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력이 미래다] 거제 제조업 “일할 사람이 없다”… 지역 대학·기업이 현장 인재 키운다

수주 늘어도 기술인력 고령화, 청년층 유출로 현장 공백 우려 거제대·태림산업, 대학·기업이 실전형 인재 양성 협력 ‘본격화’ 전문가 “지역 인재 정착 유도 정책 필요… 지자체 역할 중요”

2025-11-18     김의진 기자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국내 조선·기계 분야가 활황 국면에 들어섰지만 정작 생산·기술직을 채울 인재가 없어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는 경고가 나온다. 특히 제조업이 중심인 경남 거제의 경우 고용은 늘었지만 청년층의 지역 이탈로 기술인력의 연령대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현장 인력 공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최근 거제대와 태림산업이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실전형 기술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최경준 거제대 산학협력단 팀장은 18일 본지와 통화에서 “거제 제조·조선업의 경우 수주량이 늘고 공장도 바쁘게 돌아가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은 듯 보인다”면서도 “일할 사람, 특히 기술을 제대로 갖춘 젊은 인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모자라고 남아 있는 분들도 대부분 나이가 많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로 부산·거제 지역 조선·기계 분야에서 일하는 숙련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는 50대 이상이다. 배의 조립·용접, 기계 설비 등 핵심 공정을 맡는 상당수가 중장년층인 셈이다. 반면 20·30대 비중은 20% 중반대로 떨어진다. 젊은 기술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것이다.

최 팀장은 “거제 제조업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고민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위기”라며 “공정이 지연되고 회사들은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다. 지역 청년들이 거제를 떠나고 현장은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현장에 젊은 기술자가 없다… 채용 늘리고 싶어도 속수무책 = 경남 전체를 보면 기술인력 부족 인원은 약 2500명에 이른다. 채용 공고를 냈지만 채우지 못한 미충원 인력도 전국 상위권이다. 특히 거제의 경우 도시 전체가 조선업에 크게 기대고 있는 탓에 용접·설계 등 특정 직무에 인력이 쏠려 산업 변동성이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호황기에는 힘이 되지만 경기가 꺾이면 거꾸로 리스크가 되는 것이다.

앞서 조선업 불황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기술자들이 복귀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최 팀장은 “당시 많은 인력이 다른 지역이나 직종으로 이동하거나 일부 기술자들은 조기 은퇴를 한 것으로도 들었다”며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인재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은 채용을 늘리고 싶어도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거제 지역 산업계가 겪고 있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거제대와 태림산업이 손을 맞잡았다. 대학·기업이 아예 처음부터 필요한 인재를 직접 길러내 지역 인력난에 대응하겠단 취지에서다. 기계·제조 분야에서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대학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기업에선 학생들에게 공정·설비·프로젝트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현장에선 거제대·태림산업 간 협력을 통해 산업의 흐름이 대학 교육과정에 즉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기업에서도 대학 교육에 참여하면서 필요한 기술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졸업할 때가 되면 실무 경험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어 취업 후 적응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전영준 거제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산업이 원하는 인재는 현장에서 장비를 다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전형 인력”이라며 “대학과 기업이 연결되지 않으면 지역 산업은 또다시 인력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승한 태림산업 대표도 “기업에게 대학은 가장 가까운 기술 파트너”라며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대학과 연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 산학협력만으론 부족… 지역 전체 생태계 구축이 과제 = 전문가들은 지역대학으로서 거제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역 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청년층을 지역에 정착시키는 것에서 지역대학의 인재양성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 때문이다.

한광식 세종특별자치시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전문대학평생직업교육협회 사무총장)은 본지에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역 안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청년들이 터전을 떠나지 않는다”며 “대학이 지역 산업의 기술인재 공급 플랫폼으로서 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위원은 이어 “특히 거제는 조선·기계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산업이 흔들릴 때마다 인력 공급이 크게 요동치는 경향을 보이는 지역”이라며 “지역에서 필요한 인재를 지역대학에서 기르는 시스템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산학협력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기업과 대학이 손잡아 인재를 길러도 정작 인재가 지역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문제는 다시 반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역 전체가 인재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오현 대경대 경영부총장은 “기업의 근로환경과 지역 정착 여건이 더 좋아져야 한다”며 “산업도시의 경우 공단 중심 구조로 인해 생활환경이 단조롭거나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 많아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일은 여기서 하지만 삶은 다른 곳에서 이루고 싶다’는 심리가 강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성 부총장은 이어 “산학협력의 영향력이 지속되려면 지자체도 움직여야 한다. 주거, 교통, 청년지원 정책으로 지역의 정착 매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라며 “교육부의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등 산학협력을 지원하는 정책과도 연결해 지역 전체가 함께 만드는 생태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