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대폭 감소, 800억에서 50억까지 ‘거듭 추락’
정부 의지 있나? ‘우회로’나마 택해 예산 따낸 사실에 ‘의의’
대학들 “그래도 한다”…예산규모 관계없이 공공성 확립 추진

2021년 교육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이 확정되면서 신설로 등장한 ‘사학혁신 지원사업’도 52억5900만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선도대학 5개교를 선정해 10억씩 총 50억을 지원할 예정이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2021년 교육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이 확정되면서 신설로 등장한 ‘사학혁신 지원사업’도 52억5900만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선도대학 5개교를 선정해 10억씩 총 50억을 지원할 예정이다.(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김홍근 기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공영형 사립대가 처음으로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다만 대통령이 최초 약속한 공영형 사립대 구상의 실현은 사실상 ‘좌초 위기’나 마찬가지다. ‘사학혁신 지원사업’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사업 규모도 대폭 작아졌다. 연이은 기재부의 예산편성 거부로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어 나온 ‘궁여지책’이다.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실증연구를 진행했던 대학들은 지원규모와 관계없이 계속 공영형 사립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800억에서 50억으로 대폭 감축…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무’ 지적 =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21년 교육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이 확정됐다. 신설 사업인 ‘사학혁신 지원사업’ 예산은 52억5900만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교육부는 내년 선도대학 5개교를 선정해 10억원씩 총 50억원을 지원한다. 나머지 예산은 회계 고도화와 사업 운영비로 쓰인다. 

사학혁신 지원사업은 사실상 ‘공영형 사립대’ 사업으로 받아들여진다. 교육부가 당초 공영형 사립대 예산을 통과시키려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순조롭지 않자 명칭을 바꾸는 형태의 ‘우회로’를 개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학혁신 지원사업과 그 기초라 볼 수 있는 공영형 사립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업을 이행할 중심축은 교육부에서 대학 쪽으로 기울었다. 대학은 스스로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자체 혁신 과제를 수립해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가 이를 승인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것이 사학혁신 지원사업의 골자다. 2021년 5개교, 2022년 3개교, 2023년 2개교를 각각 선정하며, 1개교당 2년간 연 10억원의 예산이 지원될 예정이다. 

이번에 통과된 사학혁신 지원사업을 향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업비가 연 50억원 내외로 줄면서 기존에 논의됐던 계획들은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성 담보를 내세운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의 의지가 중요한 사업이지만, 예산 규모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본래 정부가 추진하던 공영형 사립대는 학교법인 이사의 절반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대신 대학 운영비의 50%를 국가가 보전하는 정책이다. 각종 회계 부정이나 사학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들이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대신 이사회 자리를 넘겨줌으로써 사학법인 이사회의 구조를 개혁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추구하도록 만들려던 방안이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교육부는 제대로 된 예산을 편성해보지도 못했다. 교육부는 2019년도 예산안 편성 단계에서 800억여 원을 요구했지만 전액 삭감됐다. 2020년도 예산안 편성에서는 금액을 대폭 줄여 87억원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기재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교육부는 2021년도 예산안에 명칭을 사학혁신 지원사업으로 바꾸고, 금액도 53억원으로 더 줄이는 안을 담았다. 해당 안은 처음으로 기재부를 통과해 예산안에 최종 반영됐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이 모습을 드러낸 지 3년만에 거둔 소기의 성과다. 금액은 대폭 삭감되고, 사업 성격에도 변화가 일부 생겼지만, 관련 예산을 처음으로 배정받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교육부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공영형 사립대 사업이 정식으로 구현되지 않은 데 가장 답답함을 느낀 건 교육부였다. 공영형 사립대가 될 시 대학 운영비의 50%를 지원한다는 것도 연구 단계에서 논의된 얘기에 불과할 뿐 사실상 교육부는 기본 계획조차 세워보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공영형 사립대가 번번이 좌초된 것은 국가가 인건비 등 대학의 운영비를 직접 지원하는 데 따른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공성 강화를 빌미로 한 ‘학교를 탈취하려 든다’는 오명도 썼다.

결국 교육부가 꺼내든 카드는 ‘사학혁신’이라는 명분이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교육 신뢰 회복을 위한 사학혁신 방안을 발표한 것과 현재의 사학혁신 지원사업은 궤를 같이 한다. ‘고등교육 공공성 및 경쟁력 강화’라는 국정과제를 그대로 이행하되 형태를 조금 바꿨을 뿐이라는 얘기다. 

기존 공영형 사립대가 ‘선지원 후변화’의 개념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에 통과된 사학혁신 지원사업은 ‘선변화 후지원’ 방식을 따른다. 변화할 의지가 있고 준비가 돼 있는 대학만 지원함으로써 일말의 시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복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영형 사립대도 결국 사학의 공공성이나 회계 투명성을 기본으로 갖고 있는 정책이었다. 사학혁신 지원사업도 기본 취지는 같다. 조금 더 구체화했다는 정도(가 차이점)”이라며 “대학 스스로 공공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자체 혁신 과제를 발굴해서 수행한다고 계획안을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공공성’ ‘민주성’ 준비 마친 대학들…금액 상관없이 “일단 추진” =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대학은 지원금이 대폭 삭감된 데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일단은 사학혁신 지원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대학은 공영형 사립대를 동기 삼아 일궈낸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위한 그간의 노력이 이미 학내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를 진행했던 상지대는 지난달 3일 민주공영대학 출범 선포식을 열었다. 민주공영대학은 이사회가 공익적 성격의 이사로 구성되고 대학 구성원 의견을 수렴해 학교를 운영하는 대학을 말한다. 명칭만 다를뿐 최초 논의됐던 공영형 사립대와 일치하는 개념이다. 

상지대 관계자는 “상지대는 사학혁신 지원사업이 요구할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내년 사업 공모가 뜨면 바로 지원할 생각”이라며 “예산이 대폭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사학혁신을 해나갈 것이기에 상관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가 재정지원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민주적이고 공익적인 성격의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상지대와 함께 공영형 사립대 실증연구를 진행한 조선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아쉬운 면은 분명 있지만 재정지원 금액과 상관없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지 방향을 맞추고 사학혁신을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상지대와 마찬가지로 대학 스스로 공공성을 확립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역민의 성금을 토대로 탄생한 대학인 조선대는 옛 경영진이 물러난 뒤 장기간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현 정이사 체제가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근 새로 정이사를 선임하면서 대학을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은 조선대는 이를 발판삼아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온 역량을 쏟아왔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공영형 사립대를 기조 삼아 대학 운영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은 실증연구를 진행한 타 대학들도 마찬가지”라며 “조선대는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데 필요로 하는 학교 자체의 노력을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 교수는 공영형 사립대가 사학혁신 지원사업으로 둔갑한 것에 대해 우려를 덧붙였다. 지 교수는 “정이사 구성, 지역사회 공헌, 등록금 인하, 개방적인 대학 운영, 지역사회 기여 등 공영형 사립대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적 금전 지원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명칭을 바꾸고 지원을 줄인 것을 보면 정부의 의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의지’만큼은 높게 샀다. 지 교수는 “정책을 아예 포기했으면 (사학혁신 재정지원) 사업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며 “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사학혁신이라는 과제를 통해 맥을 이어가려고 하는 취지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쉬움이나 우려와는 별개로 공영형 사립대의 취지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학 자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역사회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대학 스스로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성이 필요하다”며 “이번 기회에 대학교육 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보고 대학 자체도 자극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지 교수는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