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면 해외에도 길이 있다

애매모호한 국내법 정비하고 섣부른 진출 경계해야
"분교 설립기준 완화됐지만 교비 해외반출 막혀 어려움"

“이제 외국인 유학생을 국내로 초청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현지에 나가 적극적으로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교육하는 ‘교육수출’이 필요한 때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가장 확실한 대비책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제시되고 있다. 대학들은 우수 외국인 입학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전(戰)을 치를 정도다. 해외 각지를 순회하며 입학설명회를 여는 것은 물론 해외 현지에 사무소를 개소하거나 분교를 설치해 적극적으로 현지학생을 흡수하는 전략도 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국내로 유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한국 교육기관에서 교육, 양성해내는 이른바‘교육수출’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지 전략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섣부른 해외진출로 현지에서 안착하지 못한 채 오히려 재정낭비만 초래하는 대학도 많아 주변의 비판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진출에 관한 세부적인 국내 법령 보완과 아울러 대학들의 철저한 준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부터 교육까지 현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 외국인 유학생 현지에서 모집부터 교육까지 = 대학들은 해외에서 직접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에 분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승인을 받은 공식 분교는 없으며 분교 형태로 해당 국가의 대학과 협력을 맺고 운영 중이다. 부산 동서대는 미국 호프국제대와 중국 중남재경정법대에 분교를 개설했다. 분교지만 미국에서는 호프국제대 시설을 동서대가 사용하는 ‘렌트’개념이고, 중국에서는 중남재경정법대와 합작대학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분교 설치에 관한 국내법과 해당 국가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동서대 김정희 국제교류센터장은 “중국법상 국내 대학이 단독 진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 대학과 협력해 합작대학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은 합작대학은 동서대가 아시아 최초”라고 설명했다.

동서대는 일찌감치 외국인 유학생 선점을 위해 분교 설립을 계획했다. 중국 분교는 4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덕에 지난해 게임에니메이션∙영상디지털 등 2개 학과를 신설, 총 300명을 모집하는 것으로 중국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두 학과에선 직접 중국에서 학생을 모집하고 교육하며 졸업시킨다. 학업기간 4년에는 ‘1년간 국내 교육과정’도 포함돼 있다. 강의는 동서대 교수들이 파견돼 가르치며, 한국어강사도 함께 보내지고 있다. 학교 운영은 중국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으로 운영된다. 국내법상 교비를 해외로 반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1기 학생들이 들어왔으며 앞으로 모집학과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호프국제대에 세운 분교는 미국 내 한인 학생들이 모집 대상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학생들의 어학연수와 동시에 한인 학생을 유입하는 목적으로 운영, 학령인구 감소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김정희 센터장은 “국내에서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학원을 통하거나 서류만으로는 학생들이 도피처로 유학을 택한 건지, 정말 학업에 뜻이 있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합작대학을 통해 유학생을 모집하니까 오히려 국내 학생보다 성적이 좋은 1등급 학생이 온다. 해외 분교가 우수 유학생 유치에 효과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동서대가 중국재경정법대학과 협력을 통해 운영 중인 합작대학.

■ 해외분교 어렵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해외진출은 지방대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의 주요 대학도 이미 수년 전부터 유학생 선점을 위해 현지전략을 계획했다. 이 중 가장 활발하게 해외 분교를 추진하고 있는 대학은 한양대다. 한양대는 2014년 가을학기 개교를 목표로‘한양대학교 말레이시아 분교(Hanyang Malaysia Institute of Technology∙이하 HMIT)’설립을 추진, 곧 국내 승인 심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양대가 승인을 받으면 국내에서 공식 해외분교를 설립하는 첫 번째 대학이 된다.

한양대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남동쪽으로 60㎞ 떨어진 세렘반(Seremban)시에 설립되는 HMIT는 전자∙기계공학 등 공학계열 8개 학과와 경영학∙국제학이 포함된 총 10개 학부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2014년 2월 첫 신입생을 모집하며, 모집정원은 학년당 600명으로 총 정원은 2400명이다. 교원은 총 100명 규모로 현지에서 80명을 충원하고 한양대에서 20명을 파견한다. 한양대는 말레이시아 분교 설립으로 현지 학생뿐 만 아니라 이슬람권 국가 유학생까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기정 한양대 국제협력처장은“국내 종합대학의 첫 해외 정식 분교가 말레이시아에 최초로 설립되는 것”이라며“국내 대학 최초로 결성된 외국인 졸업생 동문회도 한양대의 국제화 노력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말레이시아 내 현지 대학 설립을 시작으로 중국 훈춘시에 두 번째 분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훈춘시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에 있는 도시로 통일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분교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건국대는 미국 LA 소재 퍼시픽스테이츠대학(PSU)을 김진규 총장이 겸임총장으로 운영하고 있
으며, 이를 건국대 분교로 육성시킨다는 계획이다. KAIST 역시 미국 뉴욕시에 외국인 중심의 연구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한양대가 2014년 개교 목표로 추진 중인 말레이시아 분교.

■ 무분별한 국외분교 추진 우려도 = 현지 분교 전략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섣불리 해외진출을 했다 되레 재정낭비만 초래하는 것이다.

충남대의 경우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 ‘CNU 센터’를 설치했으나 현재는 문을 닫고 운영을 멈춘 상태다. 당시 충남대는 이 센터를 통해 미국대학의 교육∙연구∙행정 정보 수집은 물론 LA에 거주하는 교포와 미국 학생들에게 충남대를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충남대의 LA캠퍼스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충남대 관계자는“한동안은 교환교수가 미국에 파견돼 현지 학생을 관리하는 등 운영이 잘됐는데, 센터 운영을 동문이 맡고 나서부터는 활성화가 잘 안됐다”며“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섣부른 해외진출이 재정낭비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한 충남대 교수는“미국에 캠퍼스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총장∙교수들이 미국에 오가는데 들어간 비용만도 수천만원”이라며“결국 몇년 만에 문을 닫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 애매한 국내법 정비하고, 섣부른 진출 고려해야 = 활발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분교 설립기준을 완화해야 된다는 목소리와 무분별한 진출에 따른 재정낭비를 막기 위해 감시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먼저 국외 분교 설치를 위한 국내법령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교과부는 대학들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해 대학이 국외 분교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대학설립운영규정’을 일부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대학이 해외에 분교를 낼 경우에도‘교지(부지), 교사(건물),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국내 대학 설립 기준을 똑같이 적용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외국 법령만 따르면 된다. 단 국내 대학의 교비는 국외 분교로 보낼 수 없다는 조건은 유효하다. 또 부실한 대학이 무분별하게 해외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설립심의위원회에서 재정상황과 교육과정 운영계획 등을 심사해 교과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했다.

국내법과 외국법 모두를 따라야 했던 기존에 비하면 분교 설립이 수월해진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교과부 장관의 인가를 받기 위한 심사기준이 애매모호해 애를 먹고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분교 설립을 추진하다 중단한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아무리 분교 설립 기준이 완화됐다 하더라도 교비의 해외반출이 막혀 있어 실질적인 분교 설립에 애를 먹는 대학이 많다”며“특히 등록금 등 교비에 대한 감시가 많아져 해외투자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해외진출 활성화 측면이라면 국내 대학이 해외 분교로 초기 정착할 때까지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국내의 고등교육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의미에서 정부가 지원에 나설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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