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강제징집·고문 악행, 첫 공식 국가사과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박정희 정권 시기 대학생 강제징집과 고문 가혹행위에 대해 국가 책임 첫 인정

2025-10-02     김준환 기자
2일 서울중앙지법 31민사부(남인수 부장판사)가  1971년 위수령 때 강제연행돼 불법 구금, 고문 가혹행위, 군대 강제징집 등의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사과를 판결한 후 고초를 겪은 당시 학생간부들이 기념촬영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원섭 전 한겨레 논설실장,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전 방송통신위 부위원장),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유영표 (사)긴급조치사람들 이사장, 임춘식 한낭대 명예교수.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민사부(재판장 남인수 부장판사)는 지난 2일, 1971년 위수령 선포 이후 강제 연행·고문·군 강제징집을 당한 대학생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판결했다. 대학생 강제징집과 고문 가혹행위에 대해 법원이 국가 사과를 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은 타당하다”며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고, 원고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남인수 부장판사는 판결 선고 과정에서 “국가공무원인 담당 판사로서 국가폭력 피해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직접 언급했다.

이번 판결의 배경이 된 사건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 발동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에서 약 1800명의 대학생이 강제 연행됐고, 이 가운데 학생 간부 167명이 영장 없이 구금돼 고문을 당한 뒤 대학에서 제적되고 군에 강제 징집됐다. 피해자들은 군 복무 중에도 보안사의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차별적 병영생활을 강요받았으며, 이후 해외 유학·취업 과정에서 ‘신원 불량자’로 낙인찍혀 생애 전반에 피해를 겪었다.

원고 측 대표인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위수령 당시 서울대 문리대 대의원회 의장-학생지하신문 ‘의단’ 발행인)은 법정 증언에서 “당시 위수령은 대학생들을 표적 삼은 국가폭력이었으며, 신성한 국방의무를 형벌화한 조치였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국가와 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청·교육부·병무청 등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진실화해위원회가 결정한 국가사과 권고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향후 정부 차원의 국가사과와 배상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