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게임에게 배운 것들] 실패를 허용하는 용기
김민철 서일대 AI게임융합학과 학과장
다크소울.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들어본, 어렵기로 소문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플레이어는 평균 30번 죽는다. 30번의 실패를 경험하고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실패다. 슈퍼마리오를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은 첫 번째 버섯같이 생긴 몬스터, 굼바에게 위협을 겪고 죽기도 한다. 게임은 늘 실패를 동반하게 하는 콘텐츠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해보자’는 버튼 하나만 있을 뿐이다.
반면 교실에서 시험 문제를 틀리면 어떻게 될까. 그 점수는 기록되고, 석차로 환산되며, 때로는 미래의 기회까지 좌우한다. 게임에서는 ‘Failed’가 단순히 재도전의 기회이자 용기를 북돋는 신호인 반면, 교실에서는 ‘실패’가 낙인이 된다. 같은 실패인데, 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까.
게임이 교육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패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학습의 기회로 전환하는 시스템 설계. 게임 디자이너들은 오랫동안 이 원리를 직관적으로 활용해왔다. 최근 게임기반학습 분야에서는 이를 ‘실패의 단위(unit of failure)’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실패의 단위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실패했음을 알려주는 구체적 신호다. 목숨 하나, 체력 게이지 감소, 타이머 초과 같은 것들이 여기 해당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가 학습자에게 명확한 피드백을 제공하면서도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슈퍼마리오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목숨이 하나 줄어든다. 이것이 실패의 단위다. 하지만 총 목숨은 여러 개이고, 게임오버가 되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실패는 명확하게 표시되지만, 치명적이지 않다. 다크소울에서는 죽으면 모은 소울을 잃지만, 다시 그 자리로 가서 회수할 기회가 주어진다. 실패에 대한 페널티가 있지만, 동시에 복구 가능성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설계 원리는 심리학의 발견과 정확히 일치한다. 실패에 대한 명확한 피드백은 학습을 촉진하지만, 실패가 치명적이면 도전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게임은 이 균형점을 50년간 완성해왔다. 점수, 캐릭터 체력, 시간 등 다양한 형태로 실패를 표현하되, 항상 재도전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실패는 기록되고 누적된다. 중간고사에서 틀린 문제는 성적표에 남고 그 성적은 내신에 반영되며, 결국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실패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교육받아 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도전보다는 회피를, 실험보다는 암기를 선택하게 됐다.
미국 뉴욕의 Quest to Learn 학교는 실패의 단위 개념을 실제로 구현한다. 모든 과제를 ‘미션’으로 설계하며, 학생들은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도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 대신 재도전 기회를 얻으며, 이전 시도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게임의 리플레이 메커니즘과 같다. 실패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정하며,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이제 교육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패를 기록하고 처벌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를 학습의 데이터로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이 안전하게 도전하고, 틀릴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틀려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 게임은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Failed’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기’ 버튼이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확신이라는 것을. 인간은 본래 놀이하는 존재다. 게임은 그 본질로 돌아가는 길을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