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상 / 본지 논설위원, 연세대 교수

중국의 상하이 자오퉁대(상해 교통대)가 세계 여러나라의 5백개 대학들을 한줄로 세워봤다.그들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들은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해서 2백위미만의 대학 축에 끼일 뿐이었다. 객관성을 따지기 전에, 아시아권의 대학이 대학평가를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눈여겨볼 만 하다. 중국 내부에서 인식하는 세계 대학 순위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그들의 전략적 의미까지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자료를 통해 눈여겨 볼만 한 것은 대학별 등수가 아니다. 한국대학 교육의 위상점검 문제이다. 대학을 제대로 평가하면 대학원교육의 질은 평 한 눈에 알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저들의 눈에 한국대학은 끝내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한국 대학의 학문과 연구력 자체가 상당히 엉성하게 성장해왔다는 점과 앞으로도 한동안 그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중국이 잘 찍어낸 것이다. 사실, 한국의 대학원 교육은 대학교육의 엉성함에 비해 더 하면 더했지 나을 것은 없다. 대학원 교육은 마치 대학이라는 건물 위에 설치되어 있는 간이 구조물 같을 뿐이다. 대학원의 교과내용이나 행정내용들부터가 학부와 동일하다. 대학원이 별도의 연구교수들을 두고 있거나,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학문구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 교육이 학부교육보다 상위의 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학부교육에 종속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대학원 교육으로는 대학원 교육에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학문적인 수월성을 찾아내기도 어려울 성 싶다. 대학원 교육은 학부 교육과 불필요한 갈등이나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 지금의 대학교수들이 갖고 있는 학문적 성향들은 학부 교육에 도움이 되기도 어렵다. 대학원교육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교수들이 갖고 있는 학문적 훈련의 속성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런 긴장들이다. 앞서간다는 대학들의 교수들일수록 대부분 외국대학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외국에서 대학원교육만을 중점적으로 받은 사람들이다. 외국의 학부를 마친 사람들이 아니기에 외국대학의 학부를 잘 모른다. 외국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귀국하면, 그들은 학부 교육에 대학원에서 배웠던 그런 전공과목을 개설한다. 개설하는 것이 대부분 외국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그런 종류의 과목들이다. 결국 학부생들은 마치 외국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과목들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대학원 교과목으로 개설되는 것도 학부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과목과 내용이 중복된다. 교수의 한계도 들어난다. 대학원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규제를 갖고 있기에 교수들에게 자유롭게 교과목 개설을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학과 교수들의 이해관계들도 교과목 개설과 교수들의 강의 설강에 개입된다. 그래서 학부교육과 대학원교육 간에 마찰이 생긴다. 결국, 희생당하는 것은 학부교육이 아니다. 대학원교육이 희생당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적 수월성은 지켜지기 어렵다. 이런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대학원 교육을 학부교육과 분리하는 수 밖에 없다. 대학원 나름대로 연구교수도 두어야 한다. 대학의 사명을 연구, 교수, 봉사라고 한다면, 학부와 대학원은 연구와 교수기능을 확실하게 분활해야 한다. 학부는 보다 더 교수기능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반면에, 대학원은 연구기능에 충실하게 재편되어야 한다. 학부교수들은 학부의 학생지도와 진로지도에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연구교수들을 각종 연구소와 대학원의 행정체계 속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각 대학마다 두루뭉술하게 얽혀져 있는 학부기능과 대학원의 역할간의 구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둘째로 정부는 대학원 교육 협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원 교육의 새로운 진로와 연구기능의 최적화를 위해 필요한 조정기구가 필요하다. 대학원 교육 협의회는 동시에 각종 특수대학원의 교육기능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기능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산재하고 있는 각종 특수대학원 교육을 그대로 놔두면, 대학의 재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지만, 대학원 교육의 수월성만큼은 희생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학부교육 마저도 덩달아 어렵게 될 것이기에, 대학원 교육의 전열을 바로 잡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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