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민 한성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학연이 중요시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정말 중대한 관심사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유난히 투명성을 강조한다. 수년 전에 입시 전산 감사를 하면서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대입 수험생의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을 각각 CD로 만들어 배포했다.

수십만명의 수험생 정보를 단 두 장의 CD에 담아 낼 수 있으니 우리나라는 정말 IT선진국인가보다. 당시 교육부에서 배포한 CD 두 장을 사용하면 지원자의 성적 및 내신 데이터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사용해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합격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대학의 입시 부정이 의심스럽다면, 지원자 명단과 CD를 검색하면 부정 여부를 간단히 검증할 수도 있었다.

물론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험생이 어느 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학문적·예술적 가능성은 성적만을 가지고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20세기 대표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수학·물리학 성적만으로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빼어난 수학·물리학 성적만을 가지고 그의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었던 당시 유럽의 입학 제도가 부럽다. 만일 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물리학을 전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 우리의 과학문명의 진보는 많이 뒤졌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 머무르면서, 대학 입학 사정 절차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입학 심사를 전담하는 교수가 내정되어 있으며, SAT 성적과 고교 내신성적뿐 아니라 다양한 선발 기준을 적용했다. 다소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추천서나 고교시절 봉사활동 및 학업계획서 등으로 입학기회를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입학 허가 인원 또한 융통성이 있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입학보다 매우 쉽다는 느낌을 주었다.

손쉽게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서 졸업까지 쉽지는 않다. 애리조나주립대의 경우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 비율이 20~30% 정도라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게다가 학과 선택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자유롭게 전과하기도 하고, 성적이 기준에 미달한 학생은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도 한다. 커뮤니티컬리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다시 좋은 학교로 전학한다. 이러한 대학·학과 간 자유스러운 이동이 미국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대학은 어렵게 입학하는 대신 어렵지 않게 졸업할 수 있고, 평생 그 대학 졸업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공에 물분하고 국어·영어·수학을 잘해야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모든 지원자를 점수로 계량화하면 학생선발이 간편하고 명확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 다양해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영·수 점수로 한 한생의 모든 가능성과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안타깝다.

등록금을 수입원으로 하는 우리의 사립대학에서는 교과부가 허가한 입학정원을 중도 탈락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의 숨은 능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대학 입학뿐 아니라 졸업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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