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중 차병원그룹 미래전략위원회장과 본지 이인원 회장이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한명섭 기자)
김한중 차병원그룹 미래전략위원회장과 본지 이인원 회장이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교육계에서 지금처럼 보건 이슈가 핵심 의제인 적이 있었을까. 최근 한국 교육계는 코로나19로 전대미문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은 4차 산업혁명과 학령인구 감소라는 또 다른 굵직한 의제와도 다투고 있다. 때마침 한국 의료계와 교육계의 큰 별, 김한중 차병원그룹 미래전략위원회 회장과의 대담이 성사됐다.

의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대학 내 주요 보직을 거쳐 총장까지 역임한 바 있는 그는 의료보건 분야 교육·연구와 대학 경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대통령자문 의료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 세계보건기구(WHO) 단기자문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미래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와 학계는 물론 국제기구 등 다방면에서 의료 발전을 위해 활동해왔다. 그가 보건 분야 교육·연구와 대학 경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는 2011년 김 회장에게 명예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차병원그룹이라는 헬스케어 기업이자 의료기관에 몸담고 있는 김 회장은 동시에 차의과대라는 고등교육기관의 이사로도 있으면서 대학 발전에 여전히 공로를 세우고 있다. 또 연세대와 차의과대에 꾸준히 기부를 하면서 현재까지 두 대학에 기부한 금액이 각각 1억 원이 넘는다. 차의과대 ‘엔젤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일평생을 한국 의료 발전과 인재 양성에 투신해 온 김 회장을 만나 한국 의료와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한 소신을 들어 봤다. 김 회장은 한국 의료 수준과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간섭 없는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비대면 원격 화상 인터뷰로 진행됐다.

- 1948년생이다. 여전히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귀감이 된다.
“어떻게 보면 하던 일을 놓아야 할 때이지만 우리 세대는 신세대와 달리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다. 그 사명을 위해 아직 현직에 있는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뭔가를 바꾸려고 했다. 주임교수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의대의 주임교수제를 폐지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켜야 할 가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라와 공동체다. 세월이 흐르며 목표가 바뀌었다.”

-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교통이 발달해 인구의 이동이 더 쉬워지고 빨라지면서 감염병 유행이 팬데믹 수준으로 진행됐다.
“20년, 30년 전부터 감염병의 시대가 다시 온다, 바이러스 폭풍이 온다는 예측들이 있었다. 세계화로 인구 이동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세계적 유행을 한 감염병이었던 스페인 독감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되는 데 2년 정도가 걸렸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이보다 훨씬 빨랐다.”

-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현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 보는지.
“백신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맞는지에 따라 코로나19 극복에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고무적인 것은 국내 백신 접종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백신 확보도 늦고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지금은 하루에도 100만 명 정도가 접종을 하고 있다. 백신 공급이 원활하기만 하다면 11월 말에는 2차 접종까지 완료한 국민이 70% 정도 될 것이다. 집단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상황은 상당히 안정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팬데믹이 어떻게 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그간 코로나19 방역이 잘 됐다고 했던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흔히 개발도상국가로 분류되는 곳에서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국내 상황과는 별개로 팬데믹은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지나친 공포와 대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매년 접종하는 독감 백신 역시 부작용은 있다.”

- 차병원그룹은 어떤 미래 전략을 그리고 있나.
“차병원그룹의 가장 큰 목표는 바이오산업에 기여하는 것이다. 차병원그룹은 의료 헬스케어의 세계화를 꿈꾼다. 차병원은 한국 병원 중에서는 LA에 유일하게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가진 곳이다. 산학협력을 통해 바이오산업 성장을 가속화하고 의료 헬스케어 분야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모든 산업분야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는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물론 복제약 제조 부분에서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가 제조업에 강점을 보여 온 것을 잘 활용한 사례다. 신약개발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 취약하다. 하지만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유망 벤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글로벌 제약회사와 경쟁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김한중 차병원 미래전략위원회장
김한중 차병원그룹 미래전략위원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 한국의 보건의료기술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나. 또한 한국 보건의료계가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임상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새로운 장비의 도입과 기술의 확산 측면에서 그렇다. 의료보장체계 역시 최고 수준이다. 다만 신약 개발, 원천기술을 만드는 바이오 분야 R&D 수준은 아직 선진국과 차이가 있다. 임상은 투자만 있으면 빨리 성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R&D는 굉장한 인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보니 이런 차이가 있는 듯하다.”

