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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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서울대가 2023학년도 정시에서 교과성적을 반영한다고 밝혔지만 판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교과 성적이 반영된다 하더라도 수능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24학년도에도 이와 같은 정시 전형 방법이 다른 대학으로 파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어 향후 서울 주요대학의 입학전형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전국 대학의 2023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이 발표된 가운데 서울대가 정시모집에서 교과 평가를 반영하겠다고 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는 1단계 수능 100%, 2단계 성적 80점과 교과평가 20점으로 선발하며 지역균형전형에서는 수능 60점과 교과평가 40점으로 선발하게 된다.

서울대는 또한 정시모집 교과평가의 기준을 A, B, C등급으로 나눈다. 모집단위 학문 분야 관련 교과(목)을 적극적으로 선택해 이수하고 전 교과 성취도가 우수하며 교과별 수업에서 주도적 학업태도가 나타난 경우 A를 준다. 일반적인 수준의 성취도와 학업 수행 능력을 보여준 경우는 B, 교과 성취도와 교과 이수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C등급을 매긴다.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되자 서울대가 ‘수능 위주 전형 40%’라는 교육부 정책을 따르는 동시에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방안을 낸 것이라는 분석이 따르고 있다. 쉽게 말해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보다 학교생활 성취도 역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서울대의 의도가 짙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서울대가 상위권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을 미흡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인을 준 것”이라며 “서울대가 2022학년도에 비해 10% 가량 수능위주 전형 선발 인원을 늘리면서 몇 가지 부작용을 생각했을 것이다. 수능 위주로 선발하게 되면 수험생들이 학생부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해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라는 지침을 적어도 서울대를 지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전달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관계자는 “선발 공정성 차원에서도 학생의 교육 환경과 교과 성취도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면서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게 됐는데 이 점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학생 선발에 있어 여러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고교 현장에서도 서울대의 조치가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환영하는 모습이다. 최진규 서령고 교사는 “고교학점제 하에서 수능이 확대되는 방향성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인데 서울대가 고교학점제라는 교육과정 변화를 입시에 반영하려는 모습으로 해석된다”며 “서울대의 선제적 조치가 현장 교육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려는 의도가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앞두고 학생 간 유‧불리 문제가 대두된 상황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이유로 강조된 수능성적 역시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등학교 현직 교사 A씨는 “특히나 수능이 선택형 수능으로 바뀐 상황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교과 전형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며 “단순히 수능 성적만을 맹신해 수능 위주로만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학생 계열별 유‧불리 문제도 거론되는 상황에서 합당하지 않다. 학생별 유‧불리 격차를 줄이고 미래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상황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서울대의 정시 교과평가 반영으로 수능 영향력이 희석된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는 선발 과정에서 학생부를 평가하더라도 수능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2023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에서도 여전히 수능이 매우 중요하다. 교과평가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지는 않다”며 “서울대에 지원할만큼 수능에서 높은 성적을 보인 학생들이 교과평가에서 B등급이나 C등급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교과평가가 큰 변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낮다. 동점자나 아주 미세한 차이의 학생들 가운데서만 교과평가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 평가이사 역시 “실제로 교과평가로 인해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는 학교 생활이 미흡했거나 학교 내신 성적이 지나치게 낮으면서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들로 그런 학생은 열에 하나나 둘 정도로 적을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성취하고 상위권 성적을 낸 학생이라면 B, C등급을 받을 일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시에서 교과평가를 반영하는 전형은 당분간 서울대만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소재 대학 입학 업무 담당자는 물론 전문가들 역시 서울대의 조치로 다른 대학들이 정시에서 교과평가를 반영하는 유사한 전형 운영을 할 것인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김범식 서울경인입학관리자협의회 회장은 “서울대가 새로운 정시 전형 방법을 발표했으니 대학들마다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직접적인 교육부 지침이 있지 않은 한 보수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순히 서울대의 변화 하나만으로 전형방법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다.

이와 관련해 한 서울 소재 대학 입학 업무 관계자는 “서울대처럼 복잡한 정시전형을 운영하는 게 다른 대학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을 선발하는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절차이기 때문”이라며 “수능 100% 전형은 수능 성적을 가지고 오류가 있는지만 잡으면 되지만 학생부를 평가하려면 학생부도 수신해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정시는 특히 가‧나‧다군이 나뉘어 있어 시간이 촉박한 전형도 있다”고 도입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오 평가이사는 2023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 결과가 이미 대학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을 보여준 결과라며 흔히 말하는 ‘상위권 대학’들이 앞으로도 서울대와 같은 정시 전형을 운영할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연세대나 고려대가 서울대의 정시 전형 방법을 따라가려 했다면 이번(2023학년도 입시)에도 가능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오겠다는 것을 굳이 마다하면서까지 따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부 다른 의견도 있다. 이 연구소장은 “연세대와 달리 고려대는 역대 서울대의 입시 전형 방침을 따라갔던 적이 있었다. 지금쯤 고려대 내부에선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외 대학들까지 서울대의 추세를 따를 것이라고 보기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또한 오 평가이사는 서울대는 2024학년에도 2023학년도의 정시 전형을 유지할 것이라 내다봤다. 정시 40%를 유지하라는 정부 기조가 유지되는 한 정시 전형에서 학생부를 평가 요소로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다. 결국 정시에서 학생부를 평가하는 방식이 서울대만의 특징적 요소로 자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교 현장의 입시지도에 미치는 영향력도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최 교사는 “일반고에서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은 한 학교 당 평균 2~3명 정도다. 그 학생들만을 위해 학교 전체가 교육과정을 맞춰서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서울대의 뒤를 이어 학생의 선호가 높은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이 앞으로 서울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형을 운영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재처럼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이 서울대와 같은 정시 전형 방법을 운영할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는 상황에서는 고교 입시지도 역시 교과평가를 반영하는 정시 전형에 맞춰 이뤄지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학생들 선호가 비교적 낮은 수도권 대학들이나 지방대에서는 오히려 수시 영향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최 교사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 선호가 낮은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경우 수시에서 더 많은 학생을 뽑으려고 할 것”이라며 “전형 방법도 단순하게 운영해 학생들이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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