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캐나다 센트럴칼리지 학장/본지 전문위원

대학개혁의 일환으로 공신력 있는 대학평가 전담기구(가칭 고등교육평가원) 설립 문제가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과 맞물려 화두에 오르고 있다. 지식기반사회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국가의 경쟁력 제고와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 및 대학의 특성화를 위해 대학개혁을 가속화하고 대학평가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지난 한 세대동안 1972년 실험대학 선정을 위한 대학평가를 시발점으로 하여 1982년 대학간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발족과 더불어 대교협이 주도해 온 기관평가, 종합평가, 평가인정제, 대학종합평가인정제에 의한 대학평가, 교육(인적자원)부가 실질적인 후원기구가 되어 평가전문인력을 구성하여 국책연구기관이나 전문영역기관에 의뢰하여 실시한 각종 기관평가 및 학문계열평가, 그리고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 같은 언론사에 의해서 대학평가가 수행되어 왔다. 이들 평가 주관기관들은 비록 평가유형, 평가주기, 실질적 후원기구, 평가인력, 평가기준, 평가방법 및 절차, 평가결과 및 그 활용에 있어서 다소 다른 양상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대학인은 물론 세인마저도 대학평가에 대한 시선과 시각이 곱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이유로 첫째, 대학평가의 무용론 내지 비효과성 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철저하게 서열화 되어 있는 현재의 견고한 대학차등구조가 과연 대학평가 결과만으로 깨뜨려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점이다. 설혹 평가결과에서 서울대가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았다고 해도 서울대가 세칭 ‘하류대학’으로 전락되고, 세간에 ‘하류대학’으로 분류되어 있는 대학이 평가결과에서 우수한 결과를 획득하였다고 해서 별안간 ‘일류대학’으로 부상하여 세인에게 소위 명문대학으로 부각될 수 있겠는가. 둘째, 평가목적에 대한 의구심 이다. 대다수의 대학평가의 실질적 후원 내지는 추진기관인 교육인적자원부의 야누스적인 성향에 대한 의구심 이다. 대학교육의 수월성, 자율성, 효율성, 책무성 신장 및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특성화 추진이라는 미명하에 행·재정지원이라는 미끼를 던져놓고 평가의 종속화 및 획일화를 야기시키며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 개혁을 강요함은 물론, 철저하게 대학의 차별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힘없는 사학’의 경우 구조개혁 실적과 연계된 “행·재정적 차등 지원”이라는 교육부의 슬로건은 대학의 자율성을 고사시킬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고 연구를 오도할 수 있다. 셋째,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의 문제 이다. 평가지표나 항목 선정에 있어 기관별, 학문별, 프로그램별로 타당성과 일반성의 결여는 물론 척도나 기준 설정에 있어서 학교의 특성, 규모, 사명 등에 따른 차별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평가전문인력의 구성에 있어서도 평가주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전문성보다는 '내편 써기식', '나누어 먹기식'으로 평가위원을 구성하여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넷째, 평가에 대한 관성과 타율성 이다. 대학 자율에 의한 경쟁력 제고와 구조개혁의 노력보다는 각종 평가기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평가를 통해서 대학의 질적 향상과 개혁을 수동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평가에 대한 관성과 타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대학에선 겉치레와 가식으로 치장한 형식적인 자체평가보고서가 작성되고, 구조개혁은 각 대학(학과) 이기주의로 인해 관련대학(학과) 행정가와 교수는 실질적인 구조 조정이나 개선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위해 임시방편적인 편법과 평가주체기관에 대한 로비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섯째, 평가로 인한 부조리 문제 이다. 각종 대학평가가 있을 때 마다 대다수 대학에서 평가위원 ‘받들고 모시기 경쟁’은 공공연히 자행되는 일이다. 지나친 환대와 접대는 평가의 공정성을 깨뜨림은 물론 평가의 목적마저도 희석시킬 수 있다. 만일 정부 주도의 평가전담기구가 태동된다면 이러한 부조리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고려해 볼 때,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 개혁과 대학평가 전담기구 설립 구상은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건설적인 대학개혁을 위한 ‘필요선’(必要善)이 아니라 단기적인 시각에서의 외형적인 대학개편을 위한 ‘필요악’(必要惡)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