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품는 대학들, 유휴공간의 재탄생… 법적 장벽은 ‘넘어야 할 산’
학령인구 감소·고령화 동시 해결 대안으로 ‘UBRC’ 도입 활발 남서울대·부산가톨릭대 등 시니어 단지 추진… 지역상생 효과 긍정적 준비는 마쳤으나 규제가 발목… 관련 법령 정비 필요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최근 국내 대학 내 유휴시설을 시니어 복합단지로 재탄생 시키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학령인구 감소와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지역상생과 수익성 사업의 다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한다.
다만 토지 이용과 건축 환경 세제 등 관련 법규와 규제 등에서 대학이 자산을 적극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관련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서울대는 한국UBRC위원회 산하 비영리단체 ‘UBRC Lifelong Partners’와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SU) 산하 비영리기업 ‘ASU Enterprise Partners’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학이 추진 중인 한국 최초의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UBRC) 사업의 글로벌 협력 체계를 구축, 사업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남서울대 UBRC는 노인주거시설의 생활 지원 서비스가 대세인 현 트렌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건강 관리와 교육에 중점을 둔 개념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도입되는 시스템이다. 대학의 인프라와 커뮤니티 시설을 활용해 새로운 생활 습관 교육과 예방의학 기반의 건강 장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중의 일반적인 시니어타운과 달리 대학 내 젊은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해 의미 있는 중장년 노후 일상을 제공할 계획이다.
협약에 따라 ASU는 평생학습, 세대통합, 헬스케어, 헬스테크 융합 연구 등에서 그간 이룬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형 UBRC 모델 개발 △남서울대를 시범사업 캠퍼스로 만들기 위한 전략 기획 및 교육 과정 설계 △세대 간 교류와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을 컨설팅하고 자문을 제공할 예정이다. 남서울대는 이를 통해 국내 UBRC의 1호 모델로서 안정적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 향후 타 대학과 지역사회로 확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협력 사업은 2026년부터 2027년까지 2년간 3단계로 진행된다.
윤승용 총장은 “우리 대학의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시니어들이 정규 및 비정규 교육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체육관, 도서관 등 기존 대학 시설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향후 도래할 120세 시대를 준비하며 재학생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교수진의 전문 지식을 시니어의 풍부한 경험과 결합해 시니어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가톨릭대도 최근 부산시, 부산시 금정구, 한국사학진흥재단과 협약을 맺고 신학교정 내 유휴시설을 활용해 대규모 시니어 복합단지인 ‘하하(HAHA) 캠퍼스’ 조성을 위한 첫 발을 뗐다.
‘HAHA’는 ‘Happy Aging, Healthy Aging’의 약자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기’를 뜻한다. 이 캠퍼스는 부산가톨릭대 신학교정의 9개 동을 리모델링하고 스포츠센터와 연구·산업연계시설(UBRC) 2개 동을 신축해 연면적 2만 9593㎡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사업비는 총 606억 원이 투입되며, UBRC는 별도로 486억 원이 투입될 방침이다.
사업은 단계별로 추진된다. 1단계에서는 기존 대학 시설을 활용해 평생교육, 문화·여가,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2단계에서는 교육·재취업 지원과 실버산업 육성으로 확장한다. 스포츠센터와 UBRC는 건강·체육과 연구·산업 연계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지난해부터 전담 조직(TF)을 꾸려 야외 체육시설 정비, 무장애 산책로 조성, 하하에듀 프로그램 운영 등 6개 마중물 사업을 추진 중이며, 내년 기본 및 실시설계에 착수해 2028년 말 1단계 사업과 스포츠센터를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우리시는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어르신들을 사회·경제 성장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세심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하하(HAHA)캠퍼스’는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노인평생교육시설 등 공공시설 부족 문제와 지역 대학 학생 수 감소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 상생 모델”이라고 밝혔다.
두 대학 외에도 조선대, 동명대, 대진대 등도 현재 UBRC의 건축, 운영을 위한 기초 계획을 수립하거나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UBRC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거주자 교육, 입주민 간의 교감 등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의 시니어 타운과는 차이가 있다. 학생 수 감소로 비어있는 지방대학의 공간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대학이 시니어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학들이 시니어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다만 일회성으로 그치는 주된 원인으로 대학 토지 이용과 건축 환경 세제 등 관련 법규와 규제가 지적돼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 관계자는 “대학 내 유휴부지를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꽤 많다. 하지만 대학 설립·운영 규정상 교지 내 노인 주거시설 설치가 불가하고, 학교 용지는 주거 용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 분양형 오피스텔 등 건설 불가하다”며 “도시계획상 용도 변경 필요하나 법령 개정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영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립학교법에서 교육용과 수익용 재산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데, 캠퍼스 내에 있는 시설은 기본적으로 교육용 재산이라 수익 사업을 하는 것이 법률상 가능하지 않다”며 “교육용 재산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취지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수익 사업을 위해 해당 규제를 완화하려면 피해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는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 복합단지 조성을 위해서는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옥근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미래전략센터장은 “대학의 시니어 복합단지 조성이 성공하려면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 프로그램 운영, 식품영양·경제·보건 등 각 학과의 전문성을 활용한 체계적 접근, 학교는 수익을 참여자는 만족도를 얻는 상생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며 “대학에는 이미 공간도 있고 전문인력도 있다. 문제는 대화의 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뭘 해줄까’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you want)’를 묻는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