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전문대학, 냉정한 현실을 넘어 미래 고등직업교육 플랫폼으로
송경영 울산과학대 산학협력단장 겸 라이즈사업단장
대한민국 고등직업교육은 현재 학령인구 감소,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 그리고 지역 소멸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전문대학이 '취업에 강한 교육기관'이라는 기존의 정체성을 넘어, 지역과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고등직업교육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한 냉철한 현실 인식과 과감한 혁신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1. 'Fact Sheet'에 담긴 메시지: 실력 증명을 통한 관계 재정립
최근 한미관세협상 이슈가 있었다. 이 결과가 담긴 Fact Sheet가 '객관적인 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듯이, 전문대학의 가치 역시 '지역 산업 혁신에 대한 대체 불가능한 실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동안 전문대학은 일반 대학 중심의 정책 프레임 속에서 소외되거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대학이 없으면 지역 산업이 멈춘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 전문대학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실력 증명의 핵심은 지역사회와의 관계 재정립에 있다. 정부의 대학재정지원 사업이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사업으로 전환되면서, 대학 지원의 주도권은 중앙에서 지역으로 넘어왔다. 전문대학은 지자체가 가장 잘 아는 지역 중소·중견 기업의 맞춤형 실무 인력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는 전문대학을 지역 인력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인정하고, 재정 및 행정적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전문대학은 이제 더 이상 수혜자가 아닌, 지역 발전의 필수적인 인프라이자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Fact Sheet를 스스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2. AI 시대 혁신 전략: X+AI와 Private LLM
실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DX) 교육 혁신에 달려 있다. 산업 전반에서 AI 기술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전문대학은 'X+AI' 전략을 통해 특성화 분야(X)에 AI 활용 역량을 융합하는 융합형 실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은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우선, 자동차 정비, 보건 의료, 패션디자인 등 전문대학의 모든 특성화 영역에 AI 데이터 분석, 자동화 시스템 활용 등 X+AI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범용 LLM의 한계를 넘어, 대학 내 또는 산학협력 기업 내부에 특정 산업 분야의 데이터로 학습된 Private LLM 구축에 대한 경험을 확보하고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 보안과 높은 실무 적용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보안 환경 하에서 실제 산업 데이터를 다루고 분석하는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장 적응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러한 혁신적 노력이 '전문대학 데이터 기반 교육성과 분석 포럼'과 '전문대학 AI DX 상생발전 콜로키움'을 통해 공유된 바 있다.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AI DX 교육의 표준 모델과 정책적 지원 방향을 논의하는 이러한 협의체는 전문대학 전체의 교육 품질을 상향 평준화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3. 개방형 전문대학으로의 전환: 직업교육법 제정과 평생직업교육 플랫폼 구축
전문대학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선도할 궁극적인 비전은 직업교육법 제정과 (가칭)개방형 전문대학이라는 새로운 모델의 도입이다. 이는 학령기 청년 중심의 교육기관에서 지역 주민 전체의 직업 생애 주기를 책임지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방형 전문대학으로의 전환을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 성인 학습자 및 산업 수요 최우선 반영: 대학의 문턱을 낮추고 성인 학습자와 지역 산업 수요를 최우선으로 반영하여 운영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 유연한 교육 체계: 중장년층, 재직자의 직무전환(Re-skilling)과 직무역량 향상(Up-skilling)을 지원하기 위해 유연한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학습 접근성 및 유연성 보장: 야간, 주말, 온라인, 블렌디드 러닝 등 다양한 방식을 병행하여 재직자의 학습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며, 학위 과정 외에 모듈형 비학위 과정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학습경험인정제(RPL)를 더욱 활성화하여 성인 학습자의 경력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등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 지역 직업교육 거점 역할: 개방형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내 직업계고, 평생학습관, 산업체와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실습 장비, 인적 자원 등 교육 자원과 기능을 연계하고 공유해야 한다. 이는 지역의 모든 직업교육기관이 상생하며 시너지를 창출하는 거점 역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전문대학이 냉정한 현실 직시를 바탕으로 AI·DX 교육으로 실력을 증명하고, 개방형 평생직업교육 플랫폼으로 그 영역을 확장할 때, 비로소 지역 혁신과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명실상부한 미래 고등직업교육의 청사진이 완성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