된다.
태재대 교육의 특징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참여를 중시하는 학습 구조다. 앞서 염재호 총장은 지난 2023년 기자간담회에서 차별화된 수업과 맞춤형 학습 지원을 통해 복합적·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혁신적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전한 바 있다. 이에 태재대는 교수 연구실적 평가 대신 엄격한 교육평가를 실시하고 학생들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의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염 총장은 “우리 대학은 교수들의 연구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대신 교육에 대한 평가가 엄격히 이뤄진다. 첫 해 새롭게 선발된 교수들은 한 학기 동안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으로 트레이닝 받았다. 이후,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선 최소한 3개월 전에 본인의 시나리오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며 “이후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피드백을 계속해 모든 강의는 다 녹화가 된다. 이번에 센터로 바뀌는 ‘교육혁신팀’에서 분석한다. 이후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인게이지리(Engageli)’를 통해 수업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학생·교수의 참여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각 학생들의 발언 시간이 그래프로 나오고 참여도가 적은 학생들은 개인 지도가 이뤄지며, 다음 주제에 대해 미리 논의한다. 또한 교수들도 중간 평가를 하기 때문에 수업을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해당 부분에 든 예시가 적절했는지, 논리적으로 진행됐는지, 학생들에게 잘 반응했는지 등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태재대가 AI를 활용해 특허를 낸 ‘런메이트’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런메이트는 학생들이 혼자서도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둔다. 염 총장은 “학생들이 챗지피티(Chat GPT)를 통해 질문하고, 이를 런메이트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분석한다”며 “자기주도적 학습 수준과 질문의 논리적 측면 등을 분석하고, 이후 창의적 아이디어가 얼마나 발휘됐는 지를 AI로 분석한다. 그 다음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의 방향과 학습 방향 등을 지도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대학 학생들은 일본, 중국, 러시아로 이동해 생활하기 때문에 세 국가 언어의 중급 이상 자격증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해당 국가에 최소 한 학기씩 머물기 때문에, 방문하기 전 (해당 국가의 언어를) 초급 이상 배워놔야 (언어가) 빠르게 늘 수 있다는 게 염 총장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담당 교수들이 일대일로 지도하지만 학생들은 300개 이상의 제2외국어 강좌가 있는 세계 최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유데미(Udemy)’를 활용해 공부한다. 교수는 강좌를 추천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한다”며 “또한 ‘레슨 플랜’을 통해 교수 주도의 강의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구조도 마련돼 있다”고 덧붙였다.
염 총장은 적은 학생 수임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는 “비록 1기 학생 수는 적지만 전체 졸업생 중 일정한 성과는 충분히 낼 수 있다. 올해는 모집 규모를 거의 2배로 늘려 68명을 선발했고 그중 외국인 학생이 약 20명”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염재호 총장은 태재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앞서, 국내 경쟁력을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짚었다. 염 총장은 “여기서 기초 체력을 탄탄하게 한 다음, 소위 말하는 하버드, 스탠포드, MIT 이런 탑 5 대학의 거의 절반 이상은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리고 지금부터 학생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학생을 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도 태재대에 관심이 많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됐기 때문에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태재대 총장실에서 만난 염 총장을 통해 태재대의 성과와 교육 철학을 들어봤다.
- 고려대 총장직에 이어 지난 2023년 9월 개교한 태재대의 초대 총장을 맡았다.
“고려대 총장 재직 시절 ‘미래학부’라는 학부를 만들어 21세기형 맞춤형으로 (운영)하고자 했었다. 그래서 1년 동안 교수들이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미네르바 대학(Minerva University) 등을 방문해 조사했다. 또 학과별로 정원을 한 명씩 배분해 학부를 개설하고자 노력했으나 어려움이 많아 하지 못했다. 20세기와 21세기 사회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와 재작년 통계 기준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64%였다. 저는 학생들이 꼭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 1만 년 인류 역사 중 월급을 받았던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제는 프리랜서 등을 통해 본인이 가진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 되는 시대가 됐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이 굉장히 달라졌는데, 아직도 대입을 위해 유치원 시절부터 경쟁해 수능을 봐야 하는 점이 안타까워 태재대가 설립된 것도 있다. ‘미래형 대학을 하자’고 해서, 약 1년 반 정도 준비위원회를 통해 준비하다가 설립준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총장을 맡게 됐다.”
