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해외에서 배운다, 대입 이렇게 혁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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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선다형에 매몰된 우리 교육, 해외대입제도 '대세'는 논술형
대학서열화 타파 없이 논술형 도입 불가, 정치권-여론도 걸림돌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대입제도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개편안을 1년 연기하고 공론화를 거쳐 2022학년 대입과 수능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 지난해 8월. 하지만 이후로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불공정하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는 일은 이번 정권에서도 변함이 없다. ‘잠자는 학교’를 없애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학생부 위주의 대입 전형들을 적극 확대한 대학들은 ‘실태조사’라는 역풍을 맞고 있고, 교육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간 논의돼 온 고교교육·대입제도 개편안들도 ‘무용지물’이다. 당장 2025학년 전면 확대가 예고돼 있는 고교 학점제부터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보다 앞서 논의가 흘러나왔던 IB 도입이나 수능의 논·서술형 전환 등의 사안들도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 그에 걸맞은 미래 교육 등 구호는 거창하지만, 우리 교육은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뒷걸음질하는 형국이다.

본지는 창간 31주년을 맞아 해외의 제도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피고자 한다. 특히 1994학년 처음 시행돼 올해로 27년 차를 맞이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여전히 대입제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교 교육의 목표처럼 여겨지는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역전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합당한지, 왜 우리는 수능에 이토록 집착하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입시제도의 잦은 변화로 미래 교육 등 구호는 거창하지만, 우리 교육은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뒷걸음질하는 형국이다.
입시제도의 잦은 변화로 미래 교육 등 구호는 거창하지만, 우리 교육은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뒷걸음질하는 형국이다.

■국가 표준화 대입시험, 논술형이 ‘대세’…바칼로레아, 아비투어 ‘대표 사례’ = 현재 OECD 36개 국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수능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표준화한 대입 시험을 가지고 있다. 국가 표준화 대입시험이 없는 OECD 회원국은 노르웨이와 캐나다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는 별도의 시험 없이 고교 내신 성적을 기반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국가 표준화 시험을 가진 나라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입시험이 선다형인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수능을 비롯해 미국의 SAT·ACT, 일본의 센터시험 등이 대표적인 선다형 시험이며, 여기에 터키·칠레 정도가 더해지는 것이 전부다. 

OECD 국가 대입시험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선다형이 아닌 논술형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를 비롯해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해외 대입제도의 주류인 논술형은 내신과의 결합 여부에 따라 구분해 볼 수 있다. 독일·호주·스페인·덴마크 등은 내신성적을 반영하는 반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은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에이레벨(A-level)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해당 시험에서의 결과물로만 점수를 매긴다. 반면, 독일의 아비투어는 시험 점수와 학교 내신을 합산해 대입 자격을 부여한다. 

가장 대표적인 논술형 시험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고교졸업과 대입 자격이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시험이다. 프랑스 교육부와 지방교육행정조직이 함께 주관하며, 채점은 현직 교사들이 맡는다. 크게 일반·기술·직업의 3개 유형으로 구분되며, 전공에 따라 문과·과학·상경·예체능 등 11개 영역으로 세분화된다. 

단발성 시험인 수능과 달리 바칼로레아는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다. 학생들은 고2 때 전기고사, 고3때 본고사를 각각 치른다. 전기고사는 전공별 3과목이며, 본고사는 계열별 차이가 있긴 하지만 7과목 전후로 구성돼 있다.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간혹 소개되는 바칼로레아 문제들은 대부분 본고사 문제들이다.  

논술형 국가 시험의 대표주자 격이지만 모든 과목이 논술로만 치러지는 것은 아니다. 어학은 말하기와 지필고사 형태이며, 일부 과목은 실기시험이 시행되기도 한다. 논술시험은 주어진 주제들 중 하나를 골라 작문하는 형태와 글을 분석하는 형태의 2개 유형으로 재차 구분된다.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85개 일반대학에는 별도의 대입전형을 거치지 않고 입학할 수 있다. 별도의 서류전형이 있는 그랑제콜(Grandes Ecoles) 준비학교나 본고사가 있는 그랑제콜, 이외 기술대학 등은 별도 과정을 거쳐 입학하지만, 일반대학의 비중이 월등히 크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의 ‘선별’이 아닌 입학 이후의 학년 진급과 졸업 과정에서 엄중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특징이다.

바칼로레아와 더불어 명성이 높은 독일의 논술형 시험인 아비투어는 하나의 대입시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졸업시험과 고교 재학 중의 내신을 통틀어 아비투어라고 일컫는다. 이중 졸업시험을 흔히 아비투어시험이라 부른다. 총점 900점인 아비투어 전체 점수 가운데 600점은 고교 내신, 300점은 졸업시험으로 구성되며, 900점 중 30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으로 판정, 대학 입학이 허용된다. 

아비투어시험은 바칼로레아와 마찬가지로 논술형 시험이다. 1개 과목에 한해서는 구술시험이 실시되기도 하지만, 나머지 과목은 모두 논술형으로 실시된다. 특정 주제에 대해 5시간에 걸친 논술식 필기시험으로 진행되는 아비투어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마찬가지로 ‘절대평가’ 체제다. 다른 수험생의 성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성적에 따라 대학 입학자격 여부가 결정된다.

