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서울대 10개’ 다음은 ‘전문대 100개’

강문상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장(인덕대 교수)

2025-11-19     한국대학신문
강문상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장(인덕대 교수)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요약되는 거점국립대 강화 구상을 본격화했다. 핵심은 2030년까지 지방 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고, 5년 동안 4조 원 이상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일극화를 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방향성 자체는 타당하다. 다만 고등교육 생태계의 다른 축, 특히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의 재정 취약이 구조적으로 방치돼 온 현실을 외면한다면, 산업 현장의 인력 병목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 설명에서도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의 연장과 확대가 강조되지만, 재정의 사용처가 거점국립대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직업교육 기반은 상대적 박탈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대학은 지역산업과 가장 가까운 교육기관이다. 졸업생의 취업률이 일반대보다 높고,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 정주해 일하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통계는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이는 지방소멸과 인력 미스매치 위기를 완충하는 ‘가장 짧은 경로’가 직업교육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행 재정지원 체계에서 전문대 몫은 여전히 협소하고, 공모 중심 사업은 규모가 작고 단발성이다. 실험·실습 중심인 전문대 교육은 원가 구조상 장비와 소모품, 안전 인프라에 투입할 고정비가 크지만, 장기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급감이 겹치며 교과 혁신의 속도는 느려졌다. 그 결과 실습 기자재의 노후화, 현장실습의 질 저하가 누적되고, 이는 곧 기업의 신입사원 온보딩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시장은 인력 부족을 ‘임금 프리미엄’과 ‘생산성 손실’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거점국립대 강화가 곧 전문대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축은 상호보완적이다. 연구·핵심인재를 길러내는 거점대의 상향이 필요하다면, 생산현장을 지탱하는 숙련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의 동시 강화가 필요하다. 국가 전체 생산성은 ‘정점의 연구력’과 ‘바닥의 숙련력’이 함께 올라갈 때 비로소 비약한다. 반대로 큰 대학과 큰 기업의 결합만 강화되면, 지역 산업의 생태계는 얇아지고 중소·중견의 기술현장은 인력 공백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균형성장을 말한다면, 전문대에 대한 별도 재정 트랙과 결과지표 기반의 장기 보조로 정책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예컨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고특회계) 안에 ‘직업교육 전용 계정’을 신설해 장비·실습, 신기술 커리큘럼 갱신, 현장교원 양성에 최소 비율을 의무 배정하고, 취업률·정주취업률·기업만족도 같은 성과지표에 연동된 블록그랜트를 도입하면 단발성 공모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권역별 공용 실습팩토리를 구축하는 패스트트랙도 시급하다. 국고·지자체·산업체가 매칭하는 방식으로 전동화 파워트레인, 로보틱스 유지보수, 반도체 설비처럼 고가 장비가 필요한 분야에 공동 인프라를 깔면, 단위 대학의 자본제약을 넘어 실제 채용 직무와 맞닿은 실습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 혁신을 내세운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와 연계해 지자체 재원을 제도적으로 결박하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교육-고용-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지역에 고정시킬 수 있다. 이는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세수와 지역 내 총생산을 좌우할 경제 아키텍처의 문제다.

정책은 결국 예산이고, 예산은 우선순위의 언어다. 1인당 교육비를 대폭 끌어올리는 대형 투자와 더불어, 직업교육에 대한 ‘작지만 확실한’ 재정결단을 병행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비전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예산서에 전문대 전용 재정트랙, 성과연동 블록그랜트, 권역별 실습팩토리, 계약학과·계약정원에 대한 실습가중치 보정 같은 항목이 구체적으로 적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서울대 10개’는 지역과 산업, 시민의 일자리로 연결된다. 고등교육의 균형은 숫자의 미학이 아니라 생태계의 기능에서 증명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문대학을 예산의 변두리에서 정책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용기다. 그것이야말로 정부가 약속한 국가균형성장을 현실로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울대 10개 다음 문장은 전문대 100개여야 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