- 한국에서도 의료 분야에서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도입하고 있고 원격의료 개념이나 공유경제, 스마트 병원 등도 논의되고 있다.
“그 방향성은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의료계의 AI 활용은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상의학분야나 진료기록부를 음성으로 만드는 데도 쓰이고 있다. 다만 이는 IT기술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의료 현장과 제도들은 느리다. 저항이 있어서라기보다 항상 기술의 진보와 적용은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의료인력 수급이 어려워 그 대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의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자 반대하는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의료인력 수급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다. 지금도 의료현장에서는 과에 따라 의사를 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 의료인의 과잉이나 부족이냐로 계산하면 답을 찾기 힘들다. 의과대학 신설이나 학생 정원을 늘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투자가 많이 필요한 의대를 신설하는 방법보다는 30명 또는 40명 정원을 가진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다. 또 하나는 정년이 지난 의료인에 대한 활용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정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 있다. 나 역시 73세임에도 현직에 있고 내 동급생도 상당수가 일을 하고 있다. 한 가지 대안만 생각할 게 아니라 여러 시각에서 방안을 고민할 문제다.”

- 연구 인력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주요 자원이다. 국내 연구 인력을 제대로 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좋은 연구자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건 결국 좋은 연구자를 얼마나 대우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좋은 연구자란 대학에서는 좋은 교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 교수 대우 수준으로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학자를 데려올 수가 없다. 이런 세계 석학들은 보수뿐 아니라 연구 환경을 중요시한다. 함께 일할 인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가다. 그러려면 우수한 대학원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다 재정과 직결되는 문제다. 재정을 확보하려면 규제가 따라 들어온다. 재정 확보의 필요성과 규제로 인한 간섭이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수한 연구 인력을 양성할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간섭 없는 재정지원이 돼야 한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6년간 하면서 크게 느낀 것이 있다. 삼성전자가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수 조 규모의 재단을 만들었다.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 이처럼 ‘평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특히 R&D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분야이기에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바 있다. 한국 고등교육의 현 주소를 진단한다면.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측면에서 교육과 의료가 상당히 유사하다. 총장 재임 시절이 막 반값등록금이 이슈화 됐을 때였다. 보수정권에서 먼저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13년동안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됐다. 물론 물가인상률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올릴 수 있게 돼 있지만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의 학생은 국가장학금 지원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규제하고 있다. 재정지원을 받아야 하니 규제를 적용받으면 대학이 자체적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여지가 사라진다. 재정지원의 조건으로 내건 규제가 대학을 평균화한다. 그러나 평균화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교육의 미래는 없다. 고교 평준화, 대학 평준화를 많이들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서서히, 모두가 망하자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나라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 세계대학순위에도 30위권 내 한국 대학이 하나도 없지 않나.”

- 간섭 없는 재정지원이 필요하지만 이게 참 어렵다.
“총장을 하면서 굉장히 비난받았던 것이 연세대는 적립금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학이 적립금이 많으면 나쁘다고들 말한다. 사실은 조금 다르다. 적립금으로 학생들 장학금도 주고 연구비도 지원한다. 또한 미래에 이런 지출이 있을 것을 우려해 대학이 대비하는 것이다. 세계 명문대도 사실 다 그런 ‘부자대학’이다. 기금이 많은 대학이라는 것이다.”

