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 외국인 교수들, 한국대학사회를 말하다

지난 7월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교수가 카이스트 총장에 선임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 대학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학내 외국인 교수들에게도 기대하는 부분이 매우 커졌다. 실제 이들 외국인 교수는 한국인과는 다른 피부색깔을 가졌고 다른 환경 속에서 교육 받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내 교수들이 가르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즉, 한국에서 교육받아온 학생들은 탈전형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최근 사립학교법, 이공계 위기, 청년실업, 교육시장 개방 등 대학 사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대두된 가운데 낯선 땅에서 한국의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한국의 대학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에 본지는 지령 500호 특집을 맞아 클렘코스키 교수(성균관대 경영대학원장·미국), 마쿠스 슈타인 교수(중앙대 독어독문·독일), 무로이 야스나리 교수(울산대 일본어 일본학·일본), 요대용 교수(고려대 중국고전문학·중국) 등 선진고등교육을 대표하는 4명의 외국인 교수의 눈을 통해 한국의 대학사회를 짚어봤다. 참고로 이 좌담회는 인터뷰 내용을 좌담형식으로 묶어서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약간의 재구성을 한 것임을 밝힌다.(‘교수’ 호칭은 생략) -편집자-
클렘코스키= 1992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이후에 몇 차례 더 한국을 찾았다. 처음 방문했을 때와 지금의 한국을 비교해 보면 너무 많은 게 변했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차들도 늘어나고 사람들의 삶도 윤택해 진 것 같다. 요대용= 나는 한국에 온 지 반년을 조금 넘겼다. 한국인들이 대부분 친절해서 그런지 이국 생활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하다. 야스나리=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여기 남학생들과 같은 나이였다. 내가 76년생이니까 학생들과 친구라고 해야 되나? 여기 온 지도 2년6개월이 다 돼 가서 이제는 한국말도 제법 한다. 생활하는데 큰 불편한 점은 없다. 슈타인= (웃음) 체류연수로 따지자면 내가 제일 고참인 것 같다. 한국생활이 이제 7년으로 접어들어서 일상회화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클렘코스키= 미국에서 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고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점인데 한국 사회는 미국 사회에 비해 연장자와 상급자에게 대단히 예의바르다. 야스나리= 한국인에게 그런 측면도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대학에서 할애하다보니 한국 학생들이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 같다. 슈타인= 나도 한국인들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의 한국인은 정확성이 좀 떨어지는 것 아니냐. 독일에서는 계획성 있게 행동하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점에 둔감한 편이다. 우리가 이왕 한국인에 대한 주제를 꺼냈으니 이와 관련해 얘기를 좀 더 진전시켜보자.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한국의 대학 교수로 있으니 한국의 대학사회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 보면 어떨까. 야스나리= 한국의 대학사회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생과 교수 사이가 가깝다는 점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몇 년 전 졸업한 학생들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연구실에 자주 찾아오는 것을 보고 감명 받았다. 요대용= 중국의 교수와 학생들도 비교적 편한 관계다. 하지만 한국 학생은 교수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대단하다. 슈타인= 7년 넘게 한국에 있었던 최고참으로서 분석해 보자면 한국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한국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 외에도 밖에서 다른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은 동아리, 사교 모임 등을 통해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교수들은 강의 시간에 자신만 알고 있는 부분만을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클렘코스키= 어느 사회나 공통적인 현상이겠지만 나는 유대관계보다는 한국 학생들이 성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제일 인상 깊었다. 요대용=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성공한 인생을 보장받기 위해서 일단 학생들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연히 대학입학시험 경쟁률이 매우 높아져서 중고등학생 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한다. 한국과 다른 점은 중국 대학생들은 입학 후에도 학업에 계속 열중한다는 것이다. 야스나리= 지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가 보기엔 지방대 학생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슈타인= 학생들 개개인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학교 자체적으로도 변화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현재 독일에서도 대학별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 등 일련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요대용= 중국의 대학들도 이런 분위기. 중국은 예전에 모두 국립대학이었는데 최근 들어 사립대학이 생겨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각 대학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또 대학입학정원도 늘어나는 추세이고 그에 맞추어 대학교수 임용도 늘리고 있다. 클렘코스키= 미국 역시 대학별로 우수한 교수와 연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사실 다른 대학보다 더 훌륭한 교수를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야스나리= 현재 정확한 일본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일본이 한국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문제가 있다. 향후 전개될 ‘교육시장 개방화’ 문제가 그것이다. 교육 개방화라는 상황이 대세라면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이 자주성을 가지고 개성적인 대학경영을 해 나가야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학에서의 교육이 지나치게 실용적으로 돼 기초연구가 경시되고 결과적으로는 학문을 행하는 곳으로서의 대학이라고 하는 존재의의가 엷어지는 것은 아닌 지 걱정스럽다. 클렘코스키= 교육시장 개방을 반드시 우려의 눈길로 볼 것은 아닌 듯하다. 다양성 측면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외국에 개방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의 교육 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믿는다. 슈타인= 글쎄…, 전면적 개방은 한국의 대학들을 자칫 위기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외국의 대학들과 상호간의 교류를 통한 학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 요대용= 교육시장 개방이 한국의 교육에 분명 영향을 미치겠지만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대학과 교육의 질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슈타인=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또 한국의 대학들은 현대 사회 안에서 중요한 능력과 지식들을 매개하는 부분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많은 전공학과들은 오직 오래된 커리큘럼만을 고집하고 행정적으로도 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클렘코스키= 한국 대학의 대외적인 지표 수준도 문제다. 현재 한국은 연구 대학 분야에 있어서 세계 100~150위 순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없다. 앞으로 세계적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대용= 나는 한국대학 사회의 내부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중국대학의 경우는 시간강사라는 신분이 없다. 한국대학사회의 경우 30~40대의 시간강사들이 생활과 연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에 비해 대우나 보수가 너무 열악하다.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시간강사들이 안정된 상태에서 연구와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처우개선을 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야스나리= 나는 아무래도 지방에서 강의를 하다보니 지방과 서울을 자주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 수험생들의 서울 지향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 수험생에게도 한국과 같은 경향이 나타나지만 한국만큼 강하지는 않다. 예를 들면 일본은 대학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고 수험생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에 따라 지원할 대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수험생들이 서울 쪽으로만 몰리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수도와 지방간 균형 있는 발전을 해치리라 생각한다. 슈타인= 독일에는 각 대학별 신문은 있지만 한국대학신문과 같이 전체 대학을 위한 신문은 없다.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학 사이를 이어주는 매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국대학신문이 앞장서주었으면 한다. 요대용= 한국대학신문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 신문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의 상호의견이 더욱 활발히 반영되었으면 한다. 야스나리= 마지막으로 나도 한마디 하겠다. 온라인상에 일본어판도 만들어서 한국대학제도나 대학문화 연구동향 등 다양한 내용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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