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서울 청원고 교사

▲ 배상기 교사

몇 년 전에 서울대학교 출신 9급 공무원 합격자가 나와서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서울대생 "저녁 있는 삶 위해 '9급 공무원'"). 하지만 최근에 노량진 일대에는 속칭 명문 일류대 출신이거나 재학생인 공시족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한 일간지 보도된 '7·9급 공시에 몰리는 명문대생들'(2018. 4. 6. 매일경제) 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취업의 장벽이 높은 현실과 함께 과거와 달라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몇 년 전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후배가 필자를 찾아왔다. 그는 아들 A군과 딸을 두고 있었는데 아들 A군이 고3이 됐을 때였다. 자동차 부품을 취급하는 회사 간부인 그는, 아들 A군을 세무공무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들도 서울시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 대학 세무회계학과를 목표로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A군의 성적은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A군은 수학을 좋아했기에 3등급을 유지했지만 다른 과목은 전체 학생의 중간이었다.

필자를 찾아온 후배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A군도 함께 왔다. 필자는 그들에게 ‘왜 세무공무원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어려부터 공무원을 하고 싶었기에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단다. 또 성격상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 도와주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상생을 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또 질문을 했다. 그러면 어느 대학을 목표로 했는가? 대답은 서울시 공무원이 되는 S대학의 세무회계학과로 진학하고 싶었다고 한다. A군은 그런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기는 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과목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해 지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무공무원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 때문에 더욱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세무공무원이 될 수 있는 과정이라면 어떤 과정이던지 좋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필자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경기 북부의 모 세무대학을 생각했다. 전문대학이지만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 특히 세무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 대학은 정부로부터 학자금 융자 지원 제외 대학이었기에 추천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 상황을 잘 설명했는데, 후배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형님, 등록금 융자는 안 받아도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필자는 다시 설명을 했고, 아들의 장래에 관련된 일이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상담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직접 학교에 찾아가서 확인해 보라고 권유했다.

며칠 후에 후배는 연락을 해왔다. 그 학교를 다녀왔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자기 아들인 A군처럼 의지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도움의 시스템이 잘 돼있기 때문에 수시에 지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했다. 4년제 대학이 아니라 장차 후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 학교는 현재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말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4년이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에는 아들이 너무 힘이 들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실제적인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그 학교에 원서를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재정상태가 나빠도 우리 아들이 졸업하기까지는 별일이 없을 겁니다. 재학 기간도 짧으니까요.”

전체 교과 성적 5등급 중반이고 수학은 3등급 후반인 A군은 그 학교에 지원했다. 성적이 좀 불안하기는 했으나 합격했다. 그리고는 매우 만족한 생활을 했다. 간혹 A군을 보면 만족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공무원 준비를 하는 시스템 때문에 힘들지만 꿈을 꾸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공무원 준비를 하려면 집중해야 하므로, 1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를 한 후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겠노라고 했다.

젊은이들의 꿈은 매우 다양하다. 그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이들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서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같은 목표점을 향해서 출발하는 사람들이라도, 가는 방향과 시스템이 다르다면 도착시간이 다를 것이다.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그 꿈만을 위해서 집중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과 다른 꿈을 꾸는데 한 번 경험삼아 생각해보는 꿈은 실천력과 추진하는 힘이 다르다.

이제 새싹이 돋는 신록의 계절이다.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계절의 느낌도 잊은 채 미래의 꿈을 향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 과정이 반드시 4년제 대학일 필요는 없다. 전문대도 강력한 힘을 주는 것이다. 필자의 사촌은 세무대학을 졸업하고 모 세무서장으로 재직 중이다. 또한 필자가 아는 모 대학의 교수는 서울의 한 전문대학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분이다.

명문대학생들이 다시 전문대학으로 진학하고 있으며, 명문대학생들이 하위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시대다. 남들의 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도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어떤 진로 과정을 선택해야 하는가는, 심도 있는 고민과 상담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

뚜렷한 기준이 없고 개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은 젊은이에게 인생의 힘을 빼고 구속하는 굴레로만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