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전 속 ‘엄연한 대학’이 현실에선 ‘인증 제외’… 사이버대 규제,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거치며 고등교육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 물리적 캠퍼스와 국경의 의미가 희석되고, 온라인 기반 에듀테크가 대학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최고 혁신대학으로 꼽히는 미네르바 대학은 캠퍼스 없이 운영되고,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온라인 학위 과정으로 전 세계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되돌릴 수 없는 전환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이버대학은 여전히 낡은 규제에 묶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갖춘 나라에서 정작 온라인 고등교육기관은 글로벌 경쟁의 출발선조차 밟지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핵심은 법적 지위와 행정 대우의 괴리에 있다.
고등교육법 제2조는 사이버대학을 일반 대학, 산업대, 전문대와 나란히 정규 고등교육기관(제5호 대학)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한 대학’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이버대학은 교육부의 ‘교육국제화역량인증(IEQAS)’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평가 척도가 기숙사, 출석, 의료보험 등 오프라인 생활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단순 제외에 그치지 않고, 평가 대상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사이버대학이 ‘인증 제외 대학’이라는 낙인을 달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법이 보장한 지위를 행정이 부정하는 모순적 상황이며, 외부에서는 부실대학과 동일한 낙인효과를 발생시킨다. 명백한 행정상의 모순이자 교육기관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은 정부의 이중적 태도이다. 사이버대학에 대한 품질관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 원격대학 기관평가인증 2주기(2025~2029)는 교육목표, 교원, 교육과정, 학사, 경영에 이르기까지 6개 영역, 18개 부문을 정밀하게 평가한다. 서면심사와 강도 높은 현장평가까지 통과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디지털 교육환경 고도화 지원 사업’을 통해 AI 기반 학습환경까지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검증된 대학들조차 국제화 역량 평가에서는 ‘대상 제외’가 되고, 그 결과 외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에서도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품질은 엄격히 관리하면서 기회는 아예 주지 않는 이 이중적 구조는 논리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지속될 수 없다.
법무부의 비자 지침 또한 문제이다. 현재 유학생 사증발급 기준은 IEQAS 인증 여부와 연동되어 있고, 온라인 수업 중심 대학은 “한국에 거주할 필요성이 없다”는 논리로 사실상 비자 발급을 제한한다. 그러나 유학의 본질은 강의실 출석이 아니라 문화, 언어, 네트워크 형성에 있다. 미국과 유럽 대학들이 온라인 학위를 제공하면서도 해외 유학생을 끌어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라인·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교육이 이미 세계 표준이지만, 한국은 오프라인 출석을 유학의 본질로 고정해 국익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
다행히 변화의 계기는 있다. 오는 2026년 1월 원격대학 기관평가인증 결과가 발표된다. 이 시점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규제 혁신의 골든타임이 돼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첫째, 사이버대학을 IEQAS 대상에서 기계적으로 배제해 ‘인증 제외’로 낙인찍는 관행을 즉시 시정해야 한다. 사이버대학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국제화 평가트랙을 신설하거나, 기관평가인증 결과와 연계한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우수 인증 대학을 중심으로 단계적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야 한다. 최우수 등급 대학부터 외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을 허용하여 점진적 개방을 추진할 수 있다. 이미 정부의 엄격한 인증을 통과한 대학들이다. 이들에게조차 문을 열지 않는다면, 정부 스스로 자신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사이버대학은 법전에만 존재하는 ‘제5호 대학’이 아니다. 한국의 교육 영토를 넓히고, Study Korea 300K를 현실로 만드는 핵심 파트너이다. 더 늦기 전에 규제의 논리적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대학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생존 전략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