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별기고] 귀 대학은 혁신을 안 해도 되는가?
[신년특별기고] 귀 대학은 혁신을 안 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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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인천대학교 총장
조동성 인천대 총장
조동성 인천대 총장

혁신 안 해도 되는 대학, 혁신해야 하는 대학

‘가죽을 벗긴다’는 뜻을 가진 혁(革)과 ‘새로’라는 신(新)을 합친 단어 ‘혁신(革新)’은 ‘내 몸에서 가죽을 벗기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고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이렇게 혹독한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혁신은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옛 동네에 가면 재래시장이 있다. 수많은 점포가 뒤섞여 있는데 그 중 유독 2~3개 점포에만 고객들이 줄 서서 기다린다. 그 점포들은 지저분한 외관, 재활용지로 만든 포장지 등 조금만 노력하면 산뜻한 점포가 될 텐데 참으로 아쉬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 가게가 혁신의 이름으로 간판을 새롭게 붙이고 포장지를 바꾼다면 어떨까? 아마도 손님들이 이질감을 느끼고 더 이상 줄 서지 않을 것이다. 잘 나가는 조직은 혁신하지 않아도 된다.

혁신은 언제해야 하는가?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존 전략으로 기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때, 둘째는 새로운 목표가 생길 때, 셋째는 환경이 바뀐 때이다.

첫째, 기존 전략으로 기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대학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인천대학교가 2019년까지 지켜왔던 비전은 ‘지역의 인재를 세계의 인재로’ 였다. 그러나 인천대가 가진 기존 자원과 전략으로 지역 인재를 세계 인재로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제화된 교수인력도 부족하고 교육시설도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화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고, 세계화된 문화를 꿈꾸기도 어려웠다.

둘째, 새로운 목표가 생긴 대학을 생각해보자. 보통 첫 번째 상황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한 대학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된다. 우리 대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목표를 수정했다. 사립대에서 시립대로 바뀐 1994년에 ‘동북아 중심대학’이란 새로운 목표를 추구했고, 시립대에서 국립대로 바뀐 2013년에 ‘사회적 책임 제고와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부로부터 부여 받았다. 개교 40주년을 맞은 2019년에는 ‘세계의 인재를 미래의 리더로’라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다.

셋째, 환경이 바뀐 대학을 생각해보자. 국내에서 인구절벽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면서 대입정원 49.7만명에 비해 대입가능자원은 47.9만명으로 3.6% 모자라는 데드 크로스가 발생했다. 이렇게 크게 줄어든 우리나라 대학진입 적령인구는 앞으로 20년 안에 다시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이런 와중에 삼성, SK 등의 재벌기업들은 기존 대학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SADI, SK대학 등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남북을 둘러싼 미・중・일 간의 긴장, 올해로 다가온 일본의 재무장, 일촉즉발의 미중 전쟁, 지금이 제3차 세계대전 전야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 세 가지 상황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대학은 혁신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상황이라도 해당된다면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학자는 기술 한 가지를 개발해서 특허 한 개를 따낼 수 있지만 기업은 여러 가지 특허를 조합할 때 비로소 제품 한 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혁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게 아니다. 대학은 모자이크 그림처럼 여러 가지 혁신을 모아 체계적으로 실행할 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혁신은 성격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주체의 혁신이다. 혁신은 실무 현장에서 원하지 않는 일이다. 힘들고 고된 현장 업무에 고통스러운 혁신 업무를 추가하는 것을 반길 실무자는 없다. 또 현장은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는 곳이 아니라 기존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는 곳이다. 혁신 업무의 ‘혁’도, ‘신’도 현장에서는 기피사항이다. 그러기 때문에 혁신은 톱다운(Top-down), 즉 위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혁신을 보텀업(Bottom-up), 즉 실무자가 주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혁신이다. 우리 대학에서는 혁신 프로젝트 76개 중 64.5%에 해당하는 49개를 실무자가 개발했고, 76개 모두 실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장 실무자인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들이 혁신 프로젝트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소유하고, 스스로 혁신을 한다는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목적의 혁신이다. 세계 모든 대학은 (무의식적으로) 각 학과의 학생 정원을 기준으로 각 학과에 예산을 배분한다. 그러다 보니 각 학과 교수들은 학생 정원을 ‘신성한 소(Sacred cow)’로 여기고, 대학 본부가 단 한 명의 정원 감축을 요청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결사항쟁을 한다. 학생에 대한 질 높은 교육은 교수들의 관심사에서 두 번째로 밀리게 된다. 우리 대학은 각 학과에 배정되는 운영비 예산 배분기준을 각 학과의 학생정원에서 각 학과가 개설하는 과목의 수강생 숫자로 변경했다. 당장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각 학과는 학생정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교수들은 질 높은 강의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예산배분기준 변경은 혁신의 실체가 겉으로 들어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들의 행태가 저절로 바뀌는, 조용하면서 강력한 혁명이다.

