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 본지 전문위원, 서원대 교수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아테네 올림픽으로부터 날아든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는 우리 국민들의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대회 끝 무렵 문대성 선수가 태권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우리 태권도의 참모습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멋진 것이었다. 올림픽에서 올린 우리 선수들의 성과는 우리의 경제력과 걸맞게 그 기량을 발휘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고, 그만한 성과를 올리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올림픽 얘기를 화두로 꺼내는 이유는 스포츠에서 우리 국력이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있지만 기초종목이자 메달박스인 육상 등에서는 아직 메달 권에 진입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에 우리 민족은 신체적으로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몽골리안 계통이라 육상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선수들이 신체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올림픽의 육상 경기에서 세계적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한 종목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 육상에서는 메달 권에서 멀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기초를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는 우리나라 국가 대표들의 훈련과정에 달리기 등 기초체력을 단련시키는 육상관련 훈련을 반드시 넣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달리기를 잘해야 축구든, 농구든, 배구든 어떤 종목의 스포츠도 다 잘 할 수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또, 올림픽에서 육상 종목에 메달을 많이 배정하는 것도 모든 경기의 기본이 육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초학문이 인접 응용학문에 기여하는 정도와 그 나라의 학문 수준이 비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어느 분야든 문호가 개방되어가는 추세에 학문분야라고 빗장을 걸어둘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가 탄탄한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밖에 없는 때가 된 것이다.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가 스포츠에서의 달리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을 육성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데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연구의 진척이 상대적으로 더디고 실용화나 상용화를 바로 할 수 없는 수학, 물리학,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열매를 바로 따 먹을 수 있는 기술에만 치중하다보니까 기초과학을 소홀히 다루게 되고, 기초과학이 부실하니 원천기술을 가질 수 없게 되고, 원천기술을 가진 게 적으니 그 기술을 빌리는데 내는 로열티로 다른 나라만 이득 보게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초과학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근시안적 사회인식을 고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기술 경쟁에서 선진국에는 물론이고 중국한테도 추월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사회 현상도 그렇다. 우수한 이과 고등학생들은 의대나 약대, 하다못해 수의과 대학에라도 진학하려고 한다. 정작 우리 사회의 산업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할 이공계열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더 많이 줄어들고 있어서 지방대학이나 사립대학에서는 학생충원을 못하여 기초과학 영역 전공이 없어지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마치 육상이 모든 스포츠의 도구가 되는 것처럼 기초과학은 다른 모든 학문 연구에 필요한 도구학문임에도 그런 중요한 기초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줄게 되면 다른 나라에 학문적으로 예속되어질지도 모른다. 당장의 성과가 안 나온다고 해서 기초과학을 소홀히 하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선국의 대오에 진입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초과학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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