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억 (본지 논설위원 / KAIST 교수)

2000년을 전후해 인터넷 고속화와 웹기술 발전에 따라 세계적으로 전자상거래 열풍이 불었다. 대학들도 강의를 녹화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해 큰 수입을 얻을 것이라고 온라인 강의, 이러닝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조만간 대학과 교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현실이 되지 못했다.

이후 이러닝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첫째, 일반 대학과는 차별화된 사이버대학들이 등장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일반 대학에 다니기 힘든 학생들에게 특화해 온라인교육을 하고 있다. 둘째, 일반 대학에서 캠퍼스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녹화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주로 수업을 보조하는 목적이지만 대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대학의 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제공하는 Coursera, edX, KMOOC, KOOC 등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 플랫폼 들이 등장해 참여대학과 제공과목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MOOC에 의해 대학 및 교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다시 나오고 있다. 강의 녹화도 고가의 장비와 스탭이 필요한 전문 스튜디오 뿐 아니라 방음시설과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간이스튜디오나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녹화, 편집할 수 있게 됐다.

음악이나 영화는 이미 대부분 디지털화됐고 이에 따라 관련 산업 및 생태계가 크게 변혁됐다. 강의 등의 교육 컨텐츠는 아직 4% 정도만 디지털화됐다고 한다. 앞으로 디지털화 잠재력이 크고 디지털화가 20~30%에 이르면 교육 패러다임과 생태계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디지털 컨텐츠의 무제한적 복사, 공유, 배포, 반복, 편집과 더불어 인터넷과 모바일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교육과 학습에 활용되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혁을 위한 변곡점에 직전에 있다.

사실 이러한 변혁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강의는 녹화돼 이러닝으로 대체되고 수업은 강의 대신 팀웍, 토론, 사례, 실험실습 등을 진행하는 Flipped Learning(거꾸로 수업)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러닝(e-Learning)은 일부 연습문제와 온라인 질의응답 및 토론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Learning’ 보다는 e-“Lecturing”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미래의 이러닝은 최신 학습이론과 학습과정에 기반해 개별 학생의 지식수준 및 학습능력에 맞춰 상호작용적인 대량 맞춤형 학습컨텐츠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교과서가 이미 디지털화되듯이 강의도 디지털화된 동영상 ‘교과서’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 팀웍, 팀학습, 팀토론 기능이 크게 강화될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 화상전화가 보편화된 것을 보면 이러한 ‘미래형 이러닝’이 조만간 확산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교실 수업을 위해서는 팀웍, 토론, 사례, 실험실습, 문제풀이 등의 학생참여, 상호작용식 수업을 위한 수업자료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도 디지털 컨텐츠화가 될 것이다. 결국 교실 밖 학습과 교실내 수업이 디지털 학습컨텐츠를 공유해 학생이 단절 없이 학습할 수 있는 통합된 학습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화된 미래 학습 환경에서 교수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전통적인 일방전달식 강의를 반복하는 것으로 버틸 수는 없다. 가장 큰 역할은 학생수준과 교수의 교육 목표와 철학에 맞춰 디지털 학습 컨텐츠를 설계하고 저작하는 ‘컨텐츠생산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학습자들이 교실내, 교실밖에서 디지털 학습 컨텐츠를 이용해 학습하는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도와주는 ‘학습코치’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교수들의 컨텐츠 저작 시간과 노력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와 체계가 시급하다. 그리고 컨텐츠 저작과 학습코치의 역할을 위한 새로운 교육훈련과 적응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신이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일단 디지털화 변곡점에 이르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것이다. 그 변곡점은 바로 코앞에 있다.

대학도 미래 ‘디지털 비젼’을 세우고 교수 및 학생이 디지털 변혁에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관련 인프라, 제도, 문화를 바꿔야 한다. 디지털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뿐 아니라 사고와 가치체계도 크게 바꾸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