셋째는 가치관의 혁신이다. 21세기 경영의 가장 큰 화두는 공유가치창조(CSV; Creating Shared Value)다. 이제 기업은 자신의 가치와 함께 기업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동시에 올려야 한다. 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 대학은 ‘공유가치창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 배정기준을 종래에 사용하던 연구업적 향상과 교육효과 증대라는 대학 가치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 사회문화 창달, 자연환경 보호 등 사회가치를 동시에 고려한다. 이같이 우리 대학은 우리 대학이 사용하는 모든 예산에 사회가치를 추구하는 목적을 포함시킴으로써, 대학 가치만을 추구하는 ’유능하지만 편협한 대학’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서도 사회와 함께 가는 따뜻한 대학’이 되고자 한다.

우리 대학은 ‘국제교육사 자격제도’를 도입했다. 170만 명에 달하는 고학력 청년 실업자들이 한국사회의 큰 사회문제다.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 인력 채용 숫자를 늘리는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가 200만명을 넘은 근로기회 천국이다. 이 같은 모순에는 원인이 있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만족스러운 경제적 보상 이외에도 보람이 있고 즐거워야 한다. 우리 대학이 개발한 ‘국제교육사 자격은 전 세계 237개 국가 중 200개가 넘는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초・중등학교 교사가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젊은이 10만명이 500명씩 200개 국가에서 그 나라 학생들을 교육시킨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 역사에서 2000년 전 로마, 200년 전 영국의 젊은이들에 이어 세 번째로 세계화를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이다. 세계 최초인 이 제도는 향후 한국을 뛰어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도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은 ‘우리(WURI; 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라는 대학평가제도를 선도하고 있다. 2019년 우리 대학에서 열린 제2회 한자대학동맹(Hanseatic League of Universities) 회의에서 도입하기로 결정한 WURI 세계대학평가제도는 대학이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실제 영향력, 창업가 정신 교육과 창업지원, 윤리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인성교육, 학생들의 국제교류와 개방성 등을 평가하는 새로운 대학랭킹제도다. WURI 평가제도는 QS, THE 등의 기존 세계대학평가제도가 지닌 지나친 대학 내부 지향적 성향을 지양하고 실제 사회를 위한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세계 3만여 대학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제1회 세계대학 랭킹은 2020년 5월 미국 노던 아리조나 대학(Northern Arizona University)에서 열리는 제3회 한자대학동맹 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우리 대학은 민족사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14년간 전국 각처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10만 의병들의 공훈을 발굴해 서훈 신청을 하는 연구사업을 함으로써, 우리 대학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민족대학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접근방법(내용)의 혁신이다. 접근방법의 혁신은 그 내용에 따라 연구의 혁신, 교육의 혁신, 행정의 혁신, 복지의 혁신, 캠퍼스환경의 혁신으로 나눌 수 있다.

연구의 혁신으로 선택한 ‘집중연구중심대학(Fru; Focused Research University),’은 우리 대학 연구혁신의 중심이다.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서울대, 동경대, 북경대 등 전통적인 ‘종합연구중심대학(Comprehensive Research University)’은 교수들이 연구하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수월성을 추구한다. 학문적 융합을 하는 경우에도 특별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다. 어떤 분야이던 관계없이 교수들이 원하는 연구 주제를 잡아서 탑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면 된다. KAIST, MIT, Cal Tech등 ‘집약연구중심대학(Intensive Research University)’은 주로 공학과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모여서 연구를 한다. 그러나 교수들은 어떤 분야를 연구하던 관계없이 아무도 간섭하지 않다. 연구결과를 톱 저널에 논문으로 게재하기만 하면 된다.

집중연구중심대학은 다르다. 우리 대학은 특정 분야에 초점(Focus)을 맞추고 학내 64개 학과의 모든 교수들에게 자신의 전공과 연계된 융합연구를 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우리 대학은 6가지 연구초점을 선택했다. 그 것은 ‘바이오’ ‘통일후통합’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스마트시티/스마트에너지’ ‘녹색금융’ ‘빅데이터/AI’다. 그동안 우리 대학은 조교수와 부교수가 전 교수 정원의 60%에 가까운 젊은 학자들을 기반으로 교수 1인당 연구논문 편수에서는 한국 대학 중 최상위 권에 들어갔지만, 한국 경제와 산업의 미래를 여는 큰 규모의 연구에 있어서는 전통이 있는 다른 대학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향후 우리 대학이 선정한 6가지 연구 주제는, 우리 대학이 논문도 많이 쓰고, 사회적 영향력도 큰 대학으로 자리매김해 줄 것이다.

