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으며 새 희망 찾은 김경식 시각장애 시인 겸 사진작가

▲ 시각 장애 시인 겸 사진작가 김경식 씨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울긋불긋 예쁜 단풍잎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단절된 옛 추억이자 상처일 뿐이다'

시인 김경식(53) 씨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작가가 된 그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으며 깨달았습니다. 희망이란 것은 밝은 데서 빛을 보는 게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김경식 씨는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다. 빛의 움직임조차 볼 수 없는 김씨는 13살 때까지 봤던 기억을 더듬어 오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시인인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상명대에서 200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진교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2008년부터 3년간 사진교실에서 실력을 쌓으며 2009년에는 사진을 담은 시집 ‘내 안의 인화지’를 펴냈다. 2001년 문예지로 등단한 이후 네번 째 시집이었다.

“2008년 상명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진교실을 운영한다는 공고를 봤습니다. ‘안 보이는 내가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참여했죠. 우연히 참여했던 이 프로그램 덕에 사진을 찍으며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린 거죠.”

그가 시를 쓰기 시작했던 데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선천성 유전자 변이로 녹내장, 심장 판막증과 여러 난치병이 그를 괴롭혔다. 교통사고도 3번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아들도 지적장애, 청각·언어·발육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 그에게 시는 고통의 탈출구였다. 이젠 또다른 탈출구를 찾았다. 사진이다.

▲ 작품명: '미명 무렵의 산책로 가로사진'
“시와 사진이 다른 게 아닙니다. 시는 문필로 그려가는 사진이고 사진은 기계로 찍어내는 시죠. 몸과 마음의 아픔을 겪으며 좌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아픔마저 감사합니다. 격렬했던 지난 아픔들은 결국 내 삶에 큰 가르침이 됐으니까요.”

김씨는 매일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지만 나는 빛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사용해 사진을 찍어요. 만지고 냄새를 맡고 상상하며 그 순간을 사진에 담고 있죠. 피사체가 잘려서 찍힌 것도 많지만 개의치 않아요. 순간을 잡아둘 수 있다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날 찍은 사진은 그날 바로 컴퓨터로 옮겨 저장한다. 사진 파일명은 자신이 찾을 수 있게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가령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을 가로사진’, 이런 식이다. 모니터 화면을 낭독해주는 기계인 ‘스크린 리더’를 통해 모니터 내용을 소리로 듣고 사진 저장·찾기, 이메일 전송, 페이스북 사용 등을 능숙히 해낸다.

2001년에는 나사렛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만학도의 길을 걸었다. 사회복지학과 입학은 오롯이 아픈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시각 장애인은 자신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할 수 있지만 지적 장애까지 겪고 있는 아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부모인 자신뿐이라는 생각에서다.

▲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을 가로사진
“중복 장애인을 보살필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간절합니다. 우리나라는 중복 장애인을 시설에 모아놓고 일률적으로 보호해주는 반면 캐나다·일본 등은 중복 장애인을 위한 수준별 교육 커리큘럼, 교구 등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의 부재에 캐나다로 이민도 고려했어요. 결국 한국에 남게 됐지만요.”

나사렛대를 졸업한 후 2010년에는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고 지난해 2월 졸업했다. 현재는 인천에 위치한 안마사협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침과 안마 실습 강의를 맡고 있다.

시종일관 어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보인 시인, 남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기에 더 행복한 웃음을 지을 줄 알게 된 사진작가, 그가 젊은 청년들에게 주는 한마디는 그래서 더욱 와닿는다.   

"침체된 사회에 짓눌려 있는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포기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더 안타깝고요. 어둠속에서 헤매더라도 그 어둠을 스스로 헤쳐 나왔을 때 비로소 빛의 고마움과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젊은이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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