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과목 너무 쉬워 '탐구 복불복'· 점수반영방식 · 학생부 등 부차적 요소가 당락결정

▲ 수능 만점자가 연세대 의예과 정시모집 1차합격자 발표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선택과목에 따라 한 문제를 틀린 학생과도 '변환표준점수'가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한명섭 한국대학신문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수능 모든 과목에서 단 한문제도 틀리지 않은 수능만점자들이 연세대 의예과 정시에 떨어졌다. 추가합격을 통한 최종합격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지만 수능만점자가 1차에서 고배를 마신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최상위권 대학들이 원점수 대신 변환표준점수로 수능성적을 반영하는 것이 만점자가 탈락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10% 반영되는 학생부의 영향도 일부 작용했다. 근본적으로는 지나친 물수능이 '실력' 보다는 '지엽적인 요소'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만점자 연세대 탈락 "선택과목 복불복에 내신 영향 더해진 결과" = 13일 한 일간지에 따르면 연세대 의예과에 지원한 수능만점자 15명 가운데 3명이 정시모집 1차 합격자 발표에서 떨어졌다.

한 입시전문가는 "연세대 최상위권 학과일수록 추가합격자가 많이 발생한다"면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대부분 '가'군의 서울대와 '나'군의 연세대를 중복지원하기 때문인데, 통상 모집정원의 절반 이상이 서울대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미세한 차이로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 3명의 수능만점자들은 최종합격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만점자가 1차에서 불합격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을 두고는 예상치못한 결과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학들이 원점수로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상위권 대학들의 경우 원점수 대신 표준점수나 변환표준점수를 기준으로 합격자를 가린다. 이는 교육과정평가원이 학생들을 '일렬로 줄세우는' 수능 원점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 대신 난이도의 영향을 받는 표준점수와 상대적인 위치가 반영된 백분율 점수만 제공된다. 이 가운데 대학들이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백분위 점수에 영역별 가중치를 반영한 것이 '변환표준점수'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기본적으로 만점자의 탈락은 연세대 정시 의예과 최초 합격선이 사실상 수능만점자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이때 원점수 만점자라고 해도 과학탐구 선택 조합에 따라 한 문제를 틀린 학생보다 불리해 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오 이사는 "예를 들어 비교적 쉽게 나온 지구과학I, 물리II, 화학II, 지구과학II 선택한 학생은 만점을 받았어도 백분위가 99가 되어 다른 과목 만점자(물리I, 화학I, 생명과학I, 생명과학II)와 비교해 1점 부족하다"면서 "이를 연세대의 변환표준점수로 환산하면 1.03점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어려웠던 생명과학II 응시자의 경우에는 한 문제를 틀려 원점수 47점을 받았다 해도 백분위는 99를 받아, 결과적으로 지구과학I, 물리II, 화학II, 지구과학II 만점자와 반영 점수는 같다.

결국 "연세대 의예과 최초 합격선은 국어, 수학, 영어 3과목 만점에 과탐 백분위 점수 100~99를 받은 학생 중 내신 감점이 거의 없는 학생까지라는 이야기"라며 "수능 만점자라고 해도, 쉽게 나온 과목을 선택해 과탐에서 백분위 99점을 받고 여기다 일부 내신 감점이 있는 3명의 학생들이 최초 합격자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 '웩더독' 정시, 수능 자격고사화의 딜레마 = 문제는 정부가 수능의 난이도를 대폭 낮추는 '수능의 자격고사화'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같은 입시 모순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능이 최소한의 변별력마저 잃어 버렸기 때문에 만점을 받고도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만점자뿐 아니라 어떤 선택과목을 받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소장은 "대학이 변환표준점수로 보정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올해 자연계열의 경우 선택한 과목별로 유불리가 생기게 돼  있는 구조"라면서 "억울해 하는 학생들에게 '왜 그 과목을 선택했느냐'고 탓하는 것은 '왜 하필 난이도도 예상하지 못하고 그 과목을 선택했냐'는 말과 같다. 결국엔 입시가 '복불복 게임'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쉬운 수능 정책과 입시 간소화 정책은 양립할 수 없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 소장은 "입시 간소화에 따라 정시는 수능을 중심으로 뽑도록 돼 있는데, 수능이 자격고사화 되면 상위권 대학들은 수능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수능은 60여만명이 보는 시험인데 제 역할을 못하게 되면 대학들 입장에서는 다른 평가도구들이 필요하게 된다"며 "수능 사교육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결국에 더 복잡하고 어려운 수능 이외 평가도구들에 대한 (사교육)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7월 대학들은 '2016학년도 전형계획'에서 수능 중심으로 뽑아야 하는 정시의 비율을 소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정시 결과에 대한 분석이 반영되는 2017학년도에는 정시 비중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 소장은 "'쉬운 수능'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과거 일제고사 시절 평균점수가 50점에도 못 미치던 시험보다는 훨씬 낫다. 다만 최상위권 입시에서는 최소한의 변별력을 확보해줘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실력이 우선이고 실수가 뒤에 와야 하는데 너무 쉬우면 실수가 실력을 가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정시에서 주요과목의 실력보다는 선택과목 유불리, 대학별 점수반영 방식, 학생부 요소 등 부차적인 요소가 당락을 결정짓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Wag the Dog, 웩더독)'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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