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전북대 총장은 지역 대학으로서의 거점국립대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되고 그게 세계적인 것이 된다. 거점국립대는 국가균형발전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거점국립대는 서울 어느 대학 못지않은 연구역량을 가진 국가거점대학이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김동원 전북대 총장은 지역 대학으로서의 거점국립대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되고 그게 세계적인 것이 된다. 거점국립대는 국가균형발전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거점국립대는 서울 어느 대학 못지않은 연구역량을 가진 국가거점대학이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본질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의욕을 내다보면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욕심을 부리게 돼 산만하게 일을 벌이기 십상이다. 인간이란 무릇 흔들리며 살 수밖에 없지만 길을 잃은 선장은 모두를 좌초시킬 수 있기에 리더에겐 흔들림이 허용될 수 없다. 오랜 시간 다져온 우직한 신념의 터에서 한 길을 걷고 있는 김동원 전북대 총장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대학은 지역혁신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김 총장은 이를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몸소 보여주고 있다. 1988년 대학에 부임해 20여 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거점국립대 네트워크를 추진하며 국립대 최초로 학연교수제를 도입하기까지의 모든 배경에 이 철학이 깔려 있다. 임기 절반을 돈 김 총장의 남은 임기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그의 목표가 너무나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잘 둔 한 수 한 수가 모인, 일류 바둑기사의 기보를 들여다보듯 김 총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리나라 대학은 사회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 왔다. 대학은 사회를 철학적으로 이끌어가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대학들이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곳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다.
“현재 대학이 놓인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두 역할을 모두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요구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뿌리를 잊을 수도 없다. 대학의 기본적인 사명을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사회의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게 시대 흐름인 것 같다. 나 또한 그 부분에서 과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대학이 지역사회 혁신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거점국립대는 대학교육을 선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거점국립대의 경우 지역의 대학인가, 국가의 대학인가 하는 정체성이 갈릴 수 있다.
“두 기능이 모두 있지만 우선되는 것은 지역 대학으로서의 역할이다. 지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되고 그게 세계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거점국립대는 국가균형발전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거점국립대는 서울 어느 대학 못지않은 연구역량을 가진 국가거점대학이기도 해야 한다.”

- 국립대 중에서는 처음으로 ‘학연교수제’를 도입하는 등 연구 역량 강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연구인력과 기술을 교류하고 공동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하기로 했다. KIST의 전문 연구자가 우리 대학 학연교수가 돼서 복합소재 분야의 공동융합 연구팀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이전에 KIST는 고려대, 경희대와도 학연교수제를 했지만 사립대와 달리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이라 학연교수 발령이 쉽지 않았다. 공무원으로 다시 채용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겸임교수로 발령하는 방안을 떠올리고 이것이 추진된 것이다. 두 기관의 연구 역량을 결합하면 큰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연구기관과 학연교수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 대학의 연구 역량을 활용해 지역의 산학협력 플랫폼으로 도약하고 있다.
“현재 전북의 인구 이탈 상황을 지켜보고 결국 공부하고 나서 갈 곳이 없어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역에 인재를 담을 그릇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이 할 일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강소기업과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세계 일류기술을 만들어 기업에 전달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는 연구 인력도 부족하고 방향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원활한 산학협력을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 내에 리서치파크가 구성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 학생, 기업이 매일 붙어서 연구해야 한다. 독일의 연구기관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좋은 예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산학연 커플링이 아주 촘촘하게 이뤄져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학도 국가 예산과 지자체 예산 등 270억 원을 확보해 ‘산학융합플라자’를 만들고 있다. 산학융합플라자는 대학 연구진과 학생, 기업, 연구소, 지자체, 공공기관이 함께 모여 지역혁신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지역혁신 플랫폼이 될 것이다. 캠퍼스 혁신파크사업에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 지역혁신을 위해서는 결국 우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그렇다. 일류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다. 교수 연구도 중요하지만 학생 교육에 신경 쓸 때가 왔다. 지금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하기 능력, 쓰기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후에는 회사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브리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제도권 교육은 문제를 맞추는 교육 위주로 이뤄져 왔다. 그래서 교수들에게도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과 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해달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수 교수를 포상할 때 논문연구를 많이 한 교수뿐 아니라 잘 가르치는 교수도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

지난번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수한 강의 콘텐츠를 만든 교수를 포상해 격려했다. 앞으로는 말하기‧쓰기 능력과 같은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베스트 티처를 포상하려고 한다.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양교육과정도 개편했다.

사실 어떻게 하면 지역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뛰어난 인재를 만들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그래서 평교수였던 2012년부터 지역의 우수한 고등학생들을 매년 50명씩 선발해 지역의 ‘종자 인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지속해왔다. 특히 의대가 아닌 공대로 진학할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대학에서 가장 연구를 많이 하는 실험실 10곳에 학생들을 투입시켜 연구를 해보게 하고 해외의 선진 연구 기관도 다녔다. MIT, 스탠퍼드, 하버드, 막스플랑크, 아헨공대, 베를린공대를 다니며 실험실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그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지역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총장이 된 이후에는 다른 교수를 통해 여전히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북대 심천학당 앞에서 최용섭 본지 발행인(좌)과 김동원 총장이 환담하고 있다. 심천학당은 심천 이강오 선생의 후손들이 후원금을 모아 2018년 건립된 좌식 강의실이다.
​전북대 심천학당 앞에서 최용섭 본지 발행인(좌)과 김동원 총장이 환담하고 있다. 심천학당은 심천 이강오 선생의 후손들이 후원금을 모아 2018년 건립된 한옥 좌식강의실이다.