교육의 혁신으로는 ‘(기업이 주도하는) 매트릭스 칼리지’를 도입했다. 교수들이 주도해서 설계한 학문 위주의 64개 학과를 X축으로 놓고, 학생들의 채용을 담당하는 기업과 사회조직들이 주도해서 설계한 사회수요를 반영하는 학과를 Y축에 놓았다. 이로써, 그동안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전공 자리를 놓고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이 치열하게 다투던 ‘경쟁적 관계’를 서로 돕는 ‘보완적 관계’로 바꾸었다. 통상적으로 130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교수들이 설계한 과목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42학점, 기업에서 설계한 과목에서 두 번째 3분의 1인 42학점을 선택하고 졸업하면 된다. 나머지 46학점은 학생들이 선택과목 중에서 학창시절에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매트릭스 칼리지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취업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업과 사회조직은 원하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교육시켜서 뽑아갈 수 있다. 이 제도에서 핵심은 교수들이 학과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교권’을 외부인사, 특히 학생들을 채용하는 기업 경영자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Company on campus, 즉 학교 캠퍼스 안에 기업이 들어온 것이다.

행정의 혁신으로는 ‘공간 바우처 제도 추진’ ‘(경영투명성 향상을 위한) 대학 MRO 사업’ ‘(청렴성을 확보하기 위한) 계약(거래내역) 정보공개 100% 확대’ ‘본부부서 전문직(시설, 전산, 사서) 직원 선생님의 현장파견근무’ ‘(장벽 없는 소통을 위한) 사무실의 스마트오피스화’ 등을 추구하고 있다.

다섯째는 문화의 혁신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문화를 ‘조직구성원들이 장기간에 걸쳐 습관화한 공통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는 운명적으로 주어진 조건, 상수였다. 1982년 톰 피터스(Tom Peters)와 로버트 워터만(Robert Waterman, Jr)이 출판한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었다. 이제 문화는 조직 책임자가 능동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조건, 변수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이 가진 문화적 변화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우리 대학의 혁신에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필요조건이 있다. 그것은 우리 대학 구성원의 능력 그 자체다. 우리 대학 직원선생님 250여 명과 조교선생님 90여 명이 능력을 갖출 때, 우리 대학은 어떤 혁신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대학으로 귀속되는 혁신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우리 대학이 공부하는 조직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이라는 문화로 무장한다면 우리 대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학은 더 이상 없게 된다. 이를 위해 우리 대학은 전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이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구성원은 향후 정규대학으로 바뀔 평생대학(현 평생교육원)에서 교수로 임용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교육 혁신은 구성원들의 실무능력을 제고하자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이 학생이 되는 순간, 이들은 학생들을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이해하고, 교수들을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대학은 이 변화를 통해서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돼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 일어나는 대학 문화를 지향한다.

20세기 인사관리의 초점이 교육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신입사원관리’였다면 21세기 인사관리의 초점은 ‘퇴직관리’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100세 시대로 나가는 오늘날 퇴직예정자가 퇴직 후 인생에 대해 가진 불안감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관리는 퇴직 이전 근로자의 근무집중도를 높이는 데 직접 효과를 발휘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퇴직관리는 구성원의 생존권과 인격권의 확보라는 시대흐름에 부응하는 이슈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대학이 시도하고 있는 ‘명퇴 예정 직원선생님에게 학내 창업기회 제공’은 학내 구성원을 위한 미래지향적 퇴직관리라는 점과 함께, 창업선도대학을 지향하는 우리 대학 목표 그리고 창업국가를 추구하는 정부 철학과도 맥을 같이 하는 제도다.

여섯째는 상징의 혁신이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상상이 상징(Symbol)으로 바뀌는 순간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상징은 세 가지 효과를 내는 주체와 현상 간의 소통 수단이다. 주체에게 현상을 ‘확인’ 시켜주고, 주체와 현상을 ‘일체화’ 시켜주며, 주체의 현상에 대한 참여를 ‘증강’ 시켜준다. 십자가는 신자에게 기독교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고 소속감을 주며 신앙을 더욱 깊게 해준다.

