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성추행 의대생에 이중잣대(?)
“2006년 시위 학생들은 2주만에 출교…” 비판 제기
2011-07-26 민현희
26일 고려대에 따르면 이 대학은 지난 2006년 4월 병설보건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며 보직교수·직원 13명을 16시간 동안 감금한 학생 19명 가운데 7명에게 출교 조치를 내렸다. ‘출교’란 해당 대학에 다시는 발을 붙일 수 없게 하는 최고 수위의 징계로 고려대가 학생에게 출교 처벌을 내린 것은 개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고려대는 “일부 학생의 시대착오·반교육적 불법 과격행동에 대해 교육적 관점에서 포용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근본적인 대응책을 논의했다”며 “일부 학생이 소명의 자리에서 조차 자신들의 정당성만을 주장해 비장한 각오로 출교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신속하고 엄격한 처벌은 성추행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의대생들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2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나 가해 남학생들에 대해 내려진 조치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려대 내외부에선 대학 측의 늑장 대응, 이중 잣대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다.
고려대 4학년 장모씨(26)는 “지난 2006년 교수를 감금한 학생들에게 신속하고 단호하게 출교 처벌을 내렸던 고려대가 한 여학생의 아픔 앞에서는 어떻게 이토록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며 “의대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학교 측의 느긋한 대응에 화가난다”고 비판했다.
또 졸업생 이모씨(28)는 “의대 성추행 사건이 터진 뒤 직장 상사·동료들이 ‘너희 학교 아니냐’고 묻는데 고려대 출신인 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며 “가해 남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늦어지고 있어 답답하다. 하루빨리 출교 처분을 내려달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가해 남학생들이 유력 인사의 자녀인 탓에 대학이 쉽게 처벌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려대 동문 127명은 최근 학내에 대자보를 부착하고 “고려대가 성범죄자들에게 이리 누릇누릇 눅눅한 이유는 무엇이냐. 가해자가 국내 유수의 로펌 변호사와 유력 인사의 자제라는,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소문이 맞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학교는 지난 2006년 학내 시위 과정에서 과격한 행동을 보였던 학생들에게 단 2주일 만에 출교 처분을 내리는 기민함을 보여줬다”며 “고려대 당국은 성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구속된 의대생들을 속히 출교시키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고려대는 이 같은 학내외 비판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인데 학교가 독단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내리기는 어렵다”며 “혐의가 명백히 밝혀지면 이에 맞는 처벌을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출교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려대는 학내 양성평등위원회를 통해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한 내부조사를 최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고려대는 양성평등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징계심사위원회에서 가해 남학생들의 징계 수위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앞서 고려대 의대 남학생 3명은 지난 5월 21일 경기도 가평의 한 민박집에서 술에 취해 잠든 동기 여학생 A씨의 옷을 벗긴 뒤 신체를 만지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10일 특수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가해 남학생들을 구속기소했으며, 최근 열린 공판에서 2명만 혐의를 인정했다. 이들에 대한 다음 공판은 다음달 16일 오후 2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