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가 문을 열었다. 동일한 지역에 위치한 두 곳의 국립대인 경상대와 경남과기대가 통합하게 되면서 4개의 캠퍼스를 가진 대형 국립대가 탄생했다. 입학정원을 줄이지 않는 자율적 통합을 완수하게 되면서 정원 규모도 거점 국립대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정원을 보유하게 된다. 경상국립대 출범을 바라보며 교육부는 “국립대의 경쟁력 강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축했다.

교육부는 우리나라의 인적자원개발정책과 학술 등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국내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 역시 교육부가 총괄·조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등교육기관을 국·공립대와 사립대로 구분한다. 국·공립대는 정부가 관리·경영하는 대학을 말한다. 사립대는 민간이 설립·운영하는 대학을 가리킨다. 교육부가 관장하는 고등교육기관에 사립대가 포함되는 만큼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근래에 교육부가 발표하는 정책들은 국립대 육성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립대는 소외되고 있다.

미국의 동물 행동학자인 존 B. 칼훈은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거대한 농장에 160마리의 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210㎠ 크기의 실험장을 만들었다. 고양이와 같은 천적은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쥐들에게 충분한 음식과 물도 계속 공급했다. 이러한 유토피아에 쥐 한 쌍을 살게 했다.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번식력을 보였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 쥐들은 55일마다 2배로 수가 늘었고, 315일째에 660마리가 됐다. 그런데 이때부터 증가 속도가 확연하게 떨어지더니 결국 개체 수가 줄기 시작했다.

쥐들이 공격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공간이 부족해지고, 먹이가 줄어들자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강한 수컷 쥐들이 여러 암컷 쥐들을 거느리기 시작했고, 경쟁에서 밀려난 수컷 쥐들의 수가 점차 많아졌다. 소외된 쥐들이 공격적으로 변해 급기야 다른 쥐들을 공격하고, 작은 새끼 쥐를 물어 죽이는 일도 발생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니 암컷들은 새끼를 낳지 않았다. 수컷들도 짝짓기에 관심을 잃고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빠져 생식 활동을 중단했다. 한 때 유토피아였던 쥐 사회는 이렇듯 무너져 내렸고 실험 공간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존 B. 칼훈의 쥐 실험은 현재 우리 고등교육 사회에 큰 힌트를 던져준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먹이를 제공해 주더라도 한 가지 특정 계층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구조가 계속되면, 그 사회는 자멸하고 마는 것이다.

교육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점 국립대를 육성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금은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 거점 국립대만 배불리게 하는 정책보다 사립대에게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대학 교육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책무를 대신해 전체 85%가 사립대일 정도로, 대부분을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약 28.7%는 대학설립준칙주의이 도입된 이후에 설립된 셈인데, 국·공립대가 1945년 19개교에서 2020년 54개교로 35개교가 증가할 동안 사립대는 10개교에서 285개교로 무려 2750%인 275개교나 늘었다.

정부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해 사립대를 대폭 증설하면서 당시 급한 불이었던 대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을 사립대에 의존하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가 이제는 사립대만 나몰라라 하는 기이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정부는 사립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좋은 핑계거리로 삼아, 등록금 인상이나 정부 재정지원 요구를 공론화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 사이 교육재정 악화 수준이 심각 단계에 이르렀고, 사립대 교육의 질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유토피아였던 우리나라 고등교육 사회가 지옥으로 변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우리나라에 대학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말로 대학 구조개혁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함과 동시에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국립대는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립대가 넘쳐난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야기된 대학 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학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국내 고등교육의 붕괴를 막기 위해 국립대 육성책 만이 능사가 아니다. 상생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사립대 육성책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사립대 혁신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립대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학령인구 감소와 이에 상응한 대학 구조개혁 정책 방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존 B. 칼훈의 쥐 실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동반성장과 상생, 연대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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