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학교 비리 관련 감사 권한은 계속 유지

#1. 서울 D외고는 지난해 사설 논술 모의고사를 여러 번 치렀다. 사설학원이 출제한 논술시험을 치른 뒤 첨삭도 학원에 맡겼다. 논란이 일자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대해 감사를 실시했다. 교육인적자원부(당시)가 정한 사설 모의고사 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2. 서울 H고는 2001년 학생 일부를 상대로 합숙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실시했다. 유스호스텔을 빌려 학생과 학교 교사, 외부 강사를 투숙시키며 보충수업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00년부터 고교 보충수업을 전면 금지한 교육부 지침을 위반했다”며 교장 중징계를 해당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앞으로 이 같은 모습이 사라진다. 1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따라 학교의 자율운영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각종 규제가 사라지면 시·도 교육청과 학교장의 권한도 강화된다. 학력을 끌어올리려는 학교·지역 간 경쟁이 불붙는 것이다.

◇학생·교사의 생활이 바뀐다=학생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 일부 학교가 조금씩 등교 시간을 당기며 운영하던 0교시 수업도 일반화할 것으로 보인다.

심야 보충수업 금지도 없어져 오후 10, 11시까지 교과 수업을 듣는 풍경도 흔해질 수 있다. 밤 늦게까지 학원에 가는 학생은 줄어들 수 있지만 학생의 수업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초등학교에서도 방과 후 학교에서 정규 교과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수준별 수업도 가능해진다. 학생들은 과목별로 자신의 성적에 따라 교실을 옮겨 가며 수업을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우열반 형식으로 운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사적 문제를 다루는 특별 수업인 계기교육 수업 내용 지침, 학습 부교재 선정 지침 등도 없어져 학교별로 다양한 수업이 가능해진다.

교사들이 받는 영향도 크다. 교원에 대한 인사권이 교육감에게 전면 위임돼 교육감의 자율권이 강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대통령 권한으로 남아 있던 교장 임명권, 교과부 장관의 권한으로 돼 있던 시·도 교육청 국장급 이상 장학관, 교육장, 교육연수원장에 대한 임용권도 교육감에게 넘어간다.

◇깐깐한 지도·감독 사라진다=사설 모의고사와 보충수업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학생의 학력을 높이고자 학교들은 모의고사와 보충수업을 변칙적으로 운영해 왔다. 시·도 교육청도 지도·감독을 하기보다는 눈감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의 A중학교와 구리 B여고가 성적이 낮은 학생 등을 대상으로 방학 중 교과 심화 프로그램(특별 보충수업)을 운영하자 일부 학생이 교육청의 지도 부실을 항의하고 나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가 문제를 제기해도 학교장은 대항 논거가 없었다.

사설 모의고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도 울산시 등 전국에서 몰래 사설 모의고사를 친 일부 학교가 경고를 받았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각 교육청에 왜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도 교육감과 학교장이 재량으로 운영할 수 있다.

◇발동 걸린 무한 경쟁=16개 시·도 교육청은 최근 중1 학력평가로 지역별 성적 차이가 공개되면서 이미 각 지역에서 방과 후 학교와 보충수업을 확대하고 있다. 울산시교육청 황일수 교육국장은 “지역 학생의 학력 증진을 위해 방과 후 수업과 수준별 이동수업 방안을 논의했다”며 “학생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대구 등 입시교육에 신경쓰는 광역시들도 이번 자율화 조치를 내심 환영하고 있다.

교과부는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 방과 후 학교 운영, 학교 체육 등에 대해선 규제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교육청과 학교의 비리 문제와 관련된 감사 권한은 계속 유지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육청과 학교 정보를 공개하는 등 내부 규제 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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