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국 교육부 해체가 한국 RISE 사업에 주는 경고

백두산 기자

2025-11-24     백두산 기자
백두산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시 공언한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ED) 폐지 및 기능 노동부 이관’ 공약이 구체적인 행정 개편안으로 윤곽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히 조직 효율화를 넘어, 교육이라는 공공 영역의 근본적인 목적과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구조적 전환 시도다.

미국 교육의 축이 ‘전인적 시민 교양’이라는 전통적 지향점에서 ‘노동 시장 도구화’라는 단기적 경제 목표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특히 초·중등 학업 지원과 대학 진학 프로그램 같은 핵심 기능마저 노동부로 넘기려는 움직임은 교육을 ‘직업 훈련 및 노동 시장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공식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러한 교육 기능의 노동부 이관은 다음의 두 가지 근원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의 맹목적 추종이다. 연방 교육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영역, 즉 주 정부나 지역 사회의 재정적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안전망’ 역할이다. Title I(저소득층 지원)이나 장애 학생 교육(IDEA) 등의 연방 지원금 관리 주체를 노동부로 이관하는 것은, 교육의 형평성 기능을 노동 시장의 수요 충족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종속시키는 행위이다. 이는 연방이 공공적 책임을 지방으로 전가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정치적 포퓰리즘과의 결탁 가능성이다. 교육을 노동력 개발로 환원하고 연방의 규제를 해체하는 보수 진영의 주장은, ‘작은 정부’를 외치며 지역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포퓰리즘적 독재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특정 정치적 이념(예: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CRT(비판적 인종이론) 배제 등)을 교육 정책에 강력하게 투영하여 학문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고, 교육을 이념적 편향에 종속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교육의 가치가 국가 안보나 이념 투쟁의 하위 수단으로 격하되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 구조 개편 논의는 현재 교육부가 추진 중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RISE)’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RISE는 지방 정부에 대학 지원 권한과 재정을 이양하여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미국의 사례는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어떤 위험이 초래될지 보여준다.

미국의 교육부 해체 논의가 지역별 교육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방 정부가 교육 안전망 책임을 회피하고 재정 지원까지 노동 시장의 관점으로 통합해버리면, 지역별 재정 자립도 차이가 곧바로 교육 품질의 격차로 직결된다.

RISE 체계의 지방 이양이 성공하려면, 중앙 정부는 단순히 권한과 책임만 지방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교육 형평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재정적 안전망’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가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역 대학에 대해 지속 가능하고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할 경우, RISE는 혁신이 아닌 ‘지방 대학의 경쟁력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

RISE 사업의 핵심은 ‘지역 산업 연계’와 ‘일자리 창출’에 있다. 경제적 관점은 중요하지만, 미국 사례에서 보듯 교육의 목적이 단기적 노동력 개발로 치우칠 경우, 순수 학문, 인문학, 비판적 사고 등 전인적 성장에 필수적인 영역이 약화된다.

RISE의 지방 정부는 지역 경제 개발 주체이기도 하다. 대학이 지방 정부의 ‘지역 경제 개발 용역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고등교육의 학문적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 특화 인재 양성이라는 명목 하에 대학의 교육 철학이 지역 산업의 하청으로 전락하는 위험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교육부 해체는 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다른 부처로 기능을 분산시키면서 정책의 일관성과 전문성을 해치고 있다. 한국의 RISE 역시 지방 시·도지사의 강한 주도권을 부여하는 구조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 대학에 대한 인사권 및 예산 배분 권한을 휘두를 경우, 정치적 논리가 교육 논리를 압도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지방 주도의 혁신은 곧 ‘지방 교육 전문성’의 확보를 의미한다. 지방의 대학, 교육 전문가, 산업계가 균형 잡힌 거버넌스를 구축하도록 중앙 정부가 시스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국의 교육부 해체는 결국 연방 정부가 교육에 대한 공공적 책임을 축소하고, 교육을 경제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구조적 전환을 시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RISE 체계가 진정한 지방 주도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교육의 궁극적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교육의 가치가 노동 시장의 하위 수단으로 절하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기회와 형평성을 보장하는 국가적 공공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에 대한 숙고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