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직업교육의 주인은 누구인가? : 전문대학의 자리, 일반대학의 확장

조덕현 한국전문대학산학협력처단장협의회장(전주기전대학 부총장)

2025-11-05     한국대학신문
조덕현 한국전문대학산학협력처단장협의회장(전주기전대학 부총장)

동네 고수의 맛집과 프랜차이즈의 차이, 그리고 교육의 본질
골목 어귀에 줄 서는 맛집이 있다. 화려한 간판도, 거창한 광고도 없지만 손님은 그 집의 정성과 손맛을 기억한다. 반면 대로변의 프랜차이즈는 메뉴는 많고 분위기도 세련됐지만, 맛의 깊이가 없다. 교육도 이와 같다. 본질은 규모나 외형이 아니라 ‘배움의 온도’와 ‘현장의 진심’이다. 전문대학은 산업의 흐름을 읽고, 학생이 일터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 중심의 일반대학이 학생 모집난을 이유로 이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더 큰 간판을 내걸었지만, 그 안의 주방은 식어가고 있다. 교육의 성공은 포장보다 결과에 있다. 졸업생이 현장에서 ‘제 맛’을 낼 수 있는가, 그것이 진짜 직업교육의 기준이다. 직업교육의 주인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의 뿌리가 흔들린다.

전문대학은 왜 대체될 수 없는가
전문대학은 산업의 속도를 교육의 속도로 바꾸는 기관이다. 간호, 보건, 조리, 미용, 반려동물, 유아교육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교과를 설계하고, 장비를 들여오며, 기업과 수업을 연결해왔다. 실험실보다 작업대가, 이론서보다 매뉴얼이 앞설 때가 많다. 그래서 전문대학의 졸업장은 곧 현장 출입증이 된다. 이 축적은 단기간의 모방으로는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현장은 기계의 소리, 안전 규정, 고객의 눈빛처럼 세밀한 감각을 요구한다. 전문대학은 이 감각을 훈련으로 체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산업체 경력의 교수들과 함께하는 실습실은 작은 공장이다. 품질, 속도, 협업, 안전이 동시에 요구되는 공간에서 학생은 기술뿐 아니라 교수의 태도와 책임을 함께 배운다. 이것이 전문대학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일반대엔 그것이 있는가?

무질서한 확장이 만드는 균열
일반대학이 전문대학의 영역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세 가지 균열이 생긴다. 첫째, 실습의 공허함이다. 유사 학과는 늘지만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도, 제대로 된 장비 운용도 없다. 학생은 장비를 본 적은 있어도 다뤄본 적은 없다. 실습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전시장이 된다. 둘째, 역량의 단절이다. 산업과의 접점 없이 만들어진 커리큘럼은 반쪽짜리 실무자를 낳는다. 기업은 다시 가르쳐야 하고, 학생은 자신감을 잃는다. 셋째, 지역의 침묵이다. 전문대학이 약해지면 지역 산업의 숨결도 사라진다. 현장실습, 취업 연계, 기술 교육이 끊기면 중소도시의 활력은 빠르게 식는다. 산업은 자금이 아니라 사람, 즉 배우는 손이 끊길 때부터 무너진다.

평생교육의 본무대는 왜 전문대학인가
성인학습자는 지식을 소비하러 오지 않는다. 내일의 일을 바꾸기 위해 기술을 배우러 온다. 전문대학은 이들을 위해 야간·주말 과정, 모듈형 자격, 경력 인정 제도를 일찍부터 운영해왔다. 교수자는 현장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수업은 짧은 이론과 긴 실습, 즉시 피드백으로 구성된다. 포트폴리오는 곧 이력서가 되고, 프로젝트는 채용으로 이어진다. 반면 일반대학의 평생교육은 온라인 강의나 자격증 중심에 머무른다. 학습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교육은 삶을 바꾸지 못한다. 평생교육은 지식의 재탕이 아니라 삶의 재설계이며, 그 무대는 현장을 품은 전문대학이어야 한다.

확장보다 공생, 모방보다 분업
해법은 명확하다. 일반대학은 학문과 연구의 깊이를, 전문대학은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의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는 두 축의 분업을 전제로 지원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신설 학과는 산업 수요 검증과 실습역량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지역 단위로 장비와 실습장을 공유해 중복투자를 줄여야 한다. 대학 평가는 단순한 취업률이 아니라 숙련의 질, 현장 적응력, 산업 만족도로 바뀌어야 한다. 직업교육의 주인은 전문대학이다. 평생교육의 주체 또한 전문대학이다. 전문대학이 제자리를 지킬 때, 대한민국의 교육은 다시 ‘손맛’과 ‘깊이’를 되찾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