- 2년간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지난 5월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세계적인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학술대회 ‘CHI’(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에서 태재대 2학년 학생들이 우승을 차지한 성과가 기억에 남는다. 해당 대회에는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학생과 서울대 연합팀, 대학원생까지 참여하는 등 전세계 84팀이 참여했다. 이들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치매 노인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해당 연구는 그 저널에도 실렸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이러한 연구는 본인들이 2년 동안 매 수업시간을 통해 훈련한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 계속 수업 시간에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을 하다 보니 항상 본인 생각이 있어야 하고, 학생들끼리 밤늦게까지 토론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학생들이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또한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매 학기마다 사회 문제에 대해 탐구하고 아이디어내는 ‘시빅(Civic)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일부 보도에서 태재대 입학생의 3분의 1이 이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한 총장의 생각은.
“이탈률은 첫 해만의 수치가 아니라 3년에 걸친 결과다. 단편적인 측면만 부각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우리 대학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 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해병대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다. 군 입대·출산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휴학제도도 운영하지 않을 만큼 교육 기준을 엄격히 적용했다. 기숙사 생활이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학생도 일부 있었다. 현재는 약 20명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홍보와 관련해 우리 대학은 애초에 글로벌 대학을 지향했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기본적으로 영어로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 학생들을 위한 한글 안내도 제공하고 있다. 소통 부분에서는 기숙사 상주 직원과 상담 시스템이 마련돼 있고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총장이 매 학기 학생들과 직접 대화한다.”
- 태재대 학생들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교육받고 있어, 이에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 같다. 이는 등록금으로 이뤄지는지.
“등록금 이외에 금전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고려대 총장 시절일 때도 그랬지만, 능력있는 학생이 경제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면 안된다는 게 제 철학이어서, 성적 장학금을 없앤 바 있다. 태재대 1년 등록금은 한국인 학생은 900만 원, 외국인 유학생은 2000만 원 선이다. 국내 학생 중 소득분위 5분위 이하의 학생은 (등록금을) 100% 면제했다. 또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샌프란시스코 대학교(USF, University of San Francisco) 등 등록금이 비싼 편에 속하는 사립학교 1년 등록금이 8000만 원 이상 되기도 한다. 대학의 지속가능성 등을 위해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방안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 향후 5년간 국내 대학들이 갖춰야 할 자세는.
“대학들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지역 대학은 훨씬 더 특화를 하고 태재대처럼 하이브리드 대학으로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교육 체제로의 전환 등 더욱 미래지향적이고 협업 등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대학의 경우 120학점이 졸업 학점인데, 30학점까지는 파트너 대학 또는 글로벌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 등에서 수강해도 인정해 준다. 더욱 열린 자세로 가야 한다.”
- 프레파라토리움(Praeparatorium, 사전 등록 교육과정)은 9월 입학 전 3개월 동안 과정을 운영하는데, 전형은 언제 이뤄지나.
“입학전형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진행돼 지난 2월 말에 끝났다. 지난해에는 한 번만 하고, 그 전에는 두 번 했다. 그리고 태재대는 2기 때부터 풀(Full) 프레파라토리움을 했다. 이 때 완벽하게 태재대 설립 배경에 대한 철학, 영어 토론, 에세이 작성 훈련 등이 진행됐다. 이를 준비하는 교수님이 굉장히 열심히 준비하셔서, 2기 때부터 굉장히 성공했다. 그래서 2기는 이탈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 총장이 정의하는 ‘태재대형 인재상’은 어떤 모습인가.
“‘대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인 요시미 순야 동경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굉장히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문명사가 바뀐 건 결국 인쇄술의 영향이 있다. 인쇄술 때문에 종교 개혁이 확산되고 르네상스가 되며, 과학 혁명이 일어나고 시민 혁명으로까지 연결됐다. 이제 지금이 그런 시기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이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인간과 AI가 공존·공생하는 ‘코 이볼루션’(co-evolution), ‘공진화’가 나타나는 시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 중에서 ‘네오 르네상스인’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 총장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프로페셔널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지.
“스페셜리스트의 경우, 20세기에는 어떠한 전공의 한 분야로 직업을 삼고, 60대면 정년퇴직하는 구조였는데 프로페셔널은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풀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는 연장 탓을 하면 안 된다. 스페셜리스트와 프로페셔널은 많이 다르다.”
- 태재대 총장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태재대 총장으로서, 대학의 규모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 형식의 교육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향후 10년 내에 학생들이 성과를 내 국내 대학에 영향력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염재호 총장은…
고려대에서 행정학 학사·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를 지내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고려대 제19대 총장을 역임했다. 2020년부터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산학협력포럼 회장, SK(주) 이사회 의장,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주요 상훈으로는 고려대 총장상, 홍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이 있다. 지난 2023년 태재대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담=최용섭 주필 겸 편집인 / 정리=임연서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