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의 만화연구소] 캐리커처와 카툰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박세현 (사)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
만화의 아버지, 캐리커처
16세기 말 이탈리아 볼로냐의 미술가 아고스티노 카라치(Agostino Carracci, 1557~1602)와 안니발레 카라치(Anibale Caracci, 1560~1609) 형제는 인물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세밀하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카리치 형제는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변형하고 장난스럽게 왜곡하기도 했으며, 선의 반복적인 스케치 작업을 통해 인물의 외면적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적 정서까지도 재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세밀한 터치와 반복된 선으로 그려진 인물은 기괴하지만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탄생하게 됐다.
이들은 이 그림을 ‘카리카튜라(caricatura)’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캐리커처(caricature)’의 시작이 됐다. ‘캐리커처’는 라틴어 ‘카리카레(caricare)’에서 유래했는데, ‘고의적으로 과장하여 닮음’으로 이해된다. 지금 캐리커처는 ‘예술에서 인물과 사물의 특징이나 독특한 형태, 특정한 사건 등을 과장해 그로테스크하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원형 그대로 특징이 있는 형태를 그로테스크하고 풍자적이며 희화화해 그린 인물화’이다.
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비평가 필리포 발디누치(Filippo Baldinucci)는 ‘카리카튜라를 장난 치기 위해, 어떤 때는 비웃기 위해서, 얼굴 모양새의 결점을 과장되게 확대하고 강조한 인물화’라고 설명했으며, 1740년 프랑스 문학가며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카리카튜라는 상상력의 방종이다”며 예찬하기도 했다. 결국 캐리커처는 지금 만화의 아버지인 셈이다.
동물에게서 인간의 표정을 찾은 샤를 르 브랭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화가들은 인간의 형태에서 정신적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궁무진한 표정에서 감정적 표출을 포착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화가들 가운데 프랑스 왕립 미술 아카데미 에콜 드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를 창시한 샤를 르 브랭(Charles Le Brun, 1619~1690)은 동물의 표정과 인간의 얼굴을 형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이탈리아 화가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ambattista della Porta, 1535~1615)의 《인간 인상학 연구(De humma physiognomia)》(1586)을 더욱 발전시킨 유고집 《감정 표현에 대한 연구 방법(Méthode pour apprendre à dessiner les passions)》(1668, 출간 1702)을 썼다.
르 브랭은 이 책에서 인간의 다양하고 세심한 표정을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특성으로 그려내기 위해서 인간과 비슷한 감정 표현이 드러나는 동물의 얼굴과 대비해서 분석했다. 인간 얼굴의 관상학적 고찰은 물론, 더 나아가 표정의 변화에서 인간 성격과 정신을 읽어내 표현하려고 했던것이다. 또 동물의 머리와 인간의 몸이 달린 인물 캐리커처를 다양하게 구현해냈다. 이는 동물에게서 인간의 원형을 찾으려는 노력이면서, 동물을 의인화해서 인간의 감정을 일반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동물의 의인화를 표현한 브랭의 생각은 20세기 디즈니의 캐릭터 ‘미키 마우스’로 창조됐다.
영국 유머만화잡지 《펀치》와 존 리치
18세기 프랑스에 풍자만화잡지 《라 카리카튀르》와 《르 샤리바리》가 있었다면, 프랑스보다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영국에는 유머 그림 작가 존 리치(John Leech, 1817~1864)가 창간한 만화잡지 《펀치(Punch)》(1841)가 영국 만화의 서막을 열었다.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의 만화잡지 《펀치》는 정치성과 풍자성 짙은 캐리커처보다 유머러스한 그림을 많이 실었다. 이 시대의 유머 그림이 현재의 ‘카툰(cartoon)’이라는 불리는 만화 장르의 시작이 됐다.
한편 황금기였던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조잡한 영국 캐리커처를 정교하게 다듬은 그림을 많이 발표했던 존 리치의 노력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소설가며 희곡작가, 만화작품을 위한 소설을 쓰기도 했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는 “존 리치의 작품은 점잔빼는 영국 신사에 대한 묘사뿐이며, 사회에 대한 정신이 없다”며 혹평하기도 했다, 캐리커처 작가로서 존 리치의 사회적 의식을 의심했던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