기존 아비투어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중앙정부 주도형 시험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주 정부의 자치권이 커 주마다 교육부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마다 다른 문제가 출제되고, 이를 통해 동일한 대입 자격 여부를 판단했다. 주 정부에서 아비투어를 실시하지 않는 경우에는 단위학교별로 아비투어가 실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부산이 각기 다른 문제로 수능을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아비투어가 ‘자격시험’이라는 것과 독일 대학은 대부분 국·공립으로 이미 평준화돼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약 독일도 대학 선호도가 뚜렷이 갈리고, 아비투어 점수의 높고 낮음이 선호도 높은 대학의 입학 여부를 결정지었다면, 각기 다른 시험을 치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비투어도 ‘국가 주도형’ 시험으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2001년 국제학업성취도검사(PISA)에서 하위권으로 분류된 독일은 주별로 다른 아비투어 수준을 통일하기 위해 주 교육부장관들의 협의를 거쳐 중앙 아비투어를 도입했다. 수험생들이 필수 선택해야 하는 과목들을 위주로 공통 출제한 문제를 통해 아비투어시험을 실시하는 형태다. 

바칼로레아와 아비투어는 이처럼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내신 반영 여부도 다르지만, 공통점도 존재한다. 특히 우리 수능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격 고사’라는 점에 있다. 두 나라 모두 대학이 평준화돼 있기에 세밀하게 학생들을 변별하지 않아도 되는 공통점이 있어 변별이 아닌 대입 자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점을 둔 국가 표준화 시험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선다형 시험의 ‘명과 암’…논술형 도입 가능할까? = 이토록 해외 대입시험에서 ‘논술형’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선다형의 ‘부적합성’ 때문이다. 대입 시험은 통상 고교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교육성취 수준과 대학 진학 후 필요한 수학능력을 지녔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시된다. 선다형은 지식 습득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탁월한 효과를 지녔지만, 복합적인 성취 수준과 수학능력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래형 교육을 논할 때 수능이 배척 당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선다형 시험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별력’ 문제에 있어서는 선다형이 논술형에 비해 우위에 선다. 선다형은 문제 수와 난도를 조절함으로써 시험에 참여한 수험생들의 수준을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 논술형도 변별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다형처럼 성적을 상세히 구분하기 쉽지 않다. 시험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 때문에 논술형은 문제 수를 늘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선다형 시험인 수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매우 독특한 형태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선다형 시험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오로지 객관식 선다형으로만 시험을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의 SAT처럼 선다형과 글쓰기 시험이 혼합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관식으로만 구성된 선다형 시험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체제의 특징 때문이다. 교육열이 높고 입시 열기가 뜨거운 우리나라는 ‘대학서열’이 공고히 자리잡혀 있다. 유럽 대학들은 대부분 국공립 대학 체제이다 보니 평준화돼 있거나 서열이 있다 하더라도 세밀하게 대학 간 우열이 나뉘어 있지 않다. 사립대가 많은 미국도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명문사립대처럼 그룹으로 대학들이 나뉘어져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서울대로부터 시작해 한 줄로 대학을 줄 세울 수 있는 사례는 드물다.

이처럼 강한 대학서열이 공고히 유지되고 있기에 대입시험도 ‘변별’에 특히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동일한 문제를 출제해 풀게 하고,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일체 없는 선다형은 ‘형식적 공정성’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러면서 수능은 국가 표준화 시험이 오로지 ‘입시자료’로만 활용되는 독특한 특징을 띠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 표준화 시험은 자격 기준을 증명하거나 성취 수준을 판단하는 목적이 우선이다. 하지만 수능은 상대평가 9등급제에 더해 근소한 점수 차로 줄을 세우는 시험의 ‘기능적인 면’이 더욱 부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외 대입제도의 ‘주류’를 이루는 논술형 시험은 우리나라에 전면 도입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국제 바칼로레아인 IB를 도입하거나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교육청 주도로 시험이 실시된 사례가 있으며, IB 교육과정을 이미 적용하는 고교들도 일부 존재한다. 

논술형 내지 서술형으로 수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객관식 선다형이 아닌 논·서술형으로 수능을 실시하면 지식이 아닌 역량 중심의 평가가 가능해지고, 그에 따라 고교 교육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한동안은 선다형 시험의 영향력을 점차 줄이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이 시행돼 왔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늘어난 수시모집과 줄어든 정시모집이다. 수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정시모집을 줄이고 수능 이외의 평가요소들이 반영되는 수시모집을 늘림으로써 선다형 시험을 시행하되 대입에서 갖는 영향력은 줄어들도록 한 것이다. 수능을 ‘자격 고사화’ 함으로써 외국의 선다형 시험처럼 졸업자격을 증명하는 시험으로 위상을 낮추려는 논의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논술형 대입시험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논술형 시험 도입 시 사교육 대란이 벌어질 것이 예견된다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논술형 시험은 선다형 시험에 비해 난도가 높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처럼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나라에서는 논술형 시험도 결국에는 ‘변별’을 전면에 내세우게 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교육 수요자들은 ‘사교육’을 찾게 되는 그림이 눈에 선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입제도가 바뀔 때마다 초기 대응력에 있어 그동안 보여 온 사교육계의 기민함은 대입시험을 논술형으로 바꾸는 경우에도 여지없이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논술형으로 대입시험 체제가 바뀔 시 공교육의 교수 학습 프로그램도 따라서 변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교사 재연수, 인식 확대 등이 이뤄지기 전까지 사교육의 ‘맹공’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대학서열 체계를 파격적으로 개혁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술형 시험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장 대통령부터 나서서 학생부종합전형에 불공정 프레임을 씌우고, 국가 표준화 시험인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을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데다 정시모집 확대에 대한 여론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는 점을 볼 때 논술형 시험 도입의 전제 조건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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