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희 유한대 산학취업처·단 팀장

정원희 유한대 산학취업처·단 팀장
정원희 유한대 산학취업처·단 팀장

‘금요일이니깐 피맥이다’라고 생각했던 박비기(begin)는 잠시 가벼워진 지갑을 생각했다. 코로나19로 휴직을 한 지 벌써 다섯 달이 된다. 한 달만 쉬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호기롭게 나온 회사였지만 결국 휴직기간은 3개월, 그리고 6개월로 연장됐다. 소득은 절반 이상 줄었고 그만큼 어깨도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그는 가족들의 유일한 즐거움인 ‘피맥 프라이데이’를 오늘만큼은 꼭 성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은 평소 자주 시켜먹던 피자가게로 전화했다. 주문 앱을 통하지 않고 지역번호가 찍힌 가게 전화로 직접 연락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 냉장고 문짝에 미리 모아둔 1000원짜리 쿠폰 7장이 보였다. 박은 주문을 마치고 ‘아는 것을 실행했다’는 사실과 지혜로운 인간이 됐다는 생각으로 뿌듯해 하며 피맥과 함께할 무료영화를 또올레TV에서 골랐다.

“안녕하세요. 저세상편한아파트 7동 7호인데요. 고르곤 졸라 맛있는 패밀리세트 하나랑 수제맥주 라지 하나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도착하는 시간까지 37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그리고 할인 쿠폰 일곱 장 있는데요.”

“네. 그럼 7000원 할인해 2만 원만 주시면 됩니다.”

“아, 예. 그리고 일회용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왠지 들떠있는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일까 정어개(again)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화덕오븐 알람 소리에 정신을 뺏겼다.

정이 피자집을 연 것은 약 7개월 전의 일이다. 그는 수도권 전철역 근처에 있는 대학교 교직원이었다. 한때 촉망받던 인재로 부서장까지 꿈꿨던 그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신입생 미충원, 늘어나는 재학생 중도 탈락, 고질적인 재정 불안 등으로 대학 사정이 어려워지자 교직원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던 정과 같은 교직원들을 학교는 짐으로 바라봤다.

정은 눈치가 빨랐다. 대학이 주는 명예퇴직금이라도 챙기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몸과 영혼을 바친 대학을 떠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내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낸 대학이 불편해지면서 나는 누구인가란 자신의 존재 가치에 골몰했다.

수많은 생각,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 뚜렷하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방황했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브랜드별로 피자 맛을 평가하고 구분할 줄 아는 피자마니아 정은 피자와 맥주를 자주 찾았다. 가족들이 모두 잘 때 방에서 혼자 먹고 마시거나 아무도 없는 가게에 슬쩍 들어가 서둘러 먹고 나오기도 했다. 피자마니아로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피자를 더욱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어느날 갑자기 정은 요리전문가 백희로(hero)가 TV에서 만든 피자를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라며 머리를 쳤다.

그는 곧바로 백희로레시피에 자신이 생각했던 비밀 소스를 곁들여 피자를 만들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작품(work)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르곤 졸라 맛있는 피자’라고 이름지었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깃발을 꽂듯이 정은 두툼한 피자 토핑 옆구리 포크를 꾸욱 꽂아두고 스마트폰을 켜서 남은 인생 목표를 적었다.

‘퇴직 후 피자집 오픈.’

인생목표 달성, 전문성 지속 보장, 퇴직 인생 보장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정은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고르곤 졸라 맛있는 피자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떠나지 않는 허전한 생각은 왜 드는 것일까.

‘사무실 안 컴퓨터, 고요한 실내,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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