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농구부 포워드 정희원

[KUSF 한지영 학생기자] “인생은 겸손에 대한 오랜 수업이다."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제임스 M. 배리(James Matthew Barrie)가 남긴 말이다. 인간이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닥친 원치 않는 시련이나 고통으로 인해 주어진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인생이란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스스로의 미약함을 절실히 느끼는 겸손 수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시련' 자체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할지라도 아픔을 통해 연단되는 그 사람의 성품과 끈기는 단련된 금과 같이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구보다도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한층 단단해지고 성숙한 정신으로 스스로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모습을 통해, 어둠과 같은 상태에 처한 누군가에게 소망과 평안의 빛이 곧 비칠 것임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 한 선수가 있다. 그는 촉망받고 유능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갑작스레 닥친 만성적 무릎 질환으로 인해 농구선수로서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어야만 했다.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몸 상태에서도 최선의 경기를 보이며 가능성을 인정받아 명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입학 직후부터 계속되는 부상과 재활로 코트보다는 병원과 벤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13년도 입학 이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어엿한 3학년 선배가 된 지금, 회복 중에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희원>
1994년 5월 17일 출생
192 cm / 87 kg
김해동광초등학교 - 임호중학교 - 용산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2006년 KBL총재배 어린이농구큰잔치 최우수선수상
2008년 제 3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금메달
2012년 제 22회 FIBA아시아 U18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소년, 농구를 만나다

정희원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하게 큰 키는 농구 코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당시 선수의 부모님은 운동선수의 길이 좁고 험난할 것을 우려하여 운동하는 것에 반대하였지만, 스스로 농구에 재미를 느꼈고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제가 당시 반에서 키가 좀 컸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165cm 정도 되었거든요. 그때 스카우트되어 한 달간 농구를 해보면서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농구부가 없었는데 반대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해 농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어린 시절 만난 농구는 정희원 선수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하게 되어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 없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였던 그 시절, 좋은 팀 구성원과 큰 어려움 없이 훈련하면서 편하고 재미있게 운동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 주장이 되어 처음으로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그 대회에서 MVP를 수상하였던 일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구와의 첫 만남, 그 즐거움은 컸고 우승의 짜릿함은 매우 강렬했다. 정희원 선수는 단숨에 자신의 진로를 '농구선수'로 결정하게 된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운동에만 집중했어요. 처음부터 아예 전문 선수를 목표로 하고 시작한 것이지만 부모님께서 공부는 해야 한다고 하셔서 중학교 입학 이후 저녁에는 학습 과외를 받으며 운동을 병행했거든요. 하지만 중학교에서 요구하는 훈련량이 많아지다 보니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 점차 운동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열정 가운데 찾아온 시련 

당찬 중학생 선수는 코트 위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목표를 설정하여 있는 힘껏 달려가는 삶의 여정에는 희열이 있었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찼고, 몸 상태는 최고조였다. 

“제가 농구를 하면서 제일 즐거웠던 시절은 중학교 2학년의 나이로 전국 소년체전에서 우승했을 때예요. 그때가 돌이켜보면 가장 즐겁고 좋았어요. 당시에는 제가 2학년이었는데도 팀의 주축선수였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물론 대학에 들어와서도 거의 늘 이기는 게임만 했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시합도 많지만 제가 별로 영향을 미치진 못했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고, 후회 없이 좋은 경기를 펼치려는 불타는 열정 가운데 정희원 선수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과도하게 무리하여 훈련한 결과, 무릎 슬개골 염증이라는 만성적 질환을 얻은 것이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아요. 중학교 2,3학년 떄 몸 상태가 워낙 좋아 무리를 해서 병이 생겼기 때문에 만일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기를 바꾸고 싶어요. 저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운동선수의 길을 선택할 거예요. 다만 그 시기를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면요."
  
정희원 선수의 무릎 질환은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병을 얻은 이후에는 중학교 시절처럼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무릎에 축적되는 스트레스가 커졌고, 이따금씩 재발하여 주기적인 부상과 재활의 원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화도 많이 나고 답답해요. 다 중학교 때 할 수 있었던 동작인데... 지금 통증으로 인해 못하게 되니 정말 답답하죠. 후회도 많이 되고요."

그에게 중학생 시절은 영광의 시절이자 후회의 시절이다. 당시 최상의 몸 상태로 큰 활약을 하여 농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동시에 선수 인생에 있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련의 계기를 제외한 중학교 시절의 영광을 간절히 그리워했다. 입학 당시 백넘버 24번이었으나 2014년에 재활을 끝내고 팀에 복귀하며 9번으로 바꾸어 달았던 이유도 9번을 달고 코트 위를 날아다니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의 몸 상태를 재현하여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꿈의 상경기, 눈물의 상경기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농구명문 용산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고향인 김해를 떠나 수도 서울로의 첫 상경은 감격이었으나 시련도 많았다. 

