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IB 도입 드라이브
창의력 평가하지 못하는 현 수능 체제 대안으로 급부상
대입 제도 불일치 개선과 교사 연수 협력체계 구축 절실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학교 가서 선생님께 질문 잘 하고 토론에 적극 참여해라”

창의력을 발굴하는 ‘꺼내는 교육’의 집약체인 IB(국제바칼로레아)가 서술형 수능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1994년 시행돼 올해로 28살을 맞은 수능이 생명과학 문제 오류 논란으로 수명이 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 논·서술형 수능 검토를 발표하면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토론형 논술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사 말을 잘 듣는 데서 그쳤던 기존 주입식 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IB의 장점에 주목한다. 국내에 안착하려면 시도교육청간 교사 연수 시스템 공유 등 협력체계 구축과, 대입제도와의 불일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 대구, 제주교육청 IB 도입 드라이브....IB가 뭔데? = 이미 국내 시도 교육청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IB를 도입하고 있는 교육청들이 있다. 대구광역시교육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소재 일부 초‧중‧고등학교가 IB 관심학교와 IB 후보학교로 지정돼 IB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와 제주교육청은 지난 2019년 IB 본부인 IBO(IB Organization)와 IB 한국어화에 대한 MOC를 체결, 오는 2023년 11월 한국어로 전 과목 논술 대입시험인 IB 외부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부산광역시 교육계에서는 지난 21대 총선 당시 IB 도입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하태경 해운대구 갑 후보와 김미애 해운대구 을 후보, 정동만 기장군 후보가 공동으로 부산 IB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3인은 모두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진보 성향의 김석준 부산교육감도 IB 도입에 대해 “IB의 창의성, 평가 방식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이미 검증됐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대학가에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 2019년 제주교육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 공교육 문제의 대안으로 IB를 생각해 왔다”면서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환경 변화에 맞춰 미래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IB의 특장점을 활용한 교육혁신이 시급하다고 밝힌 바 있다.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교육재단인 IB본부(IBO)에서 개발‧운영하는 국제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의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 자기주도적 학습을 추구하는 교육체제이며 세계 161개국 5464개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IB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IBO가 학교를 평가하고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서 IB 월드스쿨(World School)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해당 학교의 교원은 IBO가 주관하는 연수를 이수해야 IB과정을 교육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초등학교 과정은 3세부터 12세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6개 교과로 구성돼 있고 중학교 과정은 교육 대상이 11세부터 16세까지 학생으로 8개 교과로 구성된다. 고등학교 과정(IB DP)은 16세부터 19세까지 학생들 대상으로 6개 교과와 3개의 필수과제로 이뤄져 있다.

대구광역시교육청과 대구가톨릭대학교는 지난해 8월 ‘국제 바칼로레아(IB) 운영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대구광역시교육청)
대구광역시교육청과 대구가톨릭대학교는 지난해 8월 ‘국제 바칼로레아(IB) 운영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대구광역시교육청)

■ IB, 학생 창의력 평가하지 못하는 현 평가체제 대안으로 급부상 = IB가 국내 교육계에서 급부상한 배경에는 현 수능 체제의 문제점이 자리한다. 한국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정답 맞히기를 중시하는 수능 체제가 평가 도구로써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B 도입을 주장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IB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평가에서도 제대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2022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과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수능에서는 이러한 인재를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답만을 요구하는 수능 특성상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선도적으로 IB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대구시교육청에서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 IB과정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정답만을 요구하는 기존 평가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력을 요하는 수업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봤다”며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해도 평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성과들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한 IB 평가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서울대에서 수행된 ‘대입 논술형 수능 체제 설계를 위한 평가 시스템 및 교원양성 프로그램 기초 연구: IB 사례를 중심으로(연구책임자 송진웅 서울대 교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IB 채점 시스템은 채점관마다 각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구분돼 상호 질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 시험 직후 과목별 선임 채점관들이 온라인으로 모여서 일부 채점을 해보면서 평가를 위한 표준을 확립하고 해당 시험의 등급점수에 적용할 원점수 범위를 결정한다. 전 세계에서 IB 시험을 치른 답안지는 모두 영국에 있는 채점센터로 수합돼 일반 채점관에게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배포된다. 한 채점관에게 보통 100~200개의 답안지가 할당되며, 10개씩 한 세트로 배정되는데 그 중에는 이미 채점된 답안지(seed scripts)가 무작위로 섞여 있어서 채점의 신뢰성을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한다. 최종 채점 결과가 공개된 후에도 학생은 재채점을 신청할 수 있다. 학생에게 원점수(marks)와 등급(grades)이 모두 공개된다.

현행 수행평가 체제에서 채점 기준을 확립하는 모델이 된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IB가 각광받는 이유로 거론된다. 이혜정 소장은 “논‧서술 수행평가의 검증 기준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수 있는데 IB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서 교육청들이 관심을 가지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교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도 “기존 논‧서술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IB가 효과적”이라며 “IB의 채점 기준을 참고해서 수행평가도 성취도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안착하려면 대입 제도와의 불일치 해소와 시도 교육청간 협력체계 구축 절실 = 전문가들은 IB가 국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장점을 발휘하려면 현행 대입제도와의 불일치 해소와 시도 교육청간 교사 연수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현행 대입제도와의 불일치 문제가 제시된다. 통상적으로 IB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통해 건국대와 경희대, 고려대 등 서울 소재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2023학년도 정시 수능위주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2021년도 대비 수능 전형이 확대되면서 학종은 11.8%p 감소했으며 논술과 실기도 각각 2.5%p, 0.6%p 줄었다.

노희창 서울 배재고 교사는 획일화된 현행 대입 제도를 극복하는 방안이 학종과 논술전형인데 교육부가 학종과 논술을 줄이면서 2028년도 서술형 수능을 도입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도입하려면 학생들의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입시 제도인 학종과 논술전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교사 연수를 위한 시도 교육청간 협력체계 구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IB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교사 연수가 IB 운영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0년 발행한 ‘국제바칼로레아 운영 현황 및 국내 도입을 위한 과제:고등학교 교육과정(IB DP)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등학교에 IB DP를 도입하기 위한 과제 중 하나로 교원 연수 등 기반 확보 필요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교사의 역량이 교육과정 운영에 따른 교육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IB DP 도입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교원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정 소장은 시도 교육청간 공동 교사 연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 소장은 “대구와 제주에서 IB 교사 연수를 실시하고 있는데 다른 시도 교육청 교사가 연수를 받고 싶어도 연수비 지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힘들다”며 “시도 권역별로 공동 연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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