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협 창립 25주년 특별기고]백형찬 교수 / 서울예술대학 교육학

올해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대교협은 우리나라 대학교육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대학평가를 실시한 것과 정부로부터 대학입학 선발업무를 가져온 것을 들 수 있다. 대교협은 우리나라 대학교육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평가를 실시했다. 당시 적지 않은 대학들이 평가를 반대하였으나 대학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현재 원칙과 기준에 의거, 매년 대상 대학을 정해 대학종합 평가와 학문분야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교협의 대학평가는 ‘평가를 위한 평가’로 중앙일보사가 매년 실시하는 대학평가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비판을 호되게 받고 있다. 또한 대교협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교육부로부터 대학입학 선발업무를 가져왔다. 비록 입학선발권을 다 찾아 온 것은 아니지만 선발업무를 대교협에서 독자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학 선발업무를 가져왔다는 것은 대교협의 법적 기능 중에 하나인 ‘교육부장관이 위탁한 사업’을 그저 대행하는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다. 대교협의 설립목적은 법에서 정한대로 ‘대학운영의 자주성을 높이고 공공성을 함양하며 대학의 상호협조를 통하여 대학교육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에 있다. 대학운영의 자주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바로 ‘입학선발권’이다. 입학선발권과 입학선발업무를 잘 가려보아야 한다. 입학선발업무는 말 그대로 업무이지 권한이 아니다. 반면에 입학선발권은 권한이다. 대교협은 그 자주성의 척도인 입학선발권을 아직도 교육부로부터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가 바로 정부의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고수이다. 이 ‘3불 정책’을 타개하는데 대교협이 앞장 서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교협은 어쩌면 매년 받는 정부의 예산도 받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각 개별 대학들은 정부와 ‘3불 정책’을 놓고 싸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부가 ‘재정 지원’이라는 무기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말 잘 듣는 대학에게만 돈을 준다. 말을 듣지 않으면 행·재정 제재는 물론 종합감사까지 들고 나온다. 이러한 정부에 큰소리칠 수 있는 대학은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밖엔 없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학생자원부족으로 재정적 압박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운영의 자주성’은 적잖은 대학에겐 공염불이나 마찬가지다. 대교협은 전국대학 총장들로 구성되어 있는 법인체이다. 대교협의 목소리는 곧 총장들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총장들이 올곧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국대학교육혁신대회에서도 손을 들어 바른 말하는 총장은 없다. 언제부터인지 총장들은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마치 들짐승이 순하게 길들여지는 것처럼, 야성을 잃었다. 옛날 총장들은 지성과 야성을 함께 겸비했다. 유진오 고려대 총장, 백낙준 연세대 총장, 김활란 이화여대 총장이 그랬다. 대학교육의 자율권은 바로 이러한 거인총장의 손에 달려 있다. ‘3불 정책’도 거인총장 몇 사람만 있었다면 벌써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송복 연세대 교수가 “똘똘한 대학총장 한 명만 있었어도 3불 정책은 일찌감치 끝났다”고 했을까. 지금 대교협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총장들에게 야성을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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