- 교양교육과정을 개편할 때 역점에 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IoT와 인공지능 등 새로 나타난 신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저변에는 그에 맞는 사고력이 필요하다. 곧 컴퓨팅 사고력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통계적 사고, 비판적 사고력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이 사고능력을 키우는 수업 3가지 중 하나를 필수적으로 듣도록 했다. 인문계 학생들을 위해 코딩 교육과정도 개설했다. 반대로 철학이 없고 상식적인 수준의 교양과목은 일반선택 교과목으로 돌렸다. 철학적 담론을 담은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해야지, 학생에게 인기 있는 교양만 중심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거점국립대 간 학사교류 시스템 구축에도 총장이 앞장섰다.
“현재 서울대를 포함해 10개 거점국립대가 국립대 네트워크에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주장해서 10월에 협약이 맺어졌고 올해 시작돼 현재 각 대학당 10명씩 총 100명의 국립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별로 운영되던 학사업무의 경계를 허물어 교육과정 교류, 학점 교류, 학생 공동선발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부산에 사는 전북대생은 부산대에서, 전주에 사는 부산대생은 전북대에서 수업을 듣고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거점국립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앞으로는 참여 학생 수를 더 늘리고 교수 교류도 활성화하려고 한다.”

- 구상이 좋은데 어떤 효과가 있나.
“이렇게 학생들이 여러 대학의 수업을 듣게 되면 두 가지 큰 장점이 있다. 하나는 교류 대학 교수들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이 함께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대학의 교수가 한 강의를 하는 점에서 팀 티칭의 성격을 갖는다. 팀 티칭은 내 강의를 다른 교수도 봐야 하기에 더욱 강의 구성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강의를 나눠서 하니 물리적 부담은 줄어들고 강의의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게 된 점도 있다. 실제로 국립대간 학사교류 이후 강의의 내용이 더 풍성해졌다.

또 하나는 학생들이 이동하며 공부하는 경험, ‘모빌리티(mobility)’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교육에서 이 모빌리티 개념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학생 교류, 학생 이동이 그것이다. 학생들이 필요하면 어디든 찾아가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대학에 입학해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 스스로 뭘 해야 할지 찾아내고 그를 위해 어떤 사람과 교류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과 교류하려면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체득하게 된다. 그러한 ‘모빌리티 경험’을 통해 도전의식과 창의적 생각이 발현된다.”

- 아시아대학교육연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역대학생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물어보니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와 어학능력을 기르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해외에서 어학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비교적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영어권 국가로 대학에 학생들을 보내서 한 학기에서 두 학기 정도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첫 해 참여한 학생들을 따라가보니 정말 좋아하더라. 공부하는 곳에서 유명 관광지가 50분 거리로 멀지 않은데도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 가봤다고 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다. 또한 현지 대학에서 우수한 신입생을 우리 대학으로 데려와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가며 아시아 대학들과 교류를 지속하게 됐다.”

- 대학이 지역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은.
“지역 내 기관들사이 수평적 소통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중앙정부가 사실상 지방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구조다. 전라북도는 행정안전부 관련 기관이고 대학은 교육부 관련 기관이어서 각각 관련 중앙부처와 수직적 소통을 중시한다. 그러나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중앙부처의 관련 기관이라도 수평적으로 밀접한 교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지역 내 기관 간의 수평적 교류는 원활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지역 기관끼리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공무원들 전반적으로 대학이 성공해야 지역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의식전환이 이뤄졌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이 발전해 대학이 가진 역량이 지역기업에서 쓰임을 받고 창업으로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기업이 나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자체에서 대학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 역할의 기관으로만 여겨왔다. 그게 아니라 지역 정책의 첫 그림을 그릴 때부터 지역 대학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지역이 하는 사업을 대학과 함께 고민하고 지자체가 어떻게 대학을 도울 것인지 논의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남은 임기 동안에는 캠퍼스 혁신파크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산학융합플라자가 제대로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다할 것이다. 구체적인 제도와 협력체계,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등 체제 정비를 할 계획이다. 여기서 하나 더 한다면,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학생을 데리고 많은 기업을 다녀보려고 한다. 기업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학생들의 눈을 띄워주고 대학은 어떻게 맞춤 교육, 연구를 할 것인지 학내에서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다. 은퇴 후에는 전라북도에서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다. 제자들이 같이 사업을 하자는 이야기를 해온다. 내가 가진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지역사회의 협력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지역에서 뿌려놓은 씨앗인 제자들이 돌아올 때가 되면 이들을 잡아서 지역사회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김동원 총장(좌)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이 전북대 한옥 정문 2층에 올라 환담하고 있다.
대학 랜드마크로 규모에서 압도하는 전북대 한옥 정문 2층에 올라 정문을 소개하고 있는 김동원 총장(좌)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

■김동원 총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학석사학위, 일본 북해도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전북대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전북대에서 산학협력단 단장, 공과대학 학장, 산업기술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1월 전북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담= 최용섭 발행인 / 정리= 허지은 기자 / 사진= 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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