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대학경제] KAIST는 ‘억대’, 지방 사립 ‘1000만원’… 대학 교육비 양극화 심각
본지, 교육부 학생 1인당 교육비 분석… 전체 평균 1905만 원, 격차 ‘뚜렷’ 한국과학기술원(KAIST)·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상위 5개교 차지 전문가들 “등록금 동결, 정부 대형 재정지원사업 배분… 격차 결정적 요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국내 4년제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국공립대·사립대를 경계로 깊게 갈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국공립·사립대의 1인당 교육비 자료를 병합해 결산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평균 교육비는 1905만 원이었지만 국공립대는 약 2680만 원, 사립대는 1650만 원으로 집계됐다. 국공립·사립 간 격차는 무려 1.6배에 달했다. 상위권은 이공계 국립대와 대형급 연구중심대학들이 싹쓸이했다. 반면 지방 중견 사립대는 1000만 원 안팎까지 내려갔다. 학생 한 명에게 투입되는 교육자원의 격차가 대학별로 현장에서 체감될 수준까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2일 본지가 교육부로부터 입수해 재학생 5000명 이상인 전국 대학 114개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전수 분석한 결과, 상위 5개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은 바로 다음인 한림대까지 포함해 3000만~9000만 원대의 1인당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KAIST(카이스트)의 경우에는 대규모 정부·연구개발(R&D)·산학협력 수입이 합해지면서 학생 한 명에게 무려 ‘억 단위’에 거의 근접한 약 95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학생 한 명당 약 6300만 원의 교육비를 투입했다. 이어 연세대(3965만 원), 고려대(3315만 원), 성균관대(3242만 원), 한림대(3184만 원) 등이다.
다음으로 아주대(2897만 원), 가톨릭대(2849만 원), 한양대(2792만 원), 울산대(2742만 원) 등이 상위 10개교에 자리했다. 이어 부산대(2722만 원), 경북대(2708만 원), 국립목포대(2680만 원), 전남대(2648만 원), 제주대(2631만 원), 국립한국해양대(2520만 원), 전북대(2507만 원), 충북대(2486만 원), 국립경국대(2463만 원), 강원대(2397만 원) 등 순으로, 모두 국립대로 채워졌다.
학생 1인당 교육비 격차가 문제인 이유는 이게 얼마인가에 따라 대학별로 수업을 듣는 환경, 연구를 경험하는 조건 등 질적 차이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상위권 대학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넉넉하다 보니 반도체 공정 실습을 할 수 있는 클린룸, 인공지능(AI) 연구에 필요한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센터, 실험을 지원하는 공용장비센터 등을 갖추고 있었다. 학생들은 교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설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지방의 중견 사립대는 상황이 달랐다. 부산의 한 사립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도서관에 신간 전공 서적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거나 실험실 장비가 노후화된 경우는 지방대에선 흔한 일”이라며 “교수를 충원하지 못해 특정 과목을 개설하지 못하거나 학생들이 원해도 선택할 수 있는 교양 과목의 폭이 좁아지는 경우도 많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차이는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반도체·AI·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 전문 인재를 길러내는 것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경남권의 한 중견 사립대 부총장은 본지 통화에서 “상위권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미 학부 단계부터 첨단 장비와 연구환경에 노출되며 역량을 키우지만 지방 사립대 학생들은 똑같은 전공을 선택했더라도 충분한 실습 경험을 쌓지 못한 채 졸업장을 받게 된다”며 “결국 같은 학위라 하더라도 취업 시장이나 대학원 진학에서의 경쟁력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등록금 동결, 정부 재정지원사업 배분 구조가 격차 키웠다 = 교육계에선 국공립·사립대 간 교육비 격차가 벌어지는 데에는 정부의 정책적 요인도 적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대학들의 등록금을 약 16년째 동결하게 한 정책이 사립대 재정을 제약하고 있는 근본적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본지에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2009년을 전후해 사실상 오르지 못하게 묶였다”며 “결과적으로 사립대는 약 16년 넘게 같은 수준의 등록금을 받아왔는데 그동안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교직원 인건비부터 실험 장비, 교재 비용도 모두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이어 “대학의 주머니는 그대로인데 써야 할 돈은 계속 늘어난 셈”이라며 “사립대의 경우 전체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그런데 돈이 묶인 채로 시간이 흘렀으니 자연스럽게 교육과 연구에 쓰일 예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공립대·과학기술원 등은 등록금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따로 주는 돈인 정부 출연금이 있다. 서울대·카이스트 등 국립대들은 정부 예산을 통해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록금과는 별도로 지원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물가가 올라도 최소한의 교육비를 확보할 수 있는 두 번째 지갑이 존재하는 셈이다.
박치현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사립대는 한 해 한 해 빠듯한 살림을 꾸리느라 시설 개선을 미루고 교수 채용도 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국공립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건물이나 연구실, 첨단 장비를 들일 수 있다. 결국 똑같이 4년제 대학이라 하더라도 학생이 체감하는 수업 환경과 연구 경험에 큰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학생 한 명당 최소한의 교육비를 보장하는 제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하운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은 “지금 어떤 대학은 학생 한 명에게 수천만 원을 쓰지만 또 어떤 대학은 1000만 원도 채 쓰지 못한다. 이렇게는 공정하지 않다”며 “정부가 하한선을 정해놓고 기초적인 수업과 실습, 도서 구입, 공용장비 구비에 필요한 비용은 대학 규모나 재정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최소한으로 보장해 준다면 지방이나 중소 사립대의 급격한 추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형 재정지원사업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승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수석부회장(충청대 총장)은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글로컬대학30 등 사업들은 주로 경쟁을 통해 뛰어난 대학을 뽑아 돈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며 “결과적으로 잘하는 대학은 더 잘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갈수록 뒤처지는 양극화가 생기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부회장은 이어 “그렇다고 경쟁을 없앨 수는 없다. 대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는 유지하되 기초 체력 보강용 트랙을 만들어 최소한의 기회는 모든 대학이 갖도록 해야 한다”며 “상위권 대학은 계속 혁신을 추구하고 하위권 대학은 기초 체력을 키워 조금씩 따라갈 수 있는 계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방치할 경우 향후 교육비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위권 대학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대학이나 중소 대학은 점점 뒤처지게 돼 국가적으로는 오히려 고등교육이 후퇴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기우 전 교육부 차관은 “학생 입장에서 보면 어떤 대학에 다니느냐가 학습 기회와 경험, 졸업 후 진로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돼버린다는 점에서 문제”라며 “같은 대학생이지만 누군가는 억 단위의 교육비 투자를 받으며 최첨단 장비로 공부하고 또 누군가는 노후한 실험실에서 공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전 차관은 이어 “정부의 라이즈(RISE) 사업이나 글로컬대학30 등 대규모 재정지원사업이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잘나가는 대학만 더 키울 경우 지금의 교육비 격차는 더 고착화될 수 있다. 상위권 대학의 혁신을 막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교육 환경을 모든 학생에게 보장하는 정교한 재정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