“처음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너무나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지더라고요. 운동만 했기 때문에 고향보다는 서울에 친구도 더 많고, 부모님도 시합이 있으면 올라오셨기 때문에 얼굴도 자주 뵐 수 있었고요."

열일곱,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사실 농구를 비롯한 많은 운동 유망주들은 체계화되고 전문화된 훈련 환경을 제공받는다는 명목으로 보통 청소년기에 부모의 곁을 떠난다. 수준 높은 훈련은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가족의 부재는 선수의 정서적인 결핍과 외로움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서울에 온 이후 제일 후회되는 일은 새벽에 운동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예요. 김해에 있을 때는 부모님께서 새벽마다 깨워주셔서 볼도 잡아주시고 옆에서 함께 운동해주셨거든요. 지금은 알람 소리가 울려도 제가 잘 못 일어나요. ‘부모님이 도와주시던 때처럼 내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구나….'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저 생각뿐이고 의지로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농구는 단체운동이다 보니 혼자 슛 연습을 하면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줄 때보다 많이 하지 못해요. 아침마다 부모님과 운동하던 시절, 부모님께서 도와주시던 장면이 많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립죠."

고독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2남 중 맏아들인 정희원 선수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특별히 남동생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지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남동생과 친하다고까지는 말 못해요. 1년 차이다 보니 많이 싸웠고 서로 안 좋은 감정이 많았어요. 어릴 때는 동생이 저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어요. 부모님이 저를 따라다니시고, 먹는 것도 제가 더 많이 먹고, 그때는 동생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서로에게 더 잘 해주게 되고, 지금은 사이가 괜찮은 것 같아요. 같이 있을 땐 몰랐는데 헤어지니 서로를 의지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네요. 또 이제는 동생이 군대에 갈 나이인데 자꾸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요. 저는 동생이 편하게 군 생활 했으면 좋겠는데... 해병대는 너무 힘들잖아요.(웃음)"

고등학교 입학 직후부터 부상과 씨름하고 외로움에 아파했던 그는 용산고등학교 선배이자 고려대 선배이기도 한 이승현 선수와의 만남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전했다. 고교 시절부터 함께 하여 현재 고려대 코치로 재직 중인 이효상 코치를 만나게 된 일도 선수에게는 서울에 오며 얻게 된 귀중한 선물이다. 

“(이)승현이 형이나 이효상 코치님께서는 제가 아플 때 훈련에 적응하는 일을 뒤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물론 다른 많은 선수들과 이민형 감독님, 강병수 코치님께서도 절 많이 도와주셨는데요. 승현이 형과 이효상 코치님은 고교 시절부터 저를 알고 계셨으니까 그런 면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길고 긴 어둠의 끝

용산고교 3학년 11월, 고려대학 농구부의 훈련에 합류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그는 재활 중이었다. 2013년에는 주사요법으로 부상이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아 양쪽 무릎에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을 받는 것이 곧 병의 완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통증은 남았고, 그토록 고대하던 대학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3학년이 된 지금이 저의 농구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학교가 고려대학교이니 신입생들도 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겨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저학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이렇게 학년이 올라가니 부담이 생기네요."

운동을 하며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운동 외에는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기 때문이라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 농구라는 진로에 살며시 먹구름이 드리워지니 정희원 선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제가 운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지금은 그냥 두려워요. 해오던 일이 아예 바뀌는 것이니까요.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고 두려움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은 농구가 전부이다 보니 ‘다른 것을 하면 잘 할까, 어떤 것을 하면 잘 할까.' 생각을 해 보아도 현재로서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고교 시절부터 부상에 시달렸던 정희원 선수는 대학이라는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에게 펼쳐질 다양한 만남과 경험을 기대했다. 체육 외에 다양한 전공을 가진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는 상상도 했다. 그러나 체육특기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대학의 면모들은 한정적이었다. 2년간의 대학 생활이 그에게 가져다주었던 점과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대학에 와서 새롭게 사귀게 된 친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워요. 훈련 스케줄로 인해 서로 알 기회조차도 없으니 체교과 친구들 뿐 아니라 다른 과 사람들과는 더더욱 소통의 기회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학교생활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고, 좋아요. 감독, 코치 선생님들께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때는 무조건 들어가라 하시며 그 시간을 저에게 주시니 최대한 수업을 열심히 듣자 생각하고 있고, 수업 듣는 것이 재미있어요. 교직 수업은 따라가기 어렵지만 전공은 운동부만 따로 들으니 저희 시점에 맞추어 설명과 질문을 잘 해주셔서 전공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정희원 선수에게는 목표가 있다. 지금까지 해온 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것, 그리고 사범대학 학생으로서 무사히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의 학점이 '괜찮다'고 했다. 1학년 2학기에는 수술을 하게 되어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학점이 낮지만 그 이후에는 열심히 출석하고 공부에 힘썼다고 한다. 특히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심리학> 등의 과목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몸이 아프다보니 수업 내용을 현실의 자기 삶 속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더니 단숨에 <여가 레크레이션> 수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았던 "믿음의 승부" 라는 영화를 꼽았다. '이 선수, 정말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 속에는 럭비부 주장 브룩이 키커인 제레미를 업고 눈을 가린 채 운동장을 기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눈을 감고 있으니 옆에서 응원을 해주고 상상 이상의 거리를 가게 되거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과 내가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능력 그 이상의 결과가 있지 않을까. 정말 대단하다.'하는 생각을 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정희원 선수의 주특기는 3점 슛이다. 그는 슈팅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경기 중 3점 슛에 성공했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한다. 덩크처럼 짜릿한 수비인 '블록 슛'을 성공시켰을 때에도 기쁨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센터 포지션에 있었으나 고등학교 이후 키가 잘 크지 않아 지금의 스몰포워드 포지션에서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농구부 동료들이 훈련할 때 힘이 많이 되어준다고 느끼는 게 제가 슈터이니까 다들 제 슛이 들어갈 거라고 믿어주는 부분이 많아요. 그게 고마워서라도 저는 슈팅 연습을 하나라도 더 하게 되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제가 부족한 점도 너무 많은데요. 체력과 스피드, 특히 팀 디펜스 측면에서 이해도가 부족해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죠. 그럼에도 저를 믿어준다는 것이 참 고맙고요."

