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 기획] ‘서울대 10개 만들기’… 거점국립대·사립대·국공립대, 엇갈린 4가지 입장
‘지역 균형 발전’ 대의에도…재정 지원 지속성 및 구체성 결여 ‘의문’ 지방거점국립대, 장기 비전 없는 ‘단기 블록 펀딩’에 혼란 가중 국가중심국공립대, “백화점식 지원 대신, 지역 특화 산업군과 연계해야” “사립대는 뭘로 버티나?” 수도권 사립대, ‘제로섬 게임’ 우려 지역 기업 유치 부재 속 ‘연구력’만으론 정주율 한계, 장기 비전 필요
한국대학신문은 창간 37주년을 맞아 특집 기획으로,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고등교육 정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이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지방거점국립대부터 예산 독식을 경계하는 비거점 국공립대, 그리고 생존 위기에 직면한 수도권/비수도권 사립대까지, 정책 이해관계가 맞물린 각 대학들의 엇갈린 시각과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고등교육 생태계의 복잡한 현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한국대학신문 백두산·김소현 기자]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방거점국립대학교(지거국)의 연구 역량과 교육 수준을 서울대학교급으로 끌어올려, 궁극적으로 우수 인재를 지역에 정주시키고 지방 소멸을 막는다는 ‘지역 균형 발전’의 대의를 담고 있다. 등록금 동결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립대학 재정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고, 지역의 우수한 기업과 연계해 인재 유치-교육-취업-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정책은 기존 국립대 육성 사업을 넘어, 지자체 주도의 ‘라이즈(RISE)’ 체계와 대학 주도의 ‘글로컬대학30’ 사업의 특성화 방향을 아우르며 패키지 형태로 추진될 계획이다. 비수도권 지방거점국립대(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충남대 등 9개 대학)가 주요 대상이며, 이들 대학을 연구 중심 대학으로 특성화해 지역 성장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목표다. 정책 발표 당시 3조 원 규모의 예산이 거론됐으나, 현재는 기존 예산을 제외하고 약 4,770억 원 수준의 증액 예산이 추가 확보된 상태다.
■ 정책의 수혜자, 지방거점국립대의 ‘복합적 부담감’ =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로 분류되는 지거국 내부에서도 마냥 환영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재정 규모와 지원 방식, 그리고 정책의 구체성이 필수적인데, 현재 교육부의 접근 방식이 여러 현실적인 고민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거점국립대 A대학 관계자는 “현재 증액된 예산은 기존 과기부나 산자부 사업과 비교해도 뚜렷하게 크지 않은 규모”라며 “서울대 수준의 연구 역량을 키우기에는 ‘충분한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예산 규모로는 5년, 10년을 내다봐야 하는 연구중심대학 육성의 ‘지속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교육부가 추구하는 비전과 현장의 인식이 달라 혼선이 크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특정 분야 특성화’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종합대학으로서 서울대급’을 의미하는지부터 정책적으로 분명하게 해야 한다”며 “사업을 추진하는 담당 부서들이 개별 사업으로 쪼개 추진하게 되면, 어디는 3년, 어디는 5년 식으로 해버려 사업의 연계성이 사라지고 결국 비전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교육부의 ‘순차적 블록 펀딩’ 방식은 수혜를 받는 지거국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이슈다. 기획처장을 역임한 지방거점국립대 B대학 관계자는 “1차 연도에 받는 대학과 3차 연도에 받는 대학 간에 기재부의 성과 평가에 따라 예산이 뚝 떨어질 위험이 있다”며 ‘순차적 지원’ 방식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면서 “대구·경북이나 강원 지역처럼 정치적으로 밀리는 지역은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또, 교육부가 동남권은 ‘해양조선’처럼 특정 주력 산업에만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에 대해 “서울대 10개를 만들게 해놓고 거점국립대가 특정 산업만 하라는 것은 종합대학의 특성에 맞지 않다”며 “인문사회계열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책의 구체성 및 예산 규모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지거국 내부에서는 재정 지원 사업의 통합 및 자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거점국립대 C대학 관계자는 “글로컬 사업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목표가 거의 맥을 같이함에도 개별 사업으로 작게 돌려서는 영향력 있는 스케일로 돌리기가 어렵다”며 “대학원 혁신 등 모든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합한 총장 직속 ‘정부 재정 지원 사업단/본부’를 만들어 예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집중 투입해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는 조직 쇄신 움직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B대학 관계자는 이러한 블록 펀딩(Block Funding) 방식이 학내 자율에만 맡겨질 경우 총장이나 특정 단과대학 출신 등 내부 정치적 방향으로 예산이 쏠릴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교육부가 (예산을) 주더라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줘야지, 손 안 대고 코 풀려 한다면 학교마다 들쑥날쑥할 가능성이 높다”며 “최소한 학부 지원을 강화할 것인지, 대학원 지원을 강화할 것인지 등 교육부 차원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소외된 ‘비거점’ 국공립대 “지역 특화형 리그 만들어야” =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서 거점국립대가 아닌 비수도권 국가중심국공립대는 ‘거점대학 독식 체계’가 고등교육 생태계의 균열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계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원이 거점대에만 집중될 경우 지역 내 국공립대학 간 격차가 심화되고, 지역 산업과의 연계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가중심국공립대 D대학에서 산학부총장을 지낸 한 전문가는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려면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거점대학이라고 해서 모든 학과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며 “거점대학이 아니어도 특정 분야에 특화된 대학이 존재하므로, 지방대를 권역별·광역권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별 특화 산업군이 다름을 강조하며, “지역별 특성화가 확실히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소위 백화점처럼 돼 있는 학교들을 나열해 서울대 10개를 만드는 게 과연 옳은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경영학이라도 해양 경영은 특화된 지역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더라도 우주항공 분야 또는 자동차 쪽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며, 지역 맞춤형 학부·학과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문계열도 키워주고 공학 길도 제시해 주는 지역별 특성화 분야를 선정해 골고루 육성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중심국공립대 관계자들은 연구중심대학 육성이 지역 정주율을 높일 것이라는 정책 명분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지방에 있는 거점국립대, 연구중심대학을 키운다고 해서 지방에 정주하는 학생들이 늘어날지 의문”이라며, “지방 기업에서는 거점국립대 학생들을 취업 순위에서 배제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 회사에 들어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를 많이 해 능력치와 커리어가 올라간 학생들은 자연스레 돈을 더 많이 주는 수도권 기업체로 향한다. 수준 높은 기업체들이 지방으로 오는 것이 핵심”이라며, 양질의 일자리 부재가 정주율 하락의 본질적 원인임을 강조했다.