- 소아마비, 결핵 퇴치에 앞장선 의료인인 故이종욱 박사를 WHO 사무총장에 밀어올리는 데 힘을 보탠 것으로 안다.
“이종욱 박사와는 WHO 서태평양 본부 주재하셨을 때부터 인연을 쌓았다. WHO 사무총장이 되시기까지 사연이 깊다. 사무총장에 출마하려면 우리나라 정부의 추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여수 해양엑스포를 유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WHO 사무총장 선출까지 추진하면 외교력이 분산될 것을 우려해서 WHO 사무총장 선출 건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이종욱 박사가 밤만 되면 내게 전화를 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셨다. 결국은 정부 추천을 받아냈다. 그래서 WHO 사무총장 후보 등록 마지막 날 마감 5분전에 겨우 후보 등록을 마쳤다.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날, 다른 후보들이 차례로 낙마하고 이종욱 박사와 벨기에 출신 후보 둘이 남았다. 32명의 WHO의 이사들의 표가 정확히 16대 16, 절반으로 갈렸다. 7차례 걸친 투표가 진행됐다. 결국 17대 15로 이종욱 박사가 선출됐다. 그 날 저녁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당시 이종욱 박사께서 본인의 이름으로 내 호텔방을 예약해 두셨었다. 그런데 방 주인이 다른 사람인 것을 모르고 이종욱 박사를 위한 큰 축하케이크가 들어왔었다. 많은 공헌을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사무총장 재임 중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최초 국제기구 사무총장이라는 정말 큰일을 해낸 분이었다.”

이인원 본지 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이인원 본지 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 지난해 일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일가재단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일가재단의 ‘일가(一家)’는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신 김용기 장로의 호다.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만드는 걸 원하셨기에 이런 호를 쓰셨다. 김용기 장로께서 소천하신 이후에도 자녀분들이 여전히 농군학교와 추모사업 등을 통해 일가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일가상이 제정됐는데 내가 일가상 심사위원을 5년간 했다.”

- 재단을 운영하려면 자금도 많이 필요할텐데.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주고 있다. 연세대 후배 교수들도 많이들 동참했다. 1000만 원씩 기부한 이들이 몇 명씩 나왔다. 그래서 지난해는 손실 없이 넘어왔다. 앞으로는 소액기부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일가의 정신을 알리고 그 뜻에 동참할 소액기부자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유튜브로 일가상을 받은 이들, 철학이 있는 농부의 이야기, 이웃을 도운 이야기, 꿈을 갖고 노력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15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고 있다.”

- 회장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한 가지 재미있는 이력이 눈에 띈다. 1994년 연세대 농구부장을 지낸 이력이다.
“한참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로 농구 붐이 일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 프로 농구가 출범하기 전이다. 실업팀과 대학팀 13팀이 일년에 한 번씩 대통령배 농구대잔치를 했는데 그게 큰 인기를 끌었다. 요새는 프로야구가 큰 인기를 끌지만 그 때에는 농구가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빠부대를 출현시켰다. 연세대 농구부가 13경기를 무패로 내리 승리하면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됐다. 나는 농구부원은 아니었지만 농구를 포함해 여러 운동을 좋아했다. 농구부장을 하면서 농구후원회를 만들어서 1년에 2억 원 가량의 돈을 모으기도 했다. 학생들 전지훈련도 가야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을 데려와야 하는 데 쓰기 위해서였다. 또 학생들이 경기하다 다치면 내가 세브란스 병원 특실에 입원시켜주면서 관리했던 기억도 난다. 농구부 부흥 역시 재정지원과 후원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농구부장을 했던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밌던 시절이었다.”

-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조언 부탁드린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 나는 ‘꼰대’일 수 있어서 꼰대가 하는 말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청년들의 모습이 이해가 많이 된다. 반대로 젊은 친구들도 그런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다른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통했으면 하는 것이다.”

■김한중 회장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보건학 석사, 서울대 보건학 박사를 했다. 2011년 일본 게이오대로부터 명예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보건대학원장, 행정·대외부총장 등을 거쳐 제16대 연세대 총장을 지냈다. WHO 단기자문관,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세계보건기구 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대통령자문 의료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미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차병원그룹 미래전략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일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대담=이인원 회장 / 정리=허지은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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