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전 대구대 총장).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전 대구대 총장).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최근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이 올린 작별 인사의 글이 화제다. 덩달아 대구대 학생들의 뜨거운 응원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홍 이사장은 지난달 13일 자신이 몸 담았던 대구대 사회학과 게시판에 이별을 고하는 글을 올렸다. 홍 이사장의 글을 읽은 학생들은 △총장님이 재임하시던 시절 새내기였던 것에 감사하다 △제가 많은 도전을 할 계기,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교수님께서 학교에 쏟으신 많은 열정과 애정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친구들의 글을 읽고 나니 교수님께 수업 한 번 못 들어 본 것이, 배워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등의 소회를 댓글로 올렸다.

교수나 총장이 학교를 떠나며 남기는 작별의 글에 학생들의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반응이다. 사회학과 학생들은 너무나도 아쉬워 하면서 홍 이사장을 응원했고 그런 글을 본 다른 과 학생들은 부럽다며 응원의 글을 보태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홍 이사장은 글에서 “33년 넘게 저의 눈물과 땀과 열정과 기도를 쏟았던 대구대였다. 대구대와 대구대 사회학과는 저의 전부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떠나서도 사랑하는 대구대 학생들의 행복과 발전을 특별히 사회학과 학생들의 꿈을 응원할 것이다.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구대와 대구대 사회학과는 그동안 숱한 과제와 어려움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저력 있는 대학이고 학과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대학의 ‘숱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온 인물이다. 1988년 10월부터 이태영 전 총장의 부재로 대학이 파행 경영되던 당시 대학과 재단을 향해 한창 문제제기를 하던 1993년에는 갑작스러운 해직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2009년 총장에 취임해 첫 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재단 분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 재단과 맞서면서 고소 고발로 재판을 진행해야 했다. 첫 임기 후 다시 한 번 총장에 선출됐지만 9개월 동안 법인의 인준을 받지 못해 총장에 오르지 못했다.

홍 이사장은 1993년 해직 처분이 내려졌던 당시를 회상하며 “긴급 소집된 교수 비상총회에서 교수님들께 고별인사를 하고 나오던 순간이었다. 뜻하지 않게 많은 교수님들께서 저의 팔을 잡으셨다. 성금을 거둬 생활비를 마련해 볼 테니 남아서 함께 대구대를 민주화해보자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다.(중략) 당시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더 뜨거웠다. 준공을 앞두고 있던 본관에 농성장을 꾸리고 이 부족한 교수의 해직을 철회하라고 팔을 걷었다. ‘비리재단 퇴진’도 함께 외쳤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는 함께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모두를 생각했다. 그는 “‘민주적 재단 정상화’라는 과제를 위해 서울로 시위를 떠나고 중요한 이사회 때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교수님들과 학생들과 직원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교육부 평가를 받기 위해 혹은 국가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샘했던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땅에 떨어진 각종 지표를 관리하고 또 한 푼의 국고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마음 졸이며 애썼던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오로지 대구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 하나로 고된 보직을 맡아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학생이 행복한 대학’을 구현하고 대학의 내일을 열어야 한다는 같은 믿음으로 그동안의 오랜 교수중심-행정중심 관행들까지 내려놓으며 학생들을 위해 헌신해 주신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들, 대학본부의 불편한 정책들에도 기꺼이 함께 해주신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힘들어 지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 동문들 그리고 학생회 임원들, 사회학과 제자들도 생각난다”고 동고동락했던 구성원과의 추억을 곱씹었다.

홍덕률 이사장이 대구대 총장이던 2017년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사진=한국대학신문 DB)
홍덕률 이사장이 대구대 총장이던 2017년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사진=한국대학신문 DB)

[인터뷰] “학생이 직접 열어줬던 취임식,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

-사회학과 게시판에 남긴 글이 화제가 됐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확정 통보를 받고 출근 날짜가 빠르게 결정되면서 누구와도 편하게 이임 인사를 못 나눴다. 같이 일했던 교수, 직원들 얼굴이 떠올랐다. 종강을 이미 한 뒤여서 학생들과도 인사를 못 했다. 그래서 학과 홈페이지에 떠난다는 인사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33년간 함께한 곳을 떠나며 인사를 못 한 것이 허전해 글을 올린 것인데 그 글이 학생들 익명 커뮤니티에까지 퍼져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글을 보고 학생들이 남긴 반응을 보면 무척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학생들과 정이 든 사연이 많았던 것 같다.
“총장 마치고 학과에 복귀해 1년은 연구년을 보냈고 4학기 동안 학과 학생들과 만났다. 2년동안 가르치며 우리 사회학과 학생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떠나려니 서운했다. 총장을 할때도 학생들과 자주 만났다. SNS에 ‘피자 먹을 사람 와라’ 하고 올려서 정해진 날 잔디밭에 앉아 학생들과 피자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취업난으로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못 가고 기숙사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있으면 찾아가서 만나고 위로하기도 했다. 개강 날, 시험 보는 날 학생들에게 간식을 주기도 했다. 그런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해 건의도 받고 학생들과 격의 없이 잡담도 나눴다.”

