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 절대평가 8년, 국·수와 홀로 다른 평가로 ‘공교육 붕괴’ 가속화

필수 기초 영역, 영어만 다른 평가…1·2·3등급 50% 육박, 변별력 상실이 공교육 위축 원인 영유아 사교육은 격차 심화…제도 개선 및 ‘문해력’ 중심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 강조 “AI 시대, 인간 고유 역량 함양에 영어교육 초점 맞춰야”…영어 공교육 정상화 촉구

2025-11-13     백두산 기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과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영단협)은 13일 국회에서 ‘영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진단과 제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백두산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지 8년이 되면서, 1등급부터 3등급까지의 비율이 전체 수험생의 50%에 육박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국어, 수학과 동일한 필수 기초 교과군 영역임에도 영어의 평가 방식만 홀로 다르게 적용되면서 대입에서 변별력을 상실했고, 이는 공교육 현장의 급격한 위축과 사교육 의존도 심화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과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영단협)은 13일 국회에서 ‘영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진단과 제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영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심포지엄에서는 영어 교육계 전문가들이 모여 현행 수능 평가 제도의 불공정성을 비판하고, AI 시대에 맞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 비전을 제시하며 ‘동일 기초과목군, 동일 평가 방식’ 적용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재환 영단협 공동대표(경북대 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제도적 개선 없이 영어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비정상적인 영어교육의 현주소를 정상 궤도로 복원하기 위해 국회와 전문가들이 협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무늬만 절대평가’로 위상 하락…영유아 학원비는 대학 등록금의 ‘2.3배’ = 심포지엄 주제 발표에서는 현행 수능 평가 체제와 영유아 사교육 확대가 영어 공교육 위기를 구조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중점적으로 제시됐다.

윤희철 덕성여대 교수(영단협 공동대표)는 ‘영어 격차의 심각성’을 발표하며, 영유아 영어 사교육 시장이 ‘4세 고시’, ‘7세 고시’ 등으로 대변되며 극단적으로 상업화·고도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료를 인용해 서울시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월평균 학원비(2024년 기준 약 136만 원)가 4년제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의 2.3배에 달하며, 특히 강남·서초 등 특정 지역에 집중돼 교육 기회의 지역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영유아 사교육의 팽창으로 영어 격차가 공교육 진입 이전부터 구조화돼, 공교육의 기능과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원 서울대 교수는 ‘범용 AI 시대의 영어교육’ 발표를 통해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도입 이후 고교 3년간 과목 선택 추이에서 영어 수강 인원 비율이 지속적으로 급감하고(2019년 92.7%→2023년 80.6%), 중등교사 임용 인원 역시 수학, 국어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2026년 수학 대비 77.9%) 현상을 제시했다.

(자료=강경숙 의원실)

이 교수는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이 ‘무늬만 절대평가’인 현행 수능 평가 체제 때문임을 지목하며, 공교육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기초 교과군 동일 평가 체계 적용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AI 시대, ‘K-컬처 전략’과 ‘언어복지’ 기반 글로벌 문해력 확보해야 = AI 시대에 한국 영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미래 비전과 전략적인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전수용 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문학번역원 원장)는 ‘K문화 확산 인재 육성을 위한 영어교육 전략’을 통해 영어교육이 K-컬처의 글로벌 확산에 기여해야 하는 21세기적 소명을 제시했다.

전 교수는 AI 번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문학 번역과 같이 문화적 맥락과 창조적 표현을 요구하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학생들은 AI의 도움으로 기술적 측면을 습득하는 한편, 문화적 이해, 비판적 사고, 창의적 표현력을 집중적으로 함양하는 능동적 학습을 해야 하며, 이를 통해 K-문화 산물의 번역과 유통에 관여할 인적 자원을 육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현영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AI 시대의 영어교육: 언어복지와 글로벌 문해력’을 주제로, 교육의 초점을 외국어 유창성에서 글로벌 문해력(Global Literac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더라도 소통하려는 노력을 ‘언어 정의(Language Justice)’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언어 복지(Language Welfare)’로 정의하며, 이러한 태도가 문해력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AI의 발전으로 정형화된 중급 수준의 언어능력이 필요한 일은 AI가 처리 가능해졌으므로, 공교육은 낯설고 복잡한 정보와 상황을 이해해 내는 역량, 즉 글로벌 문해력을 함양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경숙 의원이 심포지엄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백두산 기자)

■ 종합토론, ‘인간 중심 교육’ 회귀와 ‘평가 혁신’ 필요성 제기 = 이어진 종합 패널 토론에서는 이동환(경인교대), 김병선(가톨릭관동대), 김현주(단국대), 김혜경(한국공학대), 정은귀(한국외대), 전영주(목원대) 교수가 참여해 각 분야의 심화된 제언을 이어갔다.

토론자들은 유·초등 영어교육에서 인간 중심 교육의 필요성,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맞는 긍정적 역류효과를 위한 평가 혁신, 그리고 AI 번역의 한계를 넘어선 인문학적 통찰과 특수 목적 영어(ESP) 교육의 필요성 등 실질적인 정책 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폐회사를 맡은 홍선호 서울교대 교수는 “오늘 논의된 제안들이 정책과 학교 현장에 실질적으로 반영돼 모든 학생이 공정하고 포용적인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며 “영어 공교육 정상화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교육의 본질에 다가가는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영단협은 이번 심포지엄의 논의를 바탕으로 수능 제도 개편을 시발점으로 삼아 영어 공교육의 장기적 문제 해결을 위한 후속 정책 제안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