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치용 코넬대 연구원(자유기고가)

‘손에 굳은살이 박인 일하는 사람만 식탁에 앉을 수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바보 이반》에 나오는 바보 이반이 세운 나라의 계율이다. 이제 다시 국회의 일꾼을 뽑는 시간이 4월 15일로 다가오면서 21대 국회에 거는 유권자의 마음은 무겁다. 최악의 국회라 불린 20대 국회의 재탕 내지는 그보다 못한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20대 국회는 ‘조국 사태’와 더불어 선거제 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그리고 검찰, 경찰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여야가 거의 1년을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본회의에 상정한 법안 처리율이 30%대를 밑돌면서 일하지 않는 식물국회라는 명칭을 얻었다.

어디 그뿐이랴. 위 세 가지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 지정에 반대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막말, 몸싸움이 난무하는 국회를 만듦으로써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에 두고, 싸움만 일삼는 동물국회라는 별칭을 함께 얻었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식물과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동물 처지에서 보면 치욕스러운 욕일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자는 취지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여야는 꼼수 ‘위성정당’을 만들며, 권력 장악에만 눈먼 모습을 드러냈다. 소설에 나오는 농부의 첫째 아들 세몬은 신무기로 장착한 막강한 군대를 이용해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권력욕을 지닌 군인이다. 여야 소속 누구나 할 것 없이 권력에 눈먼 세몬이었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는 3월 26일 국회의원에 대한 정기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을 공개했다. 재산이 증가한 의원은 73%에 달했고, 국회의원 100명은 주택 두 채 이상을 가진 '다주택자'다. 서울 강남·송파·서초구 등 '강남 3구'에 주택을 한 채 이상 보유한 국회의원도 71명으로 나타났다. 소설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 타라스는 재화인 돈만 추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한 나라의 왕이 돼서도 그의 탐욕은 멈출 줄 모른다. 다수의 국민은 고위공직자와 타라스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부 전체 고위공직자의 33%가 다주택자라는 발표만 봐도 정부가 작년에 발표한 고강도 세금, 대출 규제를 강화한 12·16 부동산대책이 과연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자신의 부에 손실을 주면서까지 올바른 정책을 펼 위정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소설의 종반부는 셋째 아들 이반과 여동생 몰타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악마가 유혹하는 권력과 재화 욕망에 넘어간 세몬과 타라스와는 달리 이반이 세운 국가에서 악마의 달콤한 유혹은 실패한다.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군사의 필요성도, 재화의 귀중함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반의 나라로 몰려든다. 누구나 이반의 나라에 살 수는 있지만 몰타는 손에 굳은살이 박인, 일하는 사람만 골라내 식탁에 앉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게 한다. 이반이 세운 나라에선 정직한 노동이 국가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19가 휩쓴 지금의 세계에서 생존의 위기를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점상에서부터 일용직 근로자, 프리랜서 업종 종사자, 택배 같은 물류회사 근무 노동자 등 모두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들이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오는 총선에서 권력만을 추구하는 세몬이나, 재화욕심 가득한 타라스 같은 인물 말고 노동의 참뜻을 아는, 굳은살 박인 이를 대우하는, 열심히 일하는 ‘바보 이반’ 같은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자.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