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대한민국] 지방 사립대를 살려야 대한민국을 살린다

성경륭 상지대학교 총장

2025-11-21     한국대학신문
성경륭 상지대 총장

오래된 문제, 깊어지는 격차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제를 안고 살아왔다. 경제와 고용, 교육과 의료, 문화까지 모든 영역에서 수도권은 비수도권을 압도하며 성장해 왔다. 그 결과 지방은 점점 더 쇠퇴하고, 청년들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대학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수도권 소재 대학은 학생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지방 소재 대학은 신입생 감소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왔다. 특히 지방 사립대는 국립대와의 등록금 차이로 인해 학생 확보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국립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으로 학생들을 끌어들이지만, 사립대는 재정 구조상 등록금을 낮추기 어렵다. 일종의 불공정거래가 구조화 돼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방 사립대는 점점 더 경쟁에서 밀려나고, 지방 소멸의 그림자가 대학에도 짙게 드리우게 됐다.

새로운 문제, 더 큰 위기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방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방 사립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위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정부의 투자가 지방거점 국립대에 집중되면, 지방 사립대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에 따라 지방 사립대의 소멸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 정부의 재정진단평가에 ‘재학생 충원율’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저출산으로 학생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결국 지방 사립대는 세 가지 위기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전체 대학 진학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둘째, 수도권 대학으로의 편입생 유출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지방거점 국립대와의 등록금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3중 위기’가 지방 사립대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지방거점 국립대와 지방 사립대의 협력·상생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추진되고 대학구조조정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가 설계한 재학생 충원율을 포함하는 재정진단평가가 그대로 시행되면, 지방 사립대의 소멸이 가속화해 국가균형발전과 지방 살리기를 목표로 하는 이재명 정부의 큰 방향성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 사립대와 지방대를 살리기 전에 그 둘을 먼저 죽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심각한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지방 사립대의 소멸을 방치할 것인가?
지방 사립대가 문을 닫는다면 그 피해는 단순히 교육기관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학생 5000명과 교직원 400명이 있는 대학이 문을 닫을 경우 지역경제에 연간 최대 200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한다. 학생 1만 명과 교직원 600명이 있는 대학이 사라지면, 그 손실은 연간 최대 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지역 상권, 주거, 교통, 문화, 의료 등 모든 분야에 파급되는 심각한 타격이다.

더 나아가 지방 사립대의 소멸은 한국 사회 전체의 인구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한국은 이미 2020년에 5184만 명을 정점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인구정점을 통과한 것이다. 2024년에는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 중 210곳에서 사망자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는 ‘데드 크로스’가 발생했다. UN은 2100년 한국 인구를 2700만 명으로 전망하고,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15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대학 충원율 역시 급격히 떨어질 전망이다. 현행 대학 진학률을 유지할 경우 2036년에는 80.8%, 2043년에는 53.8%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평균 대학 진학률을 적용하면 대학 충원율은 2036년 59.1%, 2043년에는 39.4%까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볼 때 지방 사립대의 소멸은 결국 지방 전체의 소멸을 촉진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소멸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지방 사립대의 새로운 역할
지방 사립대를 단순히 ‘지방의 대학’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미래 인구와 인재를 지탱할 중요한 인프라다. 1984년 대체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초저출산이 40년 이상 지속된 상황에서 결혼 촉진이나 출산 장려만으로 인구 문제를 20~30년 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은 바로 해외 인적 자원의 적극적인 유치다. 세계에는 이미 한국을 사랑하는 4억 명 이상의 잠재적 인적 자원이 존재한다. 2023년을 기준으로 2억 2500만 명의 한류 팬, 1억 5000만 명의 태권도 수련자, 1000만 명의 한상기업 종사자, 708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에 큰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방 사립대는 이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정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수준의 재정투입을 통해 이 사업을 적극 도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 인구와 인재를 확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한국사, 한국문화 등 교양교육과 함께 AI와 첨단산업 분야의 전문교육을 제공한다면 이들은 한국의 미래 경제위기와 인구 위기를 해결할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우수한 해외 인재들을 최대한 유치해 잘 교육한 다음 이들이 우리의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하고, 나아가 이들을 점진적으로 한국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방 사립대는 초저출산 시대에 최대한 빨리 구조 조정돼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 경제기반과 인구 기반을 구축하는 강력한 구원투수이자 한류를 기치로 내걸고 세계의 프런티어를 여는 글로벌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고 봐야 한다.

국공립대와 지방 사립대의 협력 생태계
대한민국의 대학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상호보완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국공립대와 수도권 대학은 첨단기술과 산업 분야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적 수준의 기술혁신과 신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바이오헬스, 재생에너지 등 미래 신기술과 신산업을 선도하는 것이 이들의 사명이다.

반면 지방 사립대는 해외 인재들을 학생으로 유치해 잘 교육하고, 이들을 현재와 미래의 산업 역군으로, 나아가 미래의 한국 시민으로 육성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전체 4년제 대학 193개 중 153개, 전문대 130개 중 80개가 지방 사립대다. 이들 대학이 해외 인재를 받아들여 교육한다면 지방 사립대는 새로운 활력을 얻고 무너져 가는 지방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또한 이 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을 지방거점 국립대와 수도권 대학의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하게 한다면, 한국의 고등교육 생태계는 기반이 확장되고 내용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교육정책을 일국적 범위에서 벗어나 글로벌 인재를 최대한 확보하는 ‘글로벌 교육정책’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미네소타 프로젝트’(Minnesota Project)를 통해 한국의 우수 인재를 대거 유치해 미국 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처럼 초저출산 위험에 처한 대한민국도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 각국의 우수 인재들을 대거 교육시키는 ‘고등교육 ODA’ 사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해외 유학생을 연간 1만 명에서 최대 5만 명까지 유치해 지방 사립대에 먼저 배정한다면 지방 사립대와 지방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지방 국공립대와 수도권 대학들도 국내 대학에서 훈련된 우수한 외국인 연구인력을 손쉽게 확보하게 돼 모든 대학 간에 협력과 상생의 기반이 구축될 수 있다.

지방 사립대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대학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이다. 지방 사립대는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고, 또 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새롭게 ‘글로벌 지향’의 국가균형성장을 추진한다면 지방 사립대와 지방을 살리는 것은 물론 인구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을 능히 살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방 사립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새로운 인식을 공유해야만 대한민국을 살리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지방 사립대는 빨리 사라져야 할 퇴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인구 위기를 해결하는 ‘지정 생존자’가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세계의 청년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한국의 시민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인구 위기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