구성원의 혁신활동에 있어 상징은 큰 역할을 한다. 구성원에게 혁신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구성원들에게 혁신활동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며 구성원들의 혁신 효과를 높여준다. 들뢰즈의 표현처럼 상징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혁신이다.

우리 대학이 구현하고자 하는 중요한 가치는 구성원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밑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본부는 솥뚜껑처럼 교수와 학생들이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을 위에서 규제하는 기관이 아니다. 탄탄한 기반이 돼 구성원들이 이를 딛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게 하는 밑받침이 되고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더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대학은 이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조직도를 180도 회전’해 본부가 규제 대신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는 혁신을 실천했다. 이 조직도를 보면서 구성원은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가장 밑에서 구성원들을 떠받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늘을 향해서 뛰어오르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조각 맞추기 퍼즐은 마지막 한 개까지 모두 맞춰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 프로젝트를 각각의 성격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이들이 서로서로 보완적으로 기능을 하면서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일 때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잘못된 주체가 추구하는 접근방법의 혁신은 아무리 내용이 좋다 할지라도 실행과정에서 힘을 얻지 못한다. 가치관이 잘못된 대학은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문화의 혁신은 상징의 혁신과 함께 갈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혁신 프로젝트가 서로 보완적인 효과를 낼 때 대학은 혁신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혁신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혼자보다 함께, 둘째는 개발보다 실천, 셋째는 단기보다 장기 지속성, 넷째는 주체보다 고객이다.

첫째 원칙은 (총장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함께 하는 혁신이다. 우리 대학은 ‘전 구성원이 참여하고 현장이 주도하는 혁신’을 하기로 선택했다. 현장 실무자인 우리 대학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들이 혁신을 능동적으로 주도하려면 그들이 혁신주체로서 스스로 혁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대학에서는 대학, 아니 모든 조직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그러나 혁신문화에 맞지 않는 용어를 순화시켜나가기로 했다. 대학본부와 현장 부서 간에 ‘서류를 내려 보내고, 올린다’는 표현 대신에 ‘제출한다’를 사용한다. 우리 대학 조직에는 부서 간에 상하관계가 없고 다만 업무의 성격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또 ‘직원’과 ’조교’라는 명칭 대신에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직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은 학생들을 비롯한 학내구성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 존댓말을 쓴다. 우리 대학 가족은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성차별’과 ‘원치 않는 신체접촉’은 물론, 나이, 직급, 직책에 따른 ‘언어폭력’과 심신장애자에 대한 ‘차별대우’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원칙은 (아이디어 개발보다) 실천에 초점을 두는 혁신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이 실천되지 않으면 자원이 낭비되고 조직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혁신은 현장에서 일어난다. 실천을 하려면 대학조직의 무게중심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 본부보다 대학 현장에, 대학보다 학과에, 학과보다 강의실, 연구실,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실무자들에게 혁신에 필요한 자원이 배분될 때, 현장의 실무자들이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자원을 활용해서 혁신성과를 이룬다

셋째 원칙은 (반짝하는 단기 효과를 내는 혁신보다) 지속성이 있는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 프로젝트의 집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도록 기한이 설정돼야 한다. 일부에서는 총장의 임기가 4년보다 길어야 혁신성과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혁신을 톱다운으로 접근할 때의 이야기이다. 혁신이 현장에서 보텀업으로 이루어지는 대학에서는 혁신의 지속성이 총장의 임기가 아니라 현장 실무자들의 혁신의지와 이를 담보할 수 있는 혁신에 대한 오너십, 즉 소유권에 의해 이루어진다.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현장에 있는 실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혁신프로젝트를 집행해야 한다.

넷째 원칙은 (대학의 주체보다) 대학의 고객을 위한 혁신이다. 국립대학을 설립한 주체는 정부이고 사립대학을 설립한 주체는 설립자다. 대학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교수와 직원선생님들이다. 그러나 대학이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대학의 고객, 즉 대학이 속한 사회와 그 사회에 진출하려는 학생에게 제공하는 연구결과와 교육이다. 대학이 주체가 아니라 고객을 중심에 놓고 역할을 하는 순간 크고 다양한 혁신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대학은 더 이상 정부가 발행하는 인증서에 의해 존립이 결정되지 않는다.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선택할 때 꽃이 되고 기업을 비롯한 사회조직이 대학의 졸업생을 선택할 때 열매를 맺는다.

혁신은 세 가지 상황에서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하고 네 가지 원칙을 지키는 데서 완성된다.

기존 전략으로 목표를 달성했고 새로운 목표 역시 달성한 대학이라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혁신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환경이 바뀌는 세 번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대학, 혁신 안 해도 되는 대학은 이 세상에 없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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