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학도 약대처럼 6년제로… 정부·국회도 공감, 제도 전환 논의 본격화
교육부·보건복지부 “한약학 전문성 강화 필요” 공감대 형성 4년제 한계 지적…현장·임상 중심 실무형 인재 육성 요구↑ 전문가들 “한의약 산업 성장세 속 고급 인력난 해법 될 것”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교육계와 의료계, 정치권이 한약학 교육의 6년제 전환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정부가 한약학과 6년제 전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한약사 양성 시스템이 약학대학처럼 임상 중심 전문직 교육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한약학과 6년제 전환과 정원 확대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다. 교육부·보건복지부에서도 제도 전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한약사 실무와 임상 교육 확대를 통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며 “한의약 산업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고급 인력 양성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약학과는 경희대와 원광대, 우석대 등 국내 3개 대학에서만 개설돼 있다. 모두 4년제로 운영된다. 전국 약학대학 37곳 중 단 3곳만 한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한약사회에 따르면 한약사 면허 보유자는 3100여 명 수준이다. 국내 활동 중인 한의사는 약 3만 명 수준이다. 한의사와 약사 간 인력 비율은 10대 1 수준까지 벌어졌다. 국내 의사(약 16만 6000명)와 약사(약 7만 7000명) 간 인력 비율이 2대 1 정도인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회 회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현재 4년제 체제로는 국민 보건과 직결된 한약 전문 영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임상·실무 중심의 6년제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이어 “한약학과는 서울과 전라권에 집중돼 있어 강원·충청·경상권에서는 한약사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지역 거점대학에 한약학과를 신설해야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약학과 6년제 논의는 지난 2011년 약학대학이 6년제로 전환된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약대의 경우 2년 예비교육(기초과학·의약학기초) 후 4년 본과 과정에서 임상 실습과 병원 약학 교육을 받는 이른바 ‘2+4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한약학과는 여전히 4년 단일 학제로 운영돼 교육계에선 임상·실무 교육 비중이 적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경희대 한약학과의 경우 전체 전공과목 중 약 14%만이 실습(임상) 관련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졸업생 상당수는 제약회사나 연구소, 공공기관 등으로 진출하지만 실제 한의약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는 제한적인 실정이다.
■ 한약사들 “4년제 교육으론 임상 전문성 부족” 현장서도 공감대 = 한약계 내부에서는 현재 교육 방식으로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4년제 한약학과 교육이 대부분 이론 중심으로 구성된 탓에 학생들이 실제 환자 사례를 다루거나 한의약 임상 환경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약재 성분과 제조 과정은 배우지만 약이 환자의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임상적 감각은 졸업 후 현장에 나가서야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약사 A씨는 통화에서 “한방병원에서 근무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환자별 처방 조합과 복용 약물의 부작용 가능성을 판단하는 일”이라며 “학교에선 실제로 연습해 본 적이 없어 처음 당시엔 출근이 두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약학 교육이 약대처럼 실습·임상 중심으로 개편된다면 졸업 후 현장에서 바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약학 교육을 전문직 중심으로 바꾸자는 논의는 산업계에서도 요구하는 지점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한의약 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한의약 산업 전체 매출은 11조 6962억 원, 종사자는 12만 7082명으로 집계됐다. 2년 새 각각 7.5%, 8.6%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건강·면역 관련 소비가 늘면서 산업 규모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는 속도에 비해 고급 전문인력인 연구·개발형 한약사의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경방신약 관계자는 본지에 “한약학 전공자는 약효 분석과 생약 성분 연구를 이해할 수 있어 제약산업에서 귀한 인력”이라면서도 “졸업생 수가 적고 4년제 교육만으로는 고급 연구직을 맡기 어려워 대부분 기업 내부 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약학 6년제가 도입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임상 지식과 연구 경험을 갖춘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TF 구성 추진… 내년 상반기 제도 설계안 마련 전망 = 정부와 국회에서도 한약학 6년제 전환을 공식적으로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확인되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과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의원은 각각 교육부, 복지부에 서면 질의를 보내 “한약학과를 6년제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 “지역 거점대학에 한약학과를 신설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는 한약학 교육 시스템 개편을 검토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제도 전환 논의를 정식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단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약학과 신설과 입학정원 확대를 복지부와 협의해 추진하겠다”며 “6년제 전환 필요성 여부를 관계 부처와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복지부도 마찬가지 입장을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약사 실무·임상 교육 확대를 통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한의약 산업 발전과 지역 인력 불균형 해소를 위해 교육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한약사회에 따르면 한약업계는 올해 말까지 교육부·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추진 중이다. 한약학 교육 시스템을 6년제로 바꾸는 로드맵과 교육과정 개편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제도 설계안 초안을 마련하고 정부에 공식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계에선 정부와 국회가 공식적으로 다루는 현안이 된 만큼 제도 개선 가능성이 가시권으로 들어왔다고 분석한다.
이기우 전 교육부 차관은 “한약학 제도 개편은 각 부처 간 업무 경계로 인해 그동안 진전이 더뎠던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교육부·복지부가 같은 방향성을 언급한 만큼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안에 기본 검토안이 마련되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한약학과가 6년제로 전환될 경우 현재 약학·수의학·치의학 등 이미 6년제로 운영되는 보건의료 교육 전체가 임상 중심으로 운영되는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약대의 경우에도 2020년 6년제로 전환된 이후 학생들이 약국, 병원, 제약회사 등 실무실습을 경험하면서 졸업 직후 현장에서 바로 투입될 수 있을 만큼 역량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채윤 회장은 “한약학이 임상·연구개발(R&D)·공공보건을 다루는 전문직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약학 6년제가 도입되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인재가 늘어나고 산업 현장에서도 체계적인 인력 양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