100명을 키웠을 때 절반인 50명, 심지어 30명이라도 정주할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반응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대학 육성 정책이 기업 유치와 지역 산업군을 바탕으로 한 연계라는 선행 조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 다른 비수도권 국가중심국공립대 E대학 부총장 역시 “강원도 사정이 다르고, 경기도 사정이 다르다. 지역 산업체와 대학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특성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지역 특화 산업군에 맞춘 특성화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 수도권·비수도권 사립대 “규제 풀고 별도의 장(場) 마련해야” = 국공립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 정책이 추진되면서 한국 고등교육의 대다수를 책임지는 사립대학들은 ‘제로섬 게임’으로 인한 고사를 우려하며 일제히 불만을 쏟아냈다. 수도권 사립대 관계자들은 정책의 비현실성과 함께 국립대와 사립대 간의 ‘불공정한 운동장’을 비판했다.
수도권 사립대 F대학 관계자는 “현재 서울대하고 지거국하고 국가에서나 지자체에서 투입되는 예산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며 “이게 플러스 알파(추가 재원)가 아닌 이상, 기존 대학에 지원되던 재원은 분명히 일정 부분 뺏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대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순수하게 우수해서가 아니라, 국가 자원의 완전 몰아주기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그런 부분은 건들지 않고 그냥 재정적으로만 투입해 버리면 오히려 지방 거점 국립대는 사립대에 비해서 조금 더 방만하고 느슨한 구조가 있는데, 오히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도권 사립대 G대학 총장 역시 “가뜩이나 고등교육 시장 예산이 제한적인데 국립대학에 다 가면, 사실 대한민국 고등교육을 지탱하는 사립대학은 걱정이 많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책이나 로드맵 정도는 발표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립대 관계자들은 국립대에 예산을 몰아줄 것이라면 사립대에는 ‘자율’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권 사립대 H대학 관계자는 “정부 국립대만 계속 지원해 주면 사립대는 그럼 뭘로 교직원을 유지하라는 거냐”며 “등록금을 자율화해 준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규제라도 풀어줘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G대학 총장은 등록금 인상 법정 한도가 1.2배로 묶여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학생들과 싸워 등록금 자유화해봐야 실질적으로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현실과 안 맞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립대학에 대한 비전 제시 없이 국공립대학에 대한 지원만 강조하는 것은 “고등교육을 내팽개친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비수도권 사립대는 지역 소멸 방지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꼬집으며 ‘별도 리그’를 요구했다. 지방 사립대 I대학 산학부총장은 “우리나라 교육의 절반을 사립대가 담당하는데 국립대 몰아주기에 나서면서 사립대끼리 경쟁하라는 식의 행정은 사립대의 고사를 몰고 가는 일”이라며 “국가가 육성하는 대학 10개를 지정한다면 별도로 지역을 지키고 있는 지방 사립대에게도 별도의 운동장을 만들어 선의의 경쟁을 토대로 교육을 담당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6개 시군과 MOU를 맺고 지자체 빈집을 활용해 유학생과 국내 학생의 지역 정주를 유도하려 했으나 예산 지원이 없어 실행하지 못했다”며 “열심히 노력한 지방 사립대에게 해당 예산의 3분의 1이라도 투자할 수 있는 리그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지방 사립대는 국립대와 달리 특정 분야를 타겟으로 육성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립대 전반에 대한 특성화를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지역 균형 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정책 성공 위해선 ‘장기적인 비전’과 ‘제도적 쇄신’ 필요 = 취재를 종합해 볼 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일시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한국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성공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 비전과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전제로 한 ‘제도적 쇄신’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권 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 지속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수도권 D대학 관계자는 10~20년의 명확한 마스터 플랜과 함께, 예산 당국으로부터 법적으로 재원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회 및 국교위를 통한 제도적 합의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국가 아젠다’로 격상돼야 함을 시사한다.
더불어 지원에 상응하는 국립대학 내부의 뼈아픈 자기 쇄신도 요구된다. 막대한 재정 지원이 모럴 해저드를 낳지 않도록 엄격한 연구 업적 평가와 테뉴어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책은 인구 감소와 빅테크 경쟁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거시적 국가 경쟁력 강화 로드맵과 연계돼야 한다. 수도권 H대학 교수는 이를 ‘대한민국이 죽고 사는 문제’로 접근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역설했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연구력 강화’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교육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근본적인 경제적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하며, 여기에 더해 소외된 사립대학에 대한 규제 완화와 자율 보장이라는 비전까지 포괄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제 단순한 공약 이행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담아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100년 대계를 설계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