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아직은 찻잔 속 '태풍'

KAIST가 최근 재임용 심사에서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키는 등 대학가에 개혁바람이 불고 있지만 전체 대학으로는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에선 재임용 탈락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최근의 개혁바람이 ‘찻잔 속 태풍’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대전지역 대학들 중 배재대에선 상반기 승진심사 대상자 27명 중 8명이 탈락했고, 대전대는 17명 가운데 5명, 건양대는 24명 가운데 10명이 탈락했다. 하지만 이들 대학 중 재임용 탈락자는 없었고, 한남대는 아예 승진 탈락자도 없었다.

실제 대전의 A대학은 연구업적 기준을 강화하려다 교수들의 반발로 논문 규정을 0.5편 늘리는 데 그쳤다. 이 대학 관계자는 “본부에서 교수 연구업적 기준 강화 안을 마련했으나 교수협의회의 심한 반발로 기준을 약간 올리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광주의 B대학도 지난 2006년 7월 재임용·승진심사 기준을 강화한 뒤 교수들의 불만이 많아 이를 다시 상향조정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 대학은 당시 부교수 재임용 기준(인문계)을 ‘국제학술지 2편 또는 국내학술지 6편’이상에서 ‘국제학술지 3편 또는 국내학술지 9편’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자 총장선거 등에서는 오히려 기준을 낮추겠다는 공약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동국대가 최근 강의를 맡은 교수 전체의 강의평가 점수를 공개해 대학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이도 일부 대학의 바람으로만 그치고 있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한데 이어 서울대가 올해부터 학부강의평가 결과를 일부 공개키로 한데 머물렀다.

물론 강의평가 공개 문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 평가방법이 교수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하고, 과목·학문별 특수성이 평가기준에 반영돼야 한다. 교육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런 점들만 보완하면 강의평가 공개는 “대학의 교육력을 제고하는 데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대학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두 축은 연구력과 교육력이다. 두 가지 모두 교수의 노력에 달린 문제다. 그러나 아직 국내 대학엔 연구와 강의에 소홀한 교수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국내 대학 중 연구와 교육에 헌신하는 우수한 교수는 20%에 불과하다”며 “적당히 연구하고 강의하는 표준형 교수가 45%쯤 되고, 25%는 외부활동이나 입신양명에 관심이 많은 비지니스형 교수이고, 나머지 10%는 연구도 안하고 강의도‘불량형’ 교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총선을 앞두고 문제가 된 ‘폴리페서’만 봐도 학생교육이 일부 교수들에겐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강의를 맡고서도 정당 공천을 받아 선거운동에 뛰어든 교수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학생들을 선거운동원으로 활용한 교수도 있었다.

때문에 교수들을 통제·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조우현 교수는 “교수들의 연구 활동이나 강의, 외부 활동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교수들이 마음대로 쓰는 시간만 잘 관리해도 대학의 연구력과 교육력은 일정부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교육중심·연구중심 대학’이란 개념도 오히려 대학의 교육·연구력 제고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교수가 좋은 강의를 하려면 연구 성과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라며 “교육부가 탁상공론으로 만든 교육중심대학이란 개념이 오히려 연구 성과가 미흡한 교수들에겐 면피용 도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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