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강윤주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강윤주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아버지께서는 전혀 비속어를 쓰는 분이 아니셨는데, 어릴 적 우리가 뭔가 잘못을 하거나 한심한 짓을 하면 가끔 ‘에이~밥통 같이’ 하셨다. 바보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했지만, 밥통이 무슨 잘못을 했나? 왜 밥통이라 하셨었나? 지금은 돌아가셔서 여쭤볼 수도 없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다시 만나면 그것부터 여쭤보고 싶다. 그러면 또 밥통 같이, 하시려나?

공무원이나 교수 같은 직업을 보고 철밥통이라고 한다. 밥통이 바보라면 철밥통은 왕바보인가?

사회에서 교수에게 철밥통을 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수가 무엇이길래? 뭘 하라고? professor의 pro는 '앞에·앞으로', fess는 '말하다'의 의미다. profess는 '분명히 말하다'에 접미사 'or'이 붙어서 professor '교수'가 된 것이다. ‘이것은 이러하다’고 확실하게 공언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프로페서'다. 권력이나 자본, 불의와 무지 앞에서 교수라면 교수답게 무엇이든 소신 있게 말하라고, 내 밥그릇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른 말하다가 나와 내 가족이 불안하면 옳은 소리를 못할 테니까.

나는 어떤 말을 했나? 무엇에 저항했나?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기다려야 할 때 다그치지 않았나? 교육 개혁을 해야 할 때 내 밥그릇이 안전한지, 내 이해관계에만 연연하지 않았나?

교수도 사람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다르지 않다면 내 철밥통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나? 나의 교육철학은 무엇인가?

교육하다의 어원은 ex(밖으로)+duc(이끌다)+ate(동사)로, 불필요한 자음 'x'를 뺀 educate다. 학생의 자질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교육'일진데, 나는 여전히 내가 아는 것을 집어넣으려고만 하지 않았나? 사유하게 하지 않고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나? 더불어 함께 사는 것보다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기지 않았나? 강의평가 신경을 쓰며 고객 대하듯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않았나?

잘못된 권력 앞에는 벙어리로, 학생에게는 갑질로, 교육구조개혁 앞에서는 철밥통만 붙들고 안절부절하지 않았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대학 등록금이 세계 1위라는 우리나라 교수로서 1등으로 가르쳤나?

아이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받는 존엄한 인간이 되도록 가르쳤나? 나는.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래 OECD 회원국 중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 자살증가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자살 생각률과 자살 계획률, 자살 시도율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3-4배나 높아 자살로 이어질 확률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는 OECD 20개국 평균 84.4%, 독일 94.2%로 제일 높고, 대한민국 53.9%로 제일 낮다고 한다. 연일 보도되는 이런 자료가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만, 인생을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불행하고, 죽음을 선택하도록 하는 이 끔찍한 사회 문제는 교육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 문제의 중심에 대학이 있고, 그 핵심인물들이 교수라는 것에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에 태어나 남에게 도움은 못줄지언정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데 혹은 방조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내가 우리나라의 교육을 전부 바꾸지는 못해도 교육을 위해 강의 이외에 무엇을 했나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철밥통을 내려놓지는 못해도 밥값은 하고 싶다. 이런저런 핑계대지 않고, 교수로서의 일말의 양심과 체면은 지키고 싶다. 교수로서의 애티튜드를 지켜내고 싶다. 부족했던 나의 잘못과 실수들을 일일이 고백하고 참회록이라도 쓰고 싶다. 이제라도 공감하는 교수들과 연대하고 싶다. 대학교육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힘을 모으고 싶다. 교수 몇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될 일이었으면 벌써 됐다고, 턱없다 해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철밥통만 부여잡고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정말 달라져야 하는 것은 교육이다.

우리나라 시민은 세계 수준인데, 정치인이나 나를 포함한 철밥통인 사람들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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