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청년·지역·산업을 살리는 길: 고등직업교육정책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김차근 한국영상대 교수

2025-11-26     한국대학신문
김차근 한국영상대 교수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다.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 아래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거점 국립대 육성 예산 확정과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재구조화 등 고등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종합적 대책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 기간 이재명 대표가 ‘전문대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으나, 이번 국정과제에서는 구체적 실행 방안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신 지난 11월 교육부가 ‘전문대학 혁신·평생직업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직업교육 현장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물론 아직 의견수렴 단계이며 12월 말 기본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현장의 우려를 반영한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평생직업교육을 위한 지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개된 2026년 신규 사업 예산은 전 정부보다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거점 국립대 등 일반대학에 투입되는 예산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직업교육은 실험·실습 중심이라 교육비는 곧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 전문대학 학생들은 일반대학은 물론 기능대학(폴리텍) 학생보다도 교육비가 현격히 낮아 질 높은 교육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실제로 최근 2개년(2023~2024년) 평균 전문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는 기능대학보다 452만 원, 사립 일반대보다 433만 원, 국·공립 일반대보다 무려 1134만 원이나 낮다. 여기에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 확대가 더해지면 전문대학 학생들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청년 지역 정주를 목표로 설계된 라이즈(RISE)에서도 전문대학의 특성과 기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예산 규모도 적어 지자체의 관심 또한 높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전문대학이 정부가 기대하는 ‘개방형 평생직업교육 플랫폼’으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다. 전문대학 학생들도 정부 비전인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예산 확충이 필수적이다.

둘째, 신규 재정지원사업의 자율성을 확대해 대학이 독창적 평생직업교육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의 재정지원사업은 필수 과제·공통 성과지표·예산 비율 규정 등으로 인해 운영 체계가 경직돼 왔다. 인력양성사업은 진로교육, 취·창업교육, 현장실습, 캡스톤디자인 등이 대표 프로그램으로 반복되지만, 동시에 타 사업과의 중복 방지와 차별화 요구가 있어 대학 내부에서 학과 분리 운영 등 혼선도 많았다. 이러한 프로그램 자체는 필요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시행함에도 성과지표가 양적 실적 중심으로 설계되어 질적 성과로는 미흡함이 있다.

‘특정 프로그램에 학생이 얼마나 참여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어떤 프로그램으로 해결해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가’가 재정지원사업의 교육 성과 모델로서 확산 가치가 있을 듯하다. 전문대학은 지역과 국가 산업 전반에 걸쳐 1차 산업인 자연 기반 산업부터 가공·서비스·지식 기반·여가·융복합 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 변화에 따른 다양한 직무 특성과 요구하는 역량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직업교육 정책은 과거 ‘기술=직업, 기술교육=전문대학’이라는 사물을 다루는 기술교육 정체성을 벗어나 사람·서비스·창의성 기반 직업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학력·학벌 중심에서 능력 중심 사회로, 기업과 기관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직업인을 채용하는 시대다.

평생직업교육 체제는 단순히 직업계고·성인학습자라는 수요층을 넓히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산업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직업교육의 질적 강화가 더 우선돼야 한다. 고등직업교육은 지역과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며, 청년의 미래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다. 전문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국가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