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충남이 준비한 계약학과, 이제 시작

승융배 충남RISE센터장(전국RISE센터협의회장)

2025-11-10     한국대학신문
승융배 충남RISE센터장(전국RISE센터협의회장)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후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또한 우리 앞에 절벽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인구 절벽이다. 일각에서는 인구감소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노동력이 일부 감소한다 해도 4차산업혁명이 이끄는 AI와 로봇이 메꿀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기록적인 인구감소 속도와 급변하는 사회구조 전망을 보면, 우리를 구원할 AI가 나타나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대 정권과 여야를 초월해 초저출생 문제해결을 위해 그동안 수많은 정책과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출생률 통계 추이에 비춰 보면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정작 출생의 핵심 주체인 청년들이 각박한 생존 경쟁과 SNS를 통한 비교 문화 확산 등으로 연애와 결혼마저 무관심한 형편이다. 특히 비교 문화 확산은 맹목적인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청년들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지는 현상을 현실이 되고 있다.

■ RISE의 시간이 시작됐다 = 그동안 고등교육정책의 목표는 대학 자체의 경쟁력 강화하고 대한민국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수도권 명문대 진학이 학교의 자랑이 됐고, 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전국 고등학교 정문에 수도권 유명 대학의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다. 이러한 인식은 학생들을 수도권으로 몰리게 하는 현상을 발생시켰고, 그만큼 지역에는 학생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이것은 사람이 빠져나가는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쏠림 현상은 상승하는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지역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발생시키면서 지역의 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의 입장에서 대학은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집적된 강력한 싱크탱크다. 지역대학이 지역이 당면한 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 지역상생과 지역대학 명문화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가 있다.

충청남도는 대학의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충남형 계약학과를 제시했다. 이는 충남 소재 대학에 입학해 지역 기업의 맞춤 교육을 이수하고 취업과 정주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로 청년들의 삶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충남이 준비한 계약학과, 이제 학생의 시간이 시작된다 = 대학은 한 사람이 삶을 설계해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 머무르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러나 오늘날 이 질문은 대학 안에서 쉽게 길을 잃는다. 학생들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대학에 오지만, 졸업 후에는 오히려 더 불확실한 현실 앞에 서게 된다. 전공은 진로와 멀고, 배움은 현장과 닿지 않는다. 고등교육이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그 무게를 전가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청년층 실업률은 6.1%에 달하고,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는 0.39개에 불과하다. 연평균 대학 등록금은 682만 원 수준으로, 교육을 향한 열망조차 비용이라는 현실에 막히는 시대다. 청년에게 대학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는 사다리가 아닌, 오히려 삶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구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실험들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계약학과’다. 계약학과는 기업이나 산업과 연계해 교육과정을 공동 설계하고, 졸업 후 진로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갖춘 학과로, 현장 밀착형 교육과 채용 연계를 통해 진로와 배움 사이의 간극을 실질적으로 좁히는 새로운 방식의 고등교육 모델이다.

“대학이 산업과 지역, 청년의 삶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가.”

물론 이 제도가 모든 청년의 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학생들에게 이 제도가 진로와 배움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는 현실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등록금 혜택이나 취업 유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학생이 자신의 방향을 더 이른 시점에 구체화하고, 교육과 노동의 연결을 스스로 체감하게 된다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나 수치가 아니다. 정책은 늘 지표로 평가되지만, 교육의 구조는 결국 ‘사람의 경험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돕는 곳’으로 다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은 질문을 바꾸고, 구조를 새롭게 짜야 한다.

충남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담론이 아닌 실천 속에서 찾고 있다. 충남RISE를 통해 계약학과를 지역의 현실과 청년의 미래를 연결하는 구조로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현재 충남에서는 16개 대학이 총 44개의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며, 모빌리티·첨단공학·바이오·반도체·디스플레이·외식산업 등 지역 산업을 중심으로 약 1,000명의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이미 500여 개의 기업이 대학과 협력해 교육과 채용을 연계하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취업 보장이나 등록금 혜택을 넘어, 대학-산업-청년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지역에서 실현해나가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지역 정주와 상생의 전환점: 충남형 계약학과”

계약학과는 단순히 일자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넘어서, 청년이 지역에서 머물 이유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이다. 떠나야만 미래가 열린다는 오랜 공식을 깨고, 지역에 머물러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옮기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지역에 남아 뿌리를 내릴 때, 지역의 변화가 시작된다.

분명 계약학과는 만만한 사업은 아니다. 구직 청년의 입장에서 수도권 기업 수준의 근무환경과 만족스러운 임금을 원할 것이고,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과 별개로 우수 인재를 기대할 것이다. 이 간극의 차를 메우기 위해 대학의 조력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은 지역 안에서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내고, 그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육성해 내야 할 것이다.

충남이 계약학과에 거는 기대는 바로 이런 변화다. 학생 한 명이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지역은 미래의 활력을 얻는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대학은 살아있는 교육을, 지역은 함께 미래를 설계할 동반자를 얻는다. 이는 단순한 정책 성과가 아닌, 지역과 청년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상생의 서사다.

계약학과는 그 변화를 여는 작은 문이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새롭게 쓰이기 시작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 변화가, 충남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떤 미래를 가능하게 할지 기대하게 된다.

청년이 떠나는 지역이 아니라, 머물며 미래를 만드는 지역. 충남은 그 변화를 이미 시작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