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고 자율 높여야 대학 경쟁력 확보”… KEDI 교육정책 국제세미나 개최
6일 더 플라자 호텔서 KEDI 교육정책 국제세미나 열려… KEDI·주한호주대사관 공동 주관 고영선 KEDI 원장 “고등교육지출 늘리고 규제 중심 체제서 경쟁 중심 생태계로 전환해야” Susan Jones 주한호주대사관 교육·연구 참사관 “필요할 때만 개입… 신뢰 기반 규제가 핵심”
[한국대학신문 윤채빈 기자] 저출생과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대학은 지금이 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 판단하고,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도 교육정책 국제세미나를 열고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를 논의했다.
6일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KEDI 교육정책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KEDI와 주한호주대사관이 공동 주관한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혁신·지역성장·글로벌 협력의 동력으로서의 대학’으로, 현장에는 고영선 KEDI 원장, Susan Jones 주한호주대사관 교육·연구 참사관, Toshiro Ohashi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공학부 교수 등 세계 각국의 교육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 “규제 중심 체제 벗어나 경쟁 중심 생태계로” = 고영선 KEDI 원장은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 원장은 우리나라 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이 정체돼 있다는 진단 속에, ‘규제 개혁’을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고 원장은 고등교육 지출과 경쟁력 간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GDP 대비 고등교육 지출 비율은 1.4%로 미국(2.3%)보다 0.9%포인트 낮다”며 “이를 우리 경제 규모로 환산하면 약 23조 원의 격차가 난다. 그만큼 투자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스웨덴 등 고등교육 지출이 많은 나라일수록 고등교육 경쟁력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역시 재정 확충 없이는 높은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규제 개혁도 과제로 지목됐다. 현재 대학은 설립·입학·정원·인사·재정·학사 운영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 규제를 받고 있다. 고 원장은 “정부는 대학 설립·폐쇄, 정원·입학, 재정·학사 운영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고 있다”며 “지금의 고등교육은 ‘규제 중심 체제’에서 ‘경쟁 중심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을 통제하는 구조로는 세계 수준의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 원장은 “등록금, 학생 선발, 조직 운영 관련 규제는 단계적으로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한다”면서도, “규제를 전면 해제하는 데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우선 연구 실적과 취업률이 높은 상위권 대학부터 시범적으로 자율화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국립대 법인화 확대 등이 과제로 꼽혔다. 서울대·인천대 사례를 바탕으로 법인화 제도를 보완해 나머지 국립대까지 자율적 운영 체제를 확산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정보 공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과 학과의 교육·연구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넓히고, 대학의 자발적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고 원장은 “경쟁과 자율이 확보돼야 대학이 스스로 혁신하고, 그 성과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제는 중앙집권적 통제를 벗어나 자생적인 고등교육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때”라고 했다.
■ “정부는 최소한의 개입만… 대학의 ‘자기점검’ 문화 정착시켜야” = Susan Jones 주한호주대사관 교육·연구 참사관은 ‘호주 고등교육 정책 방향 및 혁신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Susan Jones 주한호주대사관 교육·연구 참사관은 “호주 정부는 고등교육의 품질 확보를 위해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하고, 대학이 스스로 품질을 보증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품질 관리의 중심에는 ‘고등교육품질기준청(TEQSA·Tertiary Education Quality and Standards Agency)’이 있다. TEQSA는 고등교육기관의 등록과 품질 보증을 담당하는 독립 규제기관으로, 기준 기반(standards-based), 위험 반영(risk-reflective), 투명성(transparency)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Susan Jones 참사관은 “TEQSA의 철학은 ‘필요할 때만 개입(intervene only as necessary)’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대학 스스로 내부 점검과 개선을 할 수 있는 ‘자기점검(Self-assurance)’ 문화를 조성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 스스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신뢰 기반의 규제 모델이 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호주 정부는 공정한 고등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호주고등교육위원회(ATEC·Australian Tertiary Education Commission)’도 신설했다. Susan Jones 참사관은 “이 위원회는 기존의 품질 규제 기관인 TEQSA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 운영될 예정”이라며 “TEQSA가 교육의 질과 표준을 규제하는 한편, ATEC는 대학 운영 전반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고, 직업교육과 고등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진 패널 세션에서는 ‘대학의 글로컬화와 국제화: 한국·호주·일본 사례’를 주제로 논의가 진행됐다. 패널에는 백승주 KEDI 고등교육연구실 연구위원, Lucas Walsh 호주 모나쉬대 교육학부 교수, Amy Hunter 호주 디킨대 재활용·청정에너지 상용화 허브(REACH) 총괄이사, Toshiro Ohashi 일본 홋카이도대 공학부 교수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