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지계(萬年之計).

아주 먼 훗날까지를 미리 내다본 계획이라는 뜻이다. 당장에 필요한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오랫동안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교육이나 환경정책 같은 비교적 큰 사안에서 먼 훗날까지 고려해 세우는 계획이다.

교육부가 바로 만년지계를 세우는 곳이다. 교육은 오랜 계획을 세워두고 정진해야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올 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수정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또 고등사학의 비리가 알려져도 공익 신고자 개인 정보 유출로 ‘교피아’를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계속되는 헛발질은 무릇 사람들의 고정관념만 키운다. 급변하는 환경에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사학의 계획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게을리 한다면 부처 자체의 존속성에 대한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교육부가 대학들의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3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를 통해 재정지원을 지속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변화된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는 정책 밀어붙이기로 대학을 압박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받게 된다.

또한 이미 재정지원제한대학을 발표하면서 대학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이 또한 변화한 환경은 무시한 채 기존의 기준을 바꾸지 않아 피해를 보는 대학들이 있다. 누가 봐도 납득이 안 되는 기준임에도 굳이 점수로 따지자면 0.1점 차이로 재정지원을 제한한다면 대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배우고자 입학한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도 받지 못하는 등 결국 피해만 떠안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개(犬)를 키운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선입견과 편견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환경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대학들에 채찍질만 가하고 있는 형국은 선입견만 가중시킬 뿐이다. 게다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느끼는 교육부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어 걱정이다.

대학들은 강물이 바닷물로 변해 이제는 민물고기가 아닌 바닷물고기를 키우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도 민물고기를 키우라고 강요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오히려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들에 도움을 지원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조타수의 역할을 해야 할 교육부가 판단을 잘못 한다면 그 배는 표류할 수 밖에 없다.

교육부가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는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에포케(epoche)’다. 그리스 회의론자(懷疑論者)들은 인간의 인식은 주관적이어서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환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것에도 가장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에포케, ‘판단중지(判斷中止)’다.

이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따른 대학들의 최후의 생존을 위해 잠시 판단을 중지하는 것일 뿐이다.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비대면 시스템도 대학들은 재빠르게 대응하고 꾸역꾸역 1년 이상을 버텨오며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서로가 경쟁 관계라고만 생각했던 대학들이 뭉치는 것도 한 방법임을 알고 합종연횡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벼랑끝전술’이라고 해도 대학들이 이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은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주는’ 교육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밑바탕에서 통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공개된 데이터를 통해 부실 대학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곳을 제외하고 스스로 격변을 이겨내려는 대학들에 대해 모든 평가를 잠시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의 재정을 대학들에 지원하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특히 생존을 위한 효과를 봤던 방법들이 있다면 ‘너희들도 해보라’는 식으로 재정을 지원해 옆구리를 슬쩍 찔러주는 ‘넛지(nudge) 효과’도 발휘해야 한다.

오랜 기간 자성을 끝내고 스스로 혁신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대학들에 비수를 꽂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로소 교육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확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교육부의 가장 자랑스러운 판단으로 기록될 것임은 자명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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