-장애 학생, 외국인 유학생들과도 많은 교감을 나눴던 것으로 안다.
“대구대는 장애학생이 불편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 자부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대학이 잘 한다고 해도 직접 장애학생들을 만나보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학생, 학부모들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이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 내가 처음 취임하고 이듬해인 2010년에 아프리카에서 유학생들이 왔다. 이 학생들 중에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생활이 힘든 경우가 있었다. 이들을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주고 겨울에 스웨터를 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겨울이 꽤 혹독하고 춥잖나. 따뜻한 겨울을 보내라고 직원노동조합과 머리를 맞대 기금을 걷어 스웨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 뒤에 아프리카 유학생들이 대구대가 좋다고 소문을 내서 그 뒤부터 아프리카 유학생이 많이 늘었다. 몇 명이 총장님 덕에 졸업을 잘 했다며 감사패를 들고 오기도 했다. 무슨 돈이 있다고…. 그 학생들이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난다.”

-재취임 당시에는 학생들이 직접 취임식을 열어주기도 했다. 취임식 날 사진에는 학생들이 총장을 헹가래치는 모습도 담겼다.
“총장에 재선출 된 후 법인이 인준을 안 해주니 학생들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나서 이사회를 상대로 총장 임명을 촉구했다. 결국 선출 9개월만에 총장에 임명됐다. 그런 면에서 난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원래는 취임식을 안 하려고 했다. 한번 취임식을 하기도 했고 9개월간 공석이었으니 밀린 일도 많았다. 하루라도 빨리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찾아와 취임식을 열어주겠다고 하더라. 자신들도 총장 취임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렇게(취임식을 안 하기로) 총장 혼자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학생들이 만들어준 야외 총장 취임식을 가질 수 있었다. 평생 잊지 못 할 감동이었다.”

-대학을 위하고 학생들을 위하는 총장의 진심이 전해졌던 모양이다.
“2009년 총장에 취임할 때 ‘학생이 행복한 대학’을 슬로건으로 내밀었다. 이는 총장 취임 전 20년 간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대학의 풍토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국‧공립대, 사립대를 통틀어 대학이 총장과 교수, 행정 주임으로 운영되고 정작 학생들은 없더라. 중요도나 여러 면에서 학생은 그저 대상으로만 간주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대 총장에 있는 동안 학생 중심 대학 운영이라는 철학을 갖고 임했다.

대학과 교수는 왜 존재하는가.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학생을 행복하고 성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지 못하면 대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가렵고 아쉬운 부분, 불편한 점을 찾아 도움 주려고 노력했다. 성과를 떠나 그런 철학을 갖고 노력했더니 학생들에게 내 진정성이 읽힌 것 같다.”

-학생 중심의 대학을 외쳤던 만큼 최근 법인과 총장 간의 일들이 알려지고 있는 대구대 상황을 보면 아쉬움이 누구보다 클 것 같다.
“무척 마음이 아픈 일이다. 참 속상하고 안타깝다.”

-이제는 한 대학이 아닌 전국 모든 대학을 위해 봉사하는 길을 걷게 됐다.
“아직 업무 파악 기간이지만 지금 사학진흥재단의 고유 업무를 보면 중요한 고객은 사립학교 경영자다. 구체적으로는 총장을 포함한 대학 본부와 법인이다. 그분들을 대상으로 법에 따라 또는 교육부의 위탁을 받아 정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하다보면 학생이 증발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법인이든 대학 경영을 책임지는 총장이든 궁극적으로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뒤에 사학진흥재단의 일을 하면서도 학생들의 존재가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최종적으로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철학을 늘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학진흥재단이 그런 문화를 가진 조직이 되도록 만들 생각이다. 사학진흥재단뿐 아니라 모든 교육 관련 기관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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