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본지 전문위원·한국해양대 교육정책학과 교수

현 정부 교육정책에 관해 이러저러한 말들이 무성하다. 한마디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이리로 가자는 건지 저리로 가자는 건지, ‘오락가락’(말 바꾸기), ‘거짓말’(숨기기), ‘철학의 부재’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정책을 내놓았다가 비판이 제기되면 정책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없었던 일로 하고 굳게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교육정책을 놓고 거짓말을 일삼는 모습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철학의 부재 또는 당파성이 강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교육정책을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오락가락’ 정책의 대표적인 예는 영어몰입교육이다. 인수위 시절 난데없이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비판이 거세지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쳐진 사람’ ‘노력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국수주의자’로까지 매도하면서 결기를 세웠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부산을 떨다 “영어몰입교육을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영어 사교육시장은 들썩였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고조되었다. 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민심이 흉흉해진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서 “영어 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거짓말’ 정책은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겠다’고 한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사교육업계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현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는 걸까.

대통령이 나서 ‘진압’했지만, ‘24시간 학원 교습’을 허용하려 발 빠른 행보를 보인 서울시의회의 모습은 과연 우연일까?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라는 점에서 향후 5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겠다’고 하면서 내놓은 학교정책은 또 어떤가? 눈 깜짝도 하지 않고 계층 차별적인 학교정책을 강행하려는 데서 ‘내세우는 말 다르고 정책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특별히 자율형 사립학교는 ‘거짓말’ 정책의 표본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는커녕 교육계급(층)화를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중점과제’로 돌려놓았다가 정부 출범 다시 전면화 시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정책이 얼마나 교육적 정당성이 없는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안정적인 계층(급) 재생산이 가능한 ‘귀족학교’를 만들어줄 테니 학교 운영에 드는 경비를 부담하라는 부유층 학부모들을 향한 메시지일 따름이다. 그것도 모자라 ‘대입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내신을 무력화시키고 고교등급제 실시할 수 있는 선물까지 보따리로 안겨주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불공정 경쟁조건”이 강화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락가락하고 거짓말이 난무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참모들이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공교육 재정을 감축하고, 기업사회에 필요한 의식의 재생산을 교육정책의 목표로 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비(반)교육적인 행태와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경제논리에 사로잡혀 출발부터 교육적 안목 내지 비전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의중을 숨기기 위해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다. 비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피해보고자 거짓말을 일삼는다.

부자와 기업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반영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건강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정책이 절실한 때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