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재정지원, 무엇이 쟁점인가?

사상 초유의 권학유착이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쳐 드러났다. 박범훈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중앙대 특혜, 최근 비선실세 사태에 연루된 이화여대 사례는 대학이 권력과 정부, 자본에 종속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년째 총장이 임명되지 않는 국립대 문제는 어떤가. ‘대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구호가 아니지만 ‘대학 자율성의 위기’는 명백해 보인다. 그래서 ‘대학 자율성’을 다시 꺼냈다. 더 이상 대학의 붕괴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 본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세 차례에 걸쳐 대학 자율성을 진단하고 제고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上. 2016년 대학 자율성 긴급 진단
中. 대학 자체적인 구조개혁은 불가능할까
下. 대학재정지원, 무엇이 쟁점인가?

▲ 지난 6월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 모습. 

[한국대학신문 이연희·김소연 기자] 최근 대학가에서는 대학 규제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삼불(三不)정책'이 최근에는 '사불(四不) 정책'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여 입학제와 본고사, 고교 등급제에 '등록금 인상'이 하나 더해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다.

2013학년도부터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가 실시됐지만 사문화 된 상태다.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은 국가장학금 2유형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하지 않으면 정부 국고사업 참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봄이면 시작되는 개나리 투쟁, 즉 대학별 등록금 투쟁은 사라졌지만 대학들은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완성했다고 밝힌 '소득연계형 반값 등록금'은 묘한 구조로 대학들을 옭아매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반값 등록금은 전체 대학 등록금 14조원 중 7조원을 정부와 대학이 나눠 내는 구조다. 올해 7조 원 중 4조 원은 정부가, 3조 원은 대학이 부담한다.

대학이 낸다는 것은 법인이 대학에 전입하거나, 등록금으로 받은 비용을 다시 장학금으로 돌려주는 형태를 말한다. 국가장학금 1유형은 학생들의 소득분위에 따라 직접 지급하지만 2유형은 대학들이 전년도보다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자구노력, 즉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고 장학금 규모를 늘려야만 참여할 수 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대학 부담도 커지는 형태인 것이다. 대학들로서는 더 큰 재정을 따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복권을 긁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이 반값 등록금 정책에 참여하게 된 데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등록금' 책임이 대학에 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등록금이 높아진 이유는 사립대가 80%를 차지하는 국내 대학 지형, 그리고 고등교육 투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이라는게 고등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는 소득연계형 반값 등록금 정책을 도입하면서 2012년 GDP 대비 0.7% 수준이던 고등교육 재정지원 비중이 2017년에는 공약 GDP 1%를 달성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아닌 학생들에게 직접 투입되면서 총 공교육비는 늘어나지 않고 즉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교육비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물가 상승으로 기본적으로 소비되는 경상비도 늘어나면서 대학들은 필수적인 교육 외의 비용은 줄여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사립대 총장은 “우리 대학은 전통적으로 체육부가 강했는데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지원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보직교수는 “많은 대학들이 학내언론이나 학생회, 동아리 지원예산들을 줄여가는 형편”이라며 “대학 공동체 아래 이뤄지던 많은 활동들이 사라지면서 황폐해지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정부 지원이 고등교육 질을 높이기는커녕 저하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등록금 자율화는 어렵더라도 ‘등록금 상한율만큼이라도 등록금을 올릴 수 있게 해 달라’거나, ‘국가장학금 2유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한 수도권 사립대 기획처장은 “돈 수천억 원 쌓아놓은 대학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평가지표로) 특성화 하라고 해서 특성화 학과를 신설하려면 교수 채용하고 건물 신축하게 만드는 구조이고, 그럼 사학진흥재단에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됐다면 그 고삐를 느슨하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토로했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이같은 비판을 의식, 대학들의 자체노력과 연계하는 2유형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유지하고, 대신 대학들이 전년도만큼 자체노력을 유지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기준만 완화했다.

정영길 건양대 부총장은 “반값 등록금 정책이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져, 정책이 전환되지 않는 한 해법이 없는 상태”라며 “실제 정책 수요자인 대학과 학생들은 투자 대비 효과가 매우 적다고 느끼고 있다. 투자 대비 고등교육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box]“자율성 해치는 재정지원 사업 이대론 안 돼”
교부금 총액지원+목적사업 병행하는 교육부 재정지원 개편방식에 ‘기대 반 우려 반’

대학 등록금 동결 및 인하 기조가 수년째 반복되면서 대학들은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골몰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틀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특히 이화여대가 최순실의 자녀에게 입학과 학사특혜를 제공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고, 그 대가로 재정지원사업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영남대도 특혜의혹에 휩싸였다.

대학가에는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 A대학 총장은 “이화여대가 받을 만 해서 재정지원을 받은 게 아니라 각종 특혜나 부정을 통해 재정지원 사업을 싹쓸이 한 것 아니냐”면서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에 믿음이 사라졌다. 회의감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특혜가 아니더라도 각종 사업마다 반영하는 정량지표가 비슷하고, 비수도권보다 수도권 대학이, 중소규모 대학보다 대형대학이 재정 여건이 좋아 국고사업을 휩쓴다는 전문가 지적이 잇따랐다. 교육 프로그램, 산학협력 등 사업 내용도 국고사업마다 비슷해 중복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교부금(Grant) 형태의 재정지원 도입 요구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대학들은 학생 규모 등 일정 원칙(formula)에 따라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했던 대표적인 교부금식 사업은 교육역량강화사업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예산당국은 사업 성과가 낮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지금처럼 목적 지향의 재정지원 사업, 특히 대학본부가 아닌 사업단 중심 사업들이 크게 늘렸다.

이에 대학들은 목적사업 일색의 재정지원방식이 대학 자율성을 크게 저해했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부가 사업내용과 사업비 사용처, 평가지표까지 획일적으로 정해두고, 특히 국립대 총장선출방식, 등록금 책정, 정원감축 등 사업과는 관계없는 정책유도 지표를 연계하면서 대학들을 다 한 방향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교육역량강화사업과 같이 기본 요건을 갖춘 대학에 일정 수준의 재정을 지원해 주는 총괄 지원방식을 기반으로 사업단 지원을 병행 운영하는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김민희 대구대 교수는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통한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각종 정책관련 유도지표 비중이 높아서 각 대학의 특성을 반영한 대학의 자율적 운영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총괄 관리기관이 없어 지원대상이 중복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철 경북대 기획처장은 “고등교육재정 교부금은 ‘선 지원 후 평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큰 덩어리의 재정지원을 하고, 작은 덩어리로 경쟁 유도하는 목적사업으로 재편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같은 지적이 반복되자 교육부는 지난 7월 대학들의 요구를 반영한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복잡한 목적사업은 연구·교육·산학협력 중심의 세 분야로 간소화 하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업에 공모하면 교육부는 총액(Block Grant)을 배분하는 식으로 사업을 개편하기로 했다. 교부금식 지원방식과 목적사업을 합친 모양새다.

대부분 대학은 해당 개편 방향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편안이 제대로 현장에서 시행되기 위해서는 예산 당국 역시 대학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 지역 사립대 기획처장은 “올해 신설된 사업 예산만 해도 기획재정부에서 삭감하겠다고 밝혀 대학들은 당황스러워 하는 상태”라며 “최근 비선실세 사태로 어마어마한 세금이 낭비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예산당국의 의지라는 건데, 이제는 대학이 미래인재 양성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믿고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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