​대학 졸업 및 드래프트까지 2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 마치 대입 수능 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2학년생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에게 '프로에 진출해야만 한다, 잘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대하여 물었다.  

“프로에 가겠다는 욕심보다는 지금 현재의 목표들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더 커요. 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뛸 수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었던 적이 많았고,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는 경기를 하면 되었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농구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제 목표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팀플레이를 많이 하고 궂은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에요. 제가 나중에 농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열심히 했던 선수라고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며 여러 가지 많은 상황과 생각들이 그를 괴롭혔다. 아프고 힘들 때 마음에 없는 말로 부모님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그럴 때 늘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그를 변함없이 응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팀 선수들, 가족들, 감독 및 코치님, 서포터즈 선배님들까지 그가 지금껏 한 발씩 걸어 나가는 길에 크고 작은 디딤돌을 놓아주었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임할 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초조할 때, 그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주위의 사람들 덕분이라며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축복을 많이 받은 선수에요. 좋은 학교에 와서 많은 배려를 받으며 지금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운동을 그만 두었다면 후회가 많이 남았을 것이기에 지금 이렇게 훈련하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느끼고, 긴 재활 공백기 기간 동안 주위에 많이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희원 선수는 오늘의 인터뷰를 빌어 마지막으로 주위 고마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길 원했다. 다음은 정희원 선수가 보내는 감사 메시지의 전문이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일단 이민형 감독님, 박정호 부장님, 그리고 코치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 모든 분들이 하나같이 저를 이해해주시고 배려해 주세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독 및 코치님께는 감사한 마음이 많아요. 제가 보았을 때에도 애정이 느껴질 정도로 많이 가르쳐주시고 절 이해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희 '안암골 호랑이들' 서포터즈 선배님들!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응원해주시거나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진짜 너무 감사하고, 제가 계속 운동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신 것 같아요. 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팀원들이나 선배들, 특히 (박)재현이 형, (이)승현이 형, 그리고 (김)지후 형 같은 경우 저에게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진짜 모든 선배들이 저를 안쓰럽게 생각했을 수 있는데 저를 특히 많이 챙겨주셨어요. 감사합니다. 팀원들에게도 진짜 고맙고, 부모님과 동생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저를 믿어주셔서 고맙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해요. 
  그리고 트레이너 선생님들! 제가 자주 아파서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시고 힘드셨을 텐데... 옛날부터 어떻게든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트레이너 선생님들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작년까지 계셨던 정현이 형, 기호 형, 그리고 농구부 담당이셨던 호빈이 형, 그리고 지금 현재 계신 형민이 형, 정우 형, 민근이 형과 저희 학교 피지컬 트레이너를 맡고 계신 강민정 선생님께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가고, 캠퍼스에도 봄이 내렸다. 스물둘, 빛나도록 아름답고 창창한 젊은 선수가 벌써 농구 인생에 있어 사계절을 겪었다. 설렘과 흥분의 봄, 열정과 패기의 여름, 시련과 고통의 가을,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절망과 어둠의 겨울까지. 사계절을 보내고 한층 더 성장한 정희원 선수가 지금,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이 순환하듯 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이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 내면과 농구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의 시간은 선택의 순간에 그에게 순결한 의지와 지혜의 정신을 허락할 것이다. ​대학농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관심을 기울여 보자. 우리의 생각보다 멋진 삶을 살아가는 그를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