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10곳, 5년간 친인척 1525명 채용… 개혁 시급!

국립대병원, ‘가족채용·혈연세습’ 심각… 10명 중 8명이 정규직 의사만 653명이 친인척, 전체 43% 차지…서울대병원 325명으로 ‘최다’ 전문가들 “병원 ‘추천제·수시채용’ 문제 키워…공정성·감독권 강화해야”

2025-11-04     김의진 기자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최근 5년간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서 임직원의 친인척 1525명이 직원으로 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 직군은 653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해 고소득 전문직 영역까지 이른바 ‘혈연 네트워크’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대병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보건의료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채용 공정성·투명성을 근본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본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서울대병원 등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의 최근 5년간 임직원 친인척 채용 현황 자료를 보면, 전체 채용자 1525명 중 1221명(약 80%)이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별로는 서울대병원이 473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남대병원(234명), 경상국립대병원(171명), 부산대병원(167명), 전북대병원(148명) 등이 뒤를 이었다. 경북대병원과 충북대병원의 경우 친인척 채용자가 모두 정규직으로 확인됐다.

특히 병원의 핵심 업무를 맡는 전문직 중심으로 친인척 채용이 몰린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로 채용된 친인척은 총 653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친인척으로 뽑힌 사람 10명 중 4명이 의사였다는 셈이다. 간호사·임상병리사 등 간호·보건직은 413명, 의료기술이나 검사 업무를 담당하는 의료기술지원직은 275명, 행정·시설관리직이 144명, 약사도 19명이 포함됐다.

서울대병원은 의사 친인척 채용이 325명으로, 전체 친인척 채용의 70% 가까이 차지했다. 전남대병원에서도 117명, 부산대병원에서 77명, 경상국립대병원도 44명의 의사 친인척이 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직군은 병원 안에서 진료와 연구, 교육을 모두 담당하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자리다. 통상 대부분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는 고소득 전문직이다. 또 일정 경력을 쌓으면 교수로 승진하거나 의료진 중에서도 책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병원 내 엘리트 경로이기도 하다.

■ 병원 內 세습 “누구 자녀인지가 더 중요” = 전문가들은 친인척 채용이 계속될 경우 의료계 내부에 세습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부모가 의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자녀가 전공의로 들어오고 이후 교수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병원 내 주요 보직이 특정 혈연·인맥 중심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단국대병원 전공의 출신의 한 종합병원 교수 A씨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교수 부모 밑에서 자녀가 전공의로 들어오는 건 드문 일이 아니”라며 “의료계가 워낙 좁아서 내부 추천이나 연고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누구의 자녀인지가 중요한 문화가 생기기 쉽다”며 “의사 사회 안에서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국민 입장에서는 공공 의료기관인 국립대병원조차 혈연으로 얽힌 조직이라는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친인척으로 채용된 사람들 가운데 10명 중 8명 이상이 정규직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규직 채용이 가족 단위로 이어질 경우 병원 안에서 자리 세습이 더 쉽고, 빠르게 굳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립대병원의 노조 관계자 B씨는 통화에서 “병원 안에서는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며느리인지 금세 소문이 난다”며 “아무래도 주변에서 조심하게 되고 평가나 근무 분위기에도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서류나 면접 절차는 형식적으로 다 갖추고 있지만 추천 단계에서 이미 합격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부 인사가 추천하면 사실상 통과 보증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결국 사람 따라가는구나’ 하는 체념이 퍼지고 일에 대한 동기나 자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추천제·수시채용’ 느슨한 절차가 내부 인맥 키웠다 = 의료계에선 의사 채용 과정에서 ‘추천제’나 ‘수시채용’ 제도도 내부 직원의 추천이나 학연·지연을 작동시키는 여지를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국립대병원은 공채 외에도 ‘전문분야 수시모집’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인력 충원을 진행하고 있다. 병원이 급하게 필요한 분야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라서 수시모집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정해진 경쟁 절차나 외부 검증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립대병원 노조 관계자 B씨는 “내부 인맥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병원 안의 의사나 교수, 이미 근무 중인 직원이 ‘이 사람 괜찮다’며 추천하면 실제로 채용까지 이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며 “실상 추천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쟁인 셈”이라고 말했다.

종합병원 교수 A씨도 “편의로 시작된 수시채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연고 중심의 모집으로 변질됐다”며 “병원처럼 전문직 비중이 큰 조직에서는 이런 관행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채용 공시제, 친인척 채용 신고제 등을 도입하고 교육부 차원의 감시권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B씨는 “병원이 어떤 직군에서 몇 명을 뽑았는지, 경쟁률과 합격자 현황은 어떤지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채용 공시제가 필요하다”며 “병원 직원이 친인척을 채용할 때는 이를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정복 민주당 의원도 본지에 “국립대병원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공공 의료기관인 만큼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채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이라면 내부 사람들끼리 채용을 주고받는 일이 없도록 교육부와 관련 기